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의 벚꽃
벚꽃은 한국에서도 숱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의 벚꽃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꽃은 꽃이고, 분홍은 분홍이며, 봄은 그저 봄일 테니까.
해가 막 고개를 든 시간인데 나고야성은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 익숙한 손길로 돗자리를 펴는 할머니, 담요를 가지런히 깔아 두는 아저씨들, 작은 카트에 음식을 가득 싣고 온 젊은 직장인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자리를 정성껏 일구고 있었다.
그 풍경이 어딘가 낯설었다. 한국에서 벚꽃을 볼 때는 풍경보다 사람이 앞섰다. 카메라를 든 인파, '인생샷'을 위한 기다림, SNS에 올릴 찰나의 박제를 마치면 서둘러 다음 장소로 떠나곤 했다. 빠르게, 찍고, 올리고, 이동하고. 그것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없는 듯 보였다. 그저 벚꽃 아래 '머물 생각' 뿐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온종일.
한 무리의 중년 남성들이 돗자리를 펴며 나누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깊게 파인 주름과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얼굴들. 하지만 벚꽃 아래에서 터져 나온 웃음 뒤로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갔다. 주름진 눈가에는 소년의 반짝임이 서렸고, 올라간 입꼬리는 50년의 시간을 거슬러 어린 날의 순수로 돌아가 있었다. 책임도, 무게도 내려놓은 채 오로지 꽃을 즐기는 소년들.
그제야 '오타쿠 문화'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무언가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그 열중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일본이 가진 그 독특한 기질이 이곳에 흐르고 있었다.
카메라를 쥔 손에서 자꾸 힘이 빠졌다. 기록하려는 욕심이 자꾸만 휘발되는 이유를 깨달았다.
벚꽃은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한국에서 벚꽃이 나를 돋보이게 해 줄 배경이자 소품이었다면, 이곳의 벚꽃은 삶 그 자체였다. 1년을 기다려온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 내는 의례였다.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이처럼 웃었다. 마음껏 취하고, 친구들과 하루를 통째로 나누었다. 사진은 그저 부차적인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였다.
한 할머니가 손주의 손을 잡고 벚꽃을 가리켰다. 아이는 할머니의 손가락 끝을 따라 하늘을 보았다. 할머니의 미소에는 수많은 말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내 어린 시절도 이랬단다', '이 꽃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도 알게 될 거야'. 벚꽃 아래에서 세대와 세대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렌즈에 담기는 것은 꽃이 아니라 자꾸만 사람들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나고야성의 금빛 샤치호코보다, 푸른 기와 위로 내려앉은 연분홍 꽃잎보다, 그것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이들이 왜 추위도 잊은 채 새벽부터 자리를 지키는지, 왜 고작 열흘 남짓 피는 이 꽃을 위해 1년을 기다리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벚꽃이 예뻐서가 아니었다. 벚꽃 아래에서만 허락되는 그 무언의 해방감 때문이었다. 어른이 다시 소년이 되는, 시간이 멈추는 듯한 몰입의 순간.
시간이 흐를수록 공원은 직장인과 학생들로 더 북적였다. 하지만 소란스럽기보다 평온했다. 모두가 같은 행복의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훨씬 많은 이 풍경은 관광이라기보다 차라리 '귀향'에 가까워 보였다. 1년의 무게를 풀어놓기 위해 모두가 각자의 벚꽃 나무 아래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나고야의 벚꽃 아래에서 그들이 차곡차곡 남긴 '행복의 여운'을 느꼈다. 벚꽃 본국에서 본 것은 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끄러움 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마음이었고, 세대를 이어 내려온 삶의 태도였다. 한국의 벚꽃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면, 이곳의 벚꽃은 하나의 깊은 '문화'였다.
이제 나도 꽃 앞에서 카메라를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야지. 대신 일본 사람들처럼 돗자리를 펴고 앉아 온종일 머물고 싶다.
카메라는 내려놓고, 마음은 꺼내어두고. 벚꽃 아래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그 천진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