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얼굴은 아침 6시에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이 보여주지 않는 것

by 온빛

문화센터 원데이 클래스 두 개를 연달아 듣고 나서 깨달았다. 나는 지금껏 내 얼굴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치 오래된 화분처럼, 가끔 물만 주고 손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분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베란다 구석에 방치된 다육이 같은 존재. 그래도 다육이는 물을 안 줘도 알아서 잘 사는데, 내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첫 번째 수업은 클린걸 메이크업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트렌드에 뒤처져서 촌스러워 보일까 봐 들었다. 30대의 미묘한 자의식. 뒤처지기 싫지만 튀고 싶지도 않은, 그 애매한 중간 지점. 출근길 지하철 손잡이를 잡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클린걸 메이크업은 역설 덩어리다.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이려면 꽤 많은 걸 해야 한다. 노파데 메이크업이지만 컨실러는 쓴다. 아이라인은 안 그리지만 마스카라는 한다. 아이섀도는 생략하되 하이라이터로 빛을 만들고, 볼터치로 혈색을 더하고, 입술은 촉촉하게.


헤일리 비버


헤일리 비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르다. '나 방금 일어났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완벽하게 빛나는 얼굴. 물론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저게 '방금 일어난 얼굴'이 아니라는 걸. 저건 '방금 일어난 것처럼 보이려고 1시간 투자한 얼굴'이다.


요즘 시대는 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게 세련된 거다.


땀 흘린 티를 내는 건 촌스럽고, '원래 이래요'가 쿨한 시대. 메이크업만 그런 게 아니다. 커리어도, 인간관계도, SNS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죽어라 노력하면서 동시에 '별거 아닌데?'를 외친다. 현대인의 가장 큰 미덕은 '노력을 들키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강사가 알려준 기법들을 메모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게 정말 나를 위한 화장법일까, 아니면 타인의 시선을 위한 화장법일까.


답은 알고 있었다. 둘 다.




두 번째 수업은 관상학이었다.


"관상학은 수천 년 된 학문입니다. 미신이 아닙니다." 강사의 단호한 목소리에 수강생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래도 약간은 미신 아닌가...'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센터의 미덕은 판단 유보에 있다.


눈, 코, 입, 얼굴 전체의 형태와 비율로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읽어낸다니. 과학적 근거? 글쎄.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공감했다.


그런데 관상 선생님이 한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이거였다.


"진짜 당신 얼굴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기 전 얼굴입니다."


잠깐.


저녁에 보는 얼굴은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내가 매일 저녁 거울 보면서 '오늘도 고생 많았어' 했던 건 누구한테 한 말이지? 화장한 얼굴, 표정 관리한 얼굴, 하루 종일 긴장한 얼굴. 그건 '출근용 나'였던 거다. 업무용 계정. 프로필 사진 따로 설정해 둔.


뾰루지가 났네, 어디가 못생겼네 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아무 필터도 없이, 그냥 내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했다.


문제는 나는 아침에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거다.

눈 뜨자마자 세수하고 출근 준비로 정신없다. 거울은 기초 바를 때, 립스틱 바를 때만 본다. 입술, 눈가, 볼. 부위별 점검. 마치 편의점 알바가 유통기한 확인하듯이. "우유, 샌드위치, 김밥, 문제없음."


전체 보기?

그런 기능은 내 아침 루틴에 없다.


그나마 여행 가서 남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 그제야 '아,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싶더라. 타인의 카메라를 경유해서야 내 얼굴과 만나는 이상한 시스템. 마치 외국어 번역본으로만 원서를 읽는 것처럼. 그것도 구글 번역기 돌린. 그것도 중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걸 한국어로 재번역한.




나이 든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면 안다.


평생 웃으며 산 사람은 입꼬리 주변이 부드럽게 접혀 있다. 걱정이 많았던 사람은 미간이 골짜기다. 화를 자주 낸 사람은 입 주변이 날카롭다.


얼굴은 일종의 자동 저장 파일이다.


매일매일의 표정이 ctrl+S도 누르지 않았는데 쌓여서 만들어지는 최종 리포트.

퇴고할 수도 없고, 삭제할 수도 없고, 휴지통에서 복구할 수도 없다. 우리는 매일 내일의 얼굴에 한 줄씩 문장을 추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영구 잉크로.


그래서 깨달았다. 내가 내 얼굴을 제대로 봐줘야겠다고.


타인의 얼굴은 그렇게 자세히 관찰하면서, 정작 내 얼굴은 결함 찾기만 했으니까.

여드름 났네, 다크서클 심하네, 입술 트네. 문제 목록만 작성하고, 정작 내 얼굴 자체는 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의 회의처럼 '개선 사항'만 30분 나열하고 '잘한 점'은 3초 만에 넘어가는.


내 얼굴에게 미안했다.

매일 아침 나를 마주해 주는데,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인사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

요즘 내 입버릇이다.


나의 MBTI가 J에서 P로 바뀐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계획적이고 체계적이었던 나는(적어도 그렇게 믿었던), 이제 "뭐 어때, 될 대로 되겠지"를 달고 산다. 20대 때 나한테 이 말했으면 기절초풍했을 텐데. "네가? P? 거짓말"이라고 했을 거다.


한 해, 한 해를 보내며 깨달은 건 간단하다.


세상은 내 계획대로 안 돌아간다. 아니, 애초에 내 계획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20대의 나는 10년 후를 계획했지만, 30대의 나는 다음 달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는 더 가까워지는데 더 흐릿해진다. 마치 핸드폰 화면에 지문이 잔뜩 묻은 것처럼.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흐릿한.


J에서 P로의 변화를 패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유연성의 획득인지도 모르겠다. 단단한 것은 부러지지만, 부드러운 것은 휘어진다. 대나무처럼. 물처럼.


그리고 생각해 보니 얼굴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얼굴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가는 얼굴로는 살 수 있다. 계획대로는 안 되지만, 방향은 선택할 수 있다. P의 자유는 여기서 나온다. J의 계획이 무너졌을 때 좌절하는 게 아니라, P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함박웃음은 못 짓더라도, 적어도 인상은 찌푸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클린걸 메이크업처럼 '자연스럽게 빛나는' 삶을 살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좋은 표정으로 살아가자고. 10년 후, 20년 후 내 얼굴에 새겨질 주름이 웃음 주름이길 바라면서.


팔자주름?

각도에 따라서는 그것도 웃음 주름이다. 시각의 문제다.


관상 선생님이 그랬다.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라도 내 얼굴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억지 미소가 아니라 진짜 편안함을, 강요된 긍정이 아니라 진짜 수용을 새겨 넣는 사람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내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먼저 내 얼굴을 좋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미워하면 결함만 보이고, 좋아해야 비로소 '아, 이 부분은 이렇게 살려주면 되겠구나'가 보인다. 다크서클도 컨실러로 가려줄 수 있고, 처진 입꼬리도 립스틱 각도로 살려줄 수 있고, 무표정한 얼굴도 부드러운 미소로 채워줄 수 있다.

클린걸 메이크업의 시작도, 좋은 표정의 시작도 결국 여기였다.


결국 내가 들은 두 강의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클린걸 메이크업: "단점을 미워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돌봐라."

관상학: "당신의 얼굴은 당신이 선택한 표정들의 합이다."


이제부터라도 거울 속 나를 봐야겠다.

아침에. 세수하기 전에. 진짜 내 얼굴을.

부품 점검이 아니라 인사를 하기 위해.

'안녕, 오늘도 잘 부탁해' 말하기 위해.


세상사,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내 얼굴만큼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니까.

매일 아침, 한 표정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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