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의 가격

계란 하나를 고르며 생각한 노년의 태도

by 온빛

사람들이 몇 번이나 지나갈 동안 나는 계란 코너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가장 저렴한 계란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를 먼저 확인했지만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잠시 망설였다. 사람들이 많이 집어 가던 그 계란을 나도 따라 사야 할지, 아니면 굳이 더 비싼 것을 골라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계란 하나를 고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손에 들어 올린 15구에 9,480원짜리 동물복지 유정란은 이상하게도 조금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잠시 양손에 번갈아 들어 보다가 결국 값싼 계란을 내려놓고 그것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마음이 조용해졌다. 별것 아닌 선택인데도, 나는 나를 조금 더 괜찮게 대접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노년은 멀리 있는 시간이 아니라, 이런 선택 속에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퇴근길에 가끔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미래를 떠올리기보다 나이를 먼저 계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일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노후 준비를 말할 때 늘 큰 숫자부터 꺼낸다. 10억, 20억, 아파트 한 채, 월세 수입. 하지만 그런 숫자들은 지나치게 멀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 손에 잡히지 않는 목표는 방향을 주기보다 막연한 불안만 남긴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보기로 했다.

- 나는 어떤 노년을 살고 싶은가?






부자가 될 가능성보다는 평온하게 늙어갈 가능성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최소한, 마트에서 내가 사고 싶은 계란을 망설이지 않고 고를 수 있는 삶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중요한 건 계란이 아니라 선택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준비하는 노년은 통장 잔고의 크기가 아니라,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연습에 가깝지 않을까.






다음 날 아침,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이 익어 갔다. 가장자리가 하얗게 부풀고 노른자가 천천히 빛을 띠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단정해졌다. 나에게 좋은 것을 주고 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그 감각이 하루를 조금 다르게 흘러가게 했다.


물론 늘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가격표를 오래 바라보다가 결국 가장 저렴한 것을 집어 든다. 하지만 적어도 가끔은 그러지 않기로 한다. 가격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쪽을 고르기로 한다.


노후는 생각보다 통장이 아니라 태도에 더 가까운 문제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미래의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오늘 조금 더 아껴 준다면, 그 태도는 시간을 따라 조용히 축적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연습 중이다. 가격표를 오래 보지 않는 연습. 사고 싶은 것을 고르는 연습. 망설이지 않는 연습.

노년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지 않는다. 이런 하루들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는 그 나이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을 뿐이다.






오늘 나는 동물복지 유정란을 주문했다.


내일 배송이 오면, 아침을 책임질 계란이 생긴다. 적어도 14일은 나에게 활기를 줄 것이다. 계란 하나를 먹을 때마다 나는 기억할 것이다. 나를 잘 살아가게 하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결국 이런 작은 선택들이라는 것을.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삶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