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 레이싱: 1,500년 전 황금을 향한 질주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by 온빛

살면서 '금'에 대해 이렇게까지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SNS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이 신라 금관 6점을 한자리에 모으는 금관 특별전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내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금관? 국사 교과서 표지 모델 아니야? 굳이 경주까지 가서?"


하지만 전시 종료일인 일요일 아침, 춘곤증보다 무서운 '한정판의 유혹'이 나를 깨웠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모든 금관이 각자의 수장고로 흩어져, 다시 모이는 데 최소 10년은 걸린단다.


10년 뒤의 내 무릎 건강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나는 8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경주까지 30분. 이 거리는 나를 자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박물관은 10시 오픈. 9시 전에만 도착하면 현장 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근거는 없었다. 그냥 그럴 것 같았다. 이 막연한 낙관이 이날 나를 아주 많이 괴롭히게 된다.




경주역에 내리자마자 10대 아이들 백여 명이 버스 정류장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요즘 애들은 참 부지런하네"라며 흐뭇해할 때가 아니었다. 묘한 위기감이 등줄기를 스쳤다.


본능적으로 택시 승강장으로 직행했다. 아이들이 버스 노선을 확인하는 사이, 나는 자본주의의 힘을 빌려 택시 문을 닫았다.


"기사님, 박물관 가는데... 최대한 '법규 안에서' 레이싱 부탁드립니다."


기사님은 내 눈빛만 보고도 상황을 접수하셨다. 도로엔 이미 정체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손님, 오늘 마지막 날이죠?"


이 질문을 한 뒤 기사님의 현란한 드라이빙 덕에 박물관 근처에 도달했지만, 주차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그때 기사님이 비장하게 외쳤다.


"여기서 내려서 뛰세요!"




택시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도로 위 멈춰 선 차들에서 사람들이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튀어나오더니 "뛰어!"라고 소리치며 질주했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데 줄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박물관 정문을 지나 담장을 지나, 급기야 박물관 옆 이름 모를 논두렁까지 인간 띠가 이어져 있었다.


9시도 안 된 시각, 나는 맺힌 땀을 닦으며 논밭 한복판 옆에 섰다. 전국 팔도 사투리가 논두렁에 울려 퍼지고, 방송국 카메라는 이 '금관 대란'을 담느라 분주했다. 나는 최대한 지적인 관람객인 척 표정 관리를 했지만, 실상은 그저 금빛 욕망에 눈이 먼 러너일 뿐이었다.




9시 20분, 확성기를 든 직원의 목소리는 사형 선고와 같았다.


"현재 줄 서신 분들은 표를 못 받으실 확률이 높습니다!"


설마 했지만 현실이 되었다.


“오전 표 매진입니다.”

“오후 2시 표 매진입니다.”

“4시 표 매진입니다.”

“오늘 표가 모두 매진되었습니다.”


그 허탈함이란, 다들 도대체 몇 시부터 줄을 선 걸까.





하지만 인간의 집념은 무서웠다. 사람들은 발길을 돌리는 대신, 일반 관람이 가능한 상설 전시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에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위엄 있게 서 있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아쉬운 대로 종을 치거나 사진을 찍으며 마음을 달랬다. 댕댕댕 소리가 내 마음에도 울려 퍼졌다.


전시관 안은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서서 개미 걸음으로 유물을 볼 수 있었다. 시끄럽고 북적였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전시실을 나와 출구 쪽에서 기막힌 광경을 목격했다. 틈 사이로, 저 멀리 전시된 금관들이 아주 살짝 보였던 것이다. 멀리서, 흐릿하게.


사람들은 그 좁은 틈새에 다닥다닥 붙어 까치발을 들고 금관을 훔쳐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줄에 합류해 저 멀리 반짝이는 금빛을 보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서, 멀리 빛나는 금관을 바라봤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열광하는 건 단순히 1,500년 전의 유물이 아니라,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었다는 것을. 멀리서 엿보는 금관은 왠지 더 신비롭고 위엄 있어 보였다.



아쉬운 마음을 금관 책갈피와 엽서로 달래고 박물관을 나섰다. 작고 납작한 2D 위안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이대로 부산으로 돌아가기가 아까웠다. 억울함과 아쉬움을 햇볕에 좀 말리기로 했다. 첨성대를 지나 황리단길까지 걷기로 했다.


경주의 공영자전거 '타실라'가 눈에 들어왔다. "타실라?"라는 경상도식 질문에 "아뇨, 전 걸을라예"라고 답하며 터덜터덜 걸었다.


비록 '금관 직관'에는 실패했지만, 따뜻한 햇살 아래 첨성대를 지나며 홀로 걷는 시간은 꽤나 근사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별별 생각을 하다가, 또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오전 11시의 경주는 뜨거웠다. 황리단길은 금관 쟁탈전의 승자와 패자들이 뒤섞여 '교토' 같은 고즈넉함과 '명동' 같은 북적임을 동시에 뿜어내고 있었다.





일요일 낮 12시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무의미하게 보냈을 에너지를 경주 논두렁에 쏟아부은 셈이지만, 이상하게 뿌듯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 창문에 머리를 박고 침을 흘리며 기절하듯 잠들었지만 마음만은 1,500년 전 신라의 왕이 된 듯 풍요로웠다.


10년 뒤, 다시 금관이 모이는 날을 기약해 본다. 예매 사이트 열어두고 티켓팅 전쟁을 치르든지, 아니면 오전 6시 기차를 반드시 타야지.


기다려라, 신라의 금관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