투박한 비누 하나가 하루를 감싸는 법
비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아예 쓰지 않는 사람과 자주 쓰는 사람 - 나는 분명히 후자다.
비누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핀란드 여행이었다. 전에는 집에 있으면 쓰는 물건 정도였고, 내 돈을 주고 산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핀란드의 프리마켓에서 뜻밖의 장면을 봤다. 셀러들이 직접 만든 옷, 액세서리, 잼, 그리고 비누 등을 프리마켓에서 팔고 있었다. 특히 아저씨들이 줄줄이 비누만 사가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편견 속 동네의 평범한 아저씨라면 마트에서 아무 비누나 집어 올 것 같았는데, 이곳에서는 직접 비누를 신중히 고르고 사 가는 것이었다. 그 장면이 묘하게 따뜻했고, 결국 나도 따라서 비누를 몇 개를 샀다.
내 손에 쥔 비누는 울퉁불퉁했고, 허브 잎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향을 맡으면 마치 숲 속을 걷는 듯 은은한 풀내음이 스며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 비누를 쓰면서 물에 닿자 퍼져 나오던 향이 하루의 피로를 녹여 주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핸드메이드 비누를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얼마 뒤 운명처럼 동네에서 비누 만들기 수업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퇴근 시간과 딱 맞아 바로 신청했다. 수업에서 알게 된 건 비누 만드는 방식이 두 가지인데, (녹여 굳히는 간단한 방식(MP)과, 한 달 이상 숙성해야 쓸 수 있는 방식) 핀란드에서 내가 사 온 건 숙성 방식으로 만든 비누였다. 재료비가 제법 들어가니, 그때 5유로에 산 게 오히려 행운 같은 가격이었다. 비누가 틀에서 빠져나올 때 들리던 소리, “톡”,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 후로 공방에서 겨울 내내 비누를 만들며 일 년 치를 준비했고, 러쉬 같은 브랜드에도 관심이 생겼다. 프리마켓에서 마음에 드는 비누를 발견하면 하나씩 사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비누는 내 생활의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로 이어져 샴푸바, 트리트먼트바, 설거지바까지 쓰게 되었지만 풍성한 거품은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기성 제품과 수제 비누를 반반 섞어 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비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프리마켓을 다니면 핸드메이드 비누를 파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작은 가게에 들어가도 알록달록한 비누가 선반을 채우고 있다. 마트에 가도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비누가 진열돼 있는 걸 본다. 한때는 SNS에서 도브 비누 하나로 온몸을 씻는 게 유행이었는데, 값이 부담 없고 오래 쓸 수 있으며 ‘보습 성분 1/4’이라는 말이 주문처럼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하나로 끝내는 편리함은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떠나는 기분과도 닮아 있었다.
한때 나는 비누를 조심스레 지인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하지만 크게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거품이 덜 난다’, ‘관리하기 번거롭다’는 등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 이해된다. 그래서 이제는 선물하지 않는다. 대신 새 비누를 발견하면 사서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때가 되면 사용하면서 혼잣말을 한다. “이건 향이 좋네. 이건 당김이 없네.” 그 순간은 나만의 작은 놀이이자 즐거움인 것이다.
나에게 비누는 단순한 세정제가 아니다. 내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 새로운 비누를 꺼낼 때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욕실 선반에 놓인 투박한 비누 하나가,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