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겨울밤, 공기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서늘한 기운이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핀란드행 비행기표를 끊으면서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로라를 본다고 해서 내 삶이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오래전 책에서 읽은 문장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어떤 작가는 오로라로 온몸이 스캔되면 정화될 것 같다고 했다. 그때 지쳐 있던 나는 그 문장에 매달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런 기대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라는 걸.
버스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타 있었다. 얼굴마다 같은 기대와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나처럼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 오로라가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보며 묘한 연민을 느꼈다.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어둠 속에 버스가 멈췄다. 발밑의 눈은 뽀드득 소리를 내며 단단하게 나를 붙잡았다. 영하 20도. 유성우가 흘러가자 잠시 환호가 터졌지만, 그게 오로라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의 실망감이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모두 거짓 희망에 속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마법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마법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뿐이다.
오두막에 도착해 난로 옆에서 몸을 녹이며, 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오로라를 보고도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 것이다. 같은 고민을 안고, 같은 불안을 품은 채로. 그리고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로라!"라는 외침이 들렸다. 밖으로 나가자 연둣빛 장막이 하늘에 번져 있었다. 빛은 농도를 더하며 물결처럼 흔들렸다. 아름다웠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감탄은 했지만 정화되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깨달음의 순간도 없었다. 그저 '아,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실망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오로라조차 나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소원을 빌고, 또 다른 사람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나는 이 순간이 별것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별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때서야 나는 알았다. 행복은 기적에서 오지 않는다. 기적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에서 온다.
새벽 두 시가 넘어 호스텔에 도착했다. 나는 오로라를 봤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호스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오로라를 보면 행복해지느냐고.
답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아니다'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기적을 기다리는 긴 줄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오로라가 내게 준 선물은 빛이 아니었다. 어둠이었다.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다는, 그 편안한 어둠.
*사진: Rovaniemi, Fin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