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정말 무지개다리 앞에서 기다릴까

나의 하얀 수호신 복돌이의 생일에

by 온빛

오늘은 복돌이의 생일이다.

그리고 내 왼쪽 다리에는 여전히 복돌이가 남아있다.

9년 전 새겨진 흉터. 세월에 깎여 희미해졌지만, 손끝으로 더듬으면 어김없이 그 아이의 온기가 만져지는 나의 '비밀 기록'이다.



-손수건 한 장의 무게-

복돌이. 이름부터 촌스러운 그 아이는 아빠가 어디선가 공짜로 얻어온 생후 두 달 된 백구였다. 시골집이나 지키게 하겠다던 아빠의 호기로운 계획은 첫날밤부터 무너졌다. 박스 안에서 낑낑대는 소리에 온 가족이 잠을 설쳤고, 결국 녀석을 안아 내 이불 곁에 눕혔다.


무얼 덮어줄까 고민하다 꺼낸 건 손수건 한 장. 딱 손수건 한 장이면 온몸이 덮이던 그 작은 생명은, 그제야 안심한 듯 가느다란 숨을 내뱉으며 잠들었다. 그렇게 복돌이는 나의 가장 낮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쇠사슬과 포토샵-

우리는 형제처럼 자랐다. 요플레 하나를 나눠 먹고 거실바닥을 뒹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복돌이 사진을 예쁘게 꾸며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포토샵을 독학했다. '백구 카페'에서 열린 강아지 콘테스트에 내놓기 위해, 지금도 서툰 툴을 그때는 밤새워 익혔다. 반짝이는 스티커를 붙이고 테두리를 그리며 몇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내 우주의 중심은 온통 하얀 털 뭉치였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벽은 높았다. 대문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복돌이의 존재가 들통나자 주민들의 항의가 쏟아졌고, 체면을 중시하던 아빠는 결국 복돌이를 시골로 보냈다.


굵고 차가운 쇠사슬, 흙먼지 날리는 마당 한편, 그리고 여전히 작고 하얗던 복돌이.

어린 나는 그 풍경이 아팠지만, 힘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복돌이는 '시골개'가 되었다.



-열일곱의 수호신-

몸은 멀어졌어도 마음은 팽팽하게 이어져 있었다. 주말마다 내려가면 녀석은 담벼락을 기어오르며 온몸으로 나를 반겼다. 꼬리가 몸통보다 빠르게 흔들리는 그 진동이 내 손바닥까지 전해지곤 했다.


가끔 우리 집에 머무는 날이면 복돌이는 내 일상의 수호신이 되었다. 학원을 마치고 나오면 아빠 차 창문 너머로 녀석의 코끝이 보였고, 시험 공부하는 밤이면 내 교과서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나는 기도를 하듯 녀석에게 중얼거렸다.

"복돌아, 나 이번 시험 잘 보게 힘을 줘."


버스 정류장에서 "복돌아, 버스 오게 해 줘"라고 빌면 정말로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나타났다. 우연이었겠지만, 열다섯과 열일곱 사이의 사춘기를 지나던 내게 복돌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험한 신앙이었다.



-비겁했던 나의 청춘-

스무 살, 나의 세상이 넓어질수록 복돌이의 자리는 좁아졌다. 대학, 공부, 취업... 화려한 도시의 불빛 아래서 시골 마당에 묶인 복돌이를 잊고 지냈다. 그사이 복돌이는 늙어 종양이 생겼고, 앞도 잘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가장 건강할 때가 아니라, 가장 지치고 아픈 모습으로.


직접 데려와 살겠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아니, 어쩌면 못 본 척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녀석이 쇠사슬 끝에서 나를 기다리던 십수 년 동안 나는 내 삶을 즐기느라 바빴다. 그 비겁함에 대한 죄책감은 오늘 같은 날이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친다.


외국으로 떠나던 날, 29인치 캐리어를 끌고 서 있는 내게 복돌이가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1년 뒤에 오면 더 많이 사랑해 줄게.'

그 기만적인 약속을 남긴 채 나는 등을 돌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리에 남긴 마지막 낙인-

복돌이가 가고 일주일 동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18년을 함께한 존재는 강아지가 아니라 내 영혼의 조각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내 다리를 보았다. 공항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눈이 침침해 예민해진 복돌이가 장난치던 내 다리를 콱 물어버린 상처가 있었다. 꽤 깊어서 타국에서도 내내 연고를 발라야 했던 그 상처.


시간이 흘러 흉터가 옅어질 때마다 겁이 난다. 내 마음속 복돌이의 기억도 함께 흐려지는 것 같아서. 잊는다는 것은 배신 같고, 매일 아파하기엔 삶이 너무 무겁다. 그래서 나는 이 흉터를 소중히 간직한다. 녀석이 나를 잊지 말라고, 내가 너의 일부였다고 남겨준 마지막 '낙인' 같아서.



-마중 나올 나의 수호신에게-

복돌이는 내 사랑의 기준이 되었다. 대학 시절 짝사랑했던 사람에게 반한 이유조차 하얀 맨투맨을 입은 뒷모습이 복돌이와 닮아서였다. 녀석이 가르쳐준 조건 없는 사랑을 알아버린 탓에, 그 후의 어떤 이별도 복돌이와의 이별만큼 아프지 않았다.


나는 사실 죽음이 크게 두렵지 않다.

강아지는 주인이 오면 하늘나라 문 앞까지 마중 나온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꼬리를 흔들며 담벼락을 기어오르던 그 모습 그대로, 녀석이 서 있을 것만 같다.


부모님 댁 거실 한편에는 아직 복돌이의 유해가 담긴 함이 있다. 어디에 뿌려줄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지만, 어쩌면 이대로도 좋다. 복돌이는 늘 가족 곁에 머물고 싶어 했으니까.



복돌아, 거기선 아프지 않니?
누나가 너무 서툴러서 미안했어.
그래도 네 덕분에 내 청춘은 참 따뜻했어.
정말 고마워.
거기서 맘껏 뛰어놀고 있어, 누나가 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