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루루, 이름 없는 그림 앞에서

기억의 값, 혹은 팔리지 않는 것들

by 온빛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본 건 호주로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여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호주의 울루루에 가서 내 재를 뿌려줘.”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나는 울루루라는 이름과 그 상징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1. 자연 앞에서도 나는 계산하는 존재

일출을 보았다.
일몰을 보았다.
밤이 되면 머리 위로 별자리가 펼쳐졌다.
별들은 손에 닿을 듯 선명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별이 쏟아질 듯한 그 장면 속에서도, 나는 내일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휴대폰을 걱정했다.
내일 기상 시간을 떠올렸다.

거대한 자연이 나를 압도해도, 나는 그대로였다.
그저 계산하고 있었다.


2. 와인잔과 남은 크래커 앞의 원주민

해 질 무렵, 투어 버스들이 울루루 앞에 모여들었다.
관광객들은 와인을 마시며 붉은 바위의 색 변화를 감상했다.
1인당 30만 원짜리 투어였다.
나는 비싼 가격 때문에 와인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지자 사람들은 각자의 투어 버스를 향했다.
투어 가이드는 테이블을 정리했다.
마트에서 사 온 치즈와 크래커, 반쯤 남은 와인병이 테이블 위에 남았다.

그때 원주민 여러 명이 다가왔다.
원주민들은 치즈를 먹고 남은 크래커를 먹었다.

관광객들은 잠시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버려진 음식이 남은 자원처럼 자연스럽게 소비되는 장면이었다.
나만 그 앞에 서 있었다.


3. 공예품과 기억의 가격표

낮이면 그들이 울루루 앞에 앉아 있었다.
삐뚤빼뚤한 그림인지, 양탄자인지 모를 작품을 돌멩이로 눌러놓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관광객들을 바라보았다.
호객 행위도, 미소도 없었다.
그냥 자기들끼리 앉아 있었다.
바람에 모래가 날렸고, 그림 위로 그림자가 흘렀다.

나는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
사지 않을 걸 알았기에, 얼마인지 묻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의 작품을 사진으로 담는 일도 망설여졌다.

기념품 가게의 진열장에는 훨씬 ‘완성도 있어 보이는’ 원주민 문양의 작품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비싸도 그것들을 샀다.
깨끗하고, 포장되어 있고, 작가의 이름이 붙은 것들.

그러나 여기, 돌멩이로 눌린 그림들은 아무 이름도, 가격표도 없었다.
나는 그냥 지나쳤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4. 이름과 선물의 자연스러움

투어 가이드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다.
그리고 물을 건넸다.

샌드위치를 건넸다.
원주민들은 고맙다는 말 없이 받았다.
주고받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투어 가이드가 말했다.

“원주민들에게 울루루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5만 년 이상 그들의 성지였죠.
2019년까지는 바위 등반이 허용됐지만, 지금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존중’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그 순간 한 원주민이 마른 샌드위치를 입에 넣는 모습이 보였다.


5. 공항 로비, 영혼과 일상의 거리

공항에서는 울루루의 홍보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 속 원주민은 붉은 바위 앞에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공항의 큰 티비 앞, 철제 의자에 앉은 원주민 가족이 있었다.
모두 옷은 입었지만, 맨발이었다.

그들은 모두 조용히 티비만 쳐다보았다.

공항은 에어컨 바람이 강하게 나왔다.


나는 생각했다.
왜 저들은 거기에 있는가?
비행기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그저 에어컨을 쐬러 온 건가?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가.
원주민은 ‘신성한 존재’만 되어야 하나?
그들이 인간인 것은 허용되지 않는 관객적 존재가 되어야 하나?


나는 그들을 구경거리로 소비했다.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6. 자본주의와 식민의 그림자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내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난다면, 나도 저 모습과 다르지 않을까?
남은 와인을 마시고, 마트 과자를 받아 들고, 팔리지 않는 걸 파는 사람.


그 질문이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의 상황은 ‘자본주의 이탈’의 결과가 아니다.
식민 지배, 땅의 상실, 문화의 지워짐이 만드는 제한된 조건이다.


하지만 나는 그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내 불안과 생존 욕구를 그들에게 투사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투사는 지속 중이다.


7. 일상으로 돌아와도, 불편함은 남는다

한국에 돌아와 출근했다.
커피를 마셨다.
회의에 참여했다.
저녁을 먹고 넷플릭스를 봤다.


울루루에서 느꼈던 것은 점점 흐려진다.
예상된 일이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변할 마음도 별로 없다.


다만, 남은 음식을 버릴 때 잠깐 멈춘다.

이게 뭐가 바뀐 걸까.
아무것도 바뀐 건 없는데,
무언가 조금 불편해졌다.


8. 이 글을 쓰는 이유

이 글은 누군가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것도 아니다.
내일 나는 출근할 것이고, 일하고 월급을 받을 것이다.


다만 이 불편함을 기록하고 싶다.
내가 호주의 가이드처럼 자연스럽게 건네는 사람 될 수도 있었다.
원주민처럼 자연스럽게 받는 사람 될 수도 있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공정하지 않다는 건 안다.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었던 건 내 안전함 덕분이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9. 별은 쏟아지지 않았다

울루루에서 본 별들은 정말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별은 쏟아지지 않았다.
그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래에서, 여전히 나였다.

경이로움이 나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더 선명히 보여주었다.


그걸로 충분할까?
아마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불편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출근길, 커피 한 잔 앞에서,
물건을 살 때,
가끔씩 떠올리려 한다.

그 투어 가이드의 얼굴.
원주민의 손.
마트 크래커.
반쯤 남은 와인.
그리고 그것들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를.


그게 지금의 나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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