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행복은 별거 아닐 수도

계절을 먹고사는 사람들

by 온빛

요즘 나, 행복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다시 행복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카톡 친구 중엔 계절 담당자가 있다.

봄엔 벚꽃, 여름엔 수국, 가을엔 코스모스, 겨울엔 눈.
프로필만 봐도 사계절 달력이 따로 없다.

처음엔 '참 부지런도 하다' 생각했다.

문득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생존 전략이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행복할까?”


답은 가까이 있었다.

나보다 조금 더 인생 경력이 긴 사람들 속에.
그들은 꽃이 피면 꽃을 보러 가고, 단풍 들면 단풍놀이 간다.
그리고 제철 음식을 먹는다.

한때는 “그런 거 어르신들이나 가는 거잖아”라고 했다.


이젠 안다.

나이 든다는 건 행복의 단위를 작게 쪼개는 능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요즘 같은 날엔 일단 하늘부터 본다.
높고 푸른 하늘과 따뜻한 가을 햇살을 느껴봐야지.

그리고 먹는다.
지금의 제철 음식: 사과, 감, 밤, 굴, 홍합, 대하...

이 중 하나라도 먹고 “아, 맛있다” 한마디 나오면
그게 바로 인생이고 행복이지 않을까?





가을마다 열리는 동래읍성 축제에 가야겠다.
화려한 공연도 있고, 줄다리기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거기 동래 파전 먹으러 갈 거다.

쪽파 위에 찹쌀 반죽 얹은 촉촉한 파전.
간장 대신 초고추장.
부산 스타일로 즐겨야지.


그리고 강릉커피축제를 가봐야지.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 들고,

“오늘은 아무 일 없어도 충분하다”

라고 말하고 싶다.

대단한 걸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그 계절을 직접 맛보러 가는 것.





그리고 가을이 지나면 온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절, 겨울.


추위에 약한 나는 매년 동면을 고민하지만
그래도 12월까지는 버틴다.
크리스마스가 있으니까.

올해도 혼자일 확률이 높다.
괜찮다. 크리스마스를 못 느끼는 게 더 비극이니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크리스마스를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그 분위기만으로도 배터리 80%는 충전된다. 크리스마스엔, 반짝이는 불빛 속 어딘가로 떠나야지.


아 맞다, 붕어빵!
겨울의 존재 이유 중 절반은 붕어빵이다.
나머지 절반은 군고구마와 호빵이다.
(다 합쳐서 체중은 곧 행복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새싹이 돋고,
벚꽃이 터지고, 우리는 또 사진을 찍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건 거의 신이 만든 자동 결제 시스템이다.


힘들어도 "가을 하늘 예쁘네?" 하면서 버티고,

지루해도 "곧 여름 휴가지?" 하면서 기다리고,

더워도 "곧 선선해지겠지?" 하면서 견디고,

추워도 "곧 따뜻해지겠지?" 하면서 버틴다.


이렇게 버티게 하는 천재적 설계.

조물주는 인간이 멘탈 나가지 않게
계절이라는 희망 배급 시스템을 만들어두셨다.


카톡 프사가 코스모스로 바뀐 선배를 보며 생각한다.
“저게 바로 인생 고수의 플레이구나.”

그리고 나는 슬쩍 이번 주말 축제 일정표를 본다.
파전 먹고,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을바람 쐬러.




“행복은, 진짜 멀리 있지 않다.”

그렇게 싫은 겨울에도 붕어빵 한 입 베어 물며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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