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임신 8개월 때의 일이다. 시어머니는 불길한 꿈을 꾸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꿈에 대해 물었다. 점쟁이 말대로 큰 며느리와 미꾸라지 한 바가지를 사서 강물에 풀어주었다. 미꾸라지 방생은 생명을 살려주는 대신 액운을 막아 달라고 비는 행위이다. 큰형님 내외는 우리보다 1년 먼저 결혼했지만, 아이가 생기기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었다.
불길한 꿈과 미꾸라지 방생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형님을 통해 전해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미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는 당사자들에게 그깟 꿈이 뭐가 중요할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궁핍한 살림에 조리원 몸조리는 가당치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에게 부탁해야 했다. 엄마는 당진 아저씨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혼자 살 때도 밥만 잘 먹던 사람이 '내 밥은 누가 챙겨 주냐?'며 딸 집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역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남 대하듯 하는 엄마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방법이 없으니 다시 한번 부탁했다. 간곡한 부탁을 엄마는 또 거절했다. 꾹꾹 누르고 있던 서러움이 터지고 말았다.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조리원 들어갈 돈도 없다고 나는!
엄마는 몸조리 없이 넷을 키웠다는 말이 요즘 시대 딸한테 할 소리야?
약골인 딸이 아프면 걱정된다더니! 몸조리 못 해서 골병들 걱정은 안 해?
딸 골병드는 건 괜찮고, 아저씨 밥 못 챙겨 먹는 건 걱정돼?
아저씨는 내가 자기 딸도 아니고 자기 아들도 과감하게 버리는 냉정한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쳐!
그럼, 엄마는 우리 엄마 아냐? 너무하네, 진짜! 어어엉~~~"
서럽게 우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엄마는 마지못해 올라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엄마에게 몸조리를 부탁했다는 말을 들은 우리 집 큰 딸이자 나를 백 년 원수 김경희는 "네가 왜 엄마를 고생시키냐?"라고 전화에 대고 욕했다.
언니는 재혼했고 임신 6개월이었다. 새 형부가 부자는 아니지만 시부모의 도움으로 경제적인 걱정 없이 지낸다고 자랑이다. 출산이 아직 멀었는데 시댁에서 조리원을 예약해 두었다며 어려운 형편의 동생이 안쓰럽기는커녕 왜 그렇게 사냐고 빈정댄다.
시댁 도움으로 사는 주제에 부자 놀이에 못다 한 효녀 놀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언니라는 인간은 대체 왜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어릴 적부터 쭈욱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다. 초지일관 동생 알기를 원수 대하듯 하더니 어른이 되어서도 그 모양이다. 핏줄이니 어쩔 수 없다. 너그러운 내가 백만 두 번째 용서하기로 했다. 김경희 너는 너그러운 동생을 둬서 좋겠다.
부모 복도 없는 나는 형제 복도 없고 거기에 돈까지 없으니 더럽고 서러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출산은 쉽지 않았다. 유도분만 중 양수가 터져 흐르는데 아이는 거꾸로 앉아 나올 생각도 없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오랜 진통으로 숨을 쉴 수 없었다. 내 손을 꼭 잡은 남편은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이러다 우리 와이프 죽으면 어떻게 해요~~ 얼른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남편은 안절부절못하고 간호사를 계속 불러댔다. 홀아비가 될지도 모르는 일생일대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싶어 수술을 결정했다.
몇 해가 지나 남편은 자신이 운 것도, 내가 죽을 뻔했던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나님은 무교에 무신론자인 남편은 너무 사랑하셔서 그에게 건망증을 선물해 주신 모양이다.
일주일 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2주 동안만 곁에 있기로 했다.
더 이상 욕을 먹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이는 직접 돌보겠다고 말했다. 간단한 집안일은 남편이 했고 엄마는 밥만 챙겨 주고 종일 TV를 봤다. 산모가 아기 목욕까지 시키면 손목 시리다고 말하던 엄마는 스스로 하겠다는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밥도 못 먹고 애를 돌보는 딸에게 애는 울게 두고 너부터 먹으란다. 진심일까? 진심이겠지? 냉정과 애정의 경계를 오가는 엄마의 마음을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당진으로 내려가기 전날 엄마는 꿈꾸었다. 커다란 호랑이가 엄마 곁의 두 아이를 공격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해 싸웠다. 큰 아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던 호랑이는 아이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났다.
엄마는 새로 태어나는 손주들의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큰아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언니의 아이라고 생각했다. 기형아 정밀검사를 한다던 언니 뱃속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조심하라고 일러주고 네게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엄마는 예지몽을 꾸는 사람이지만 해석은 항상 엉터리다.
엄마가 당진으로 내려가고 이틀 뒤 태어난 지 3주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응급실에 실려 갔다.
세 개의 꿈은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하나의 꿈이었다. 왜 호랑이였을까? 당진에서 남편의 꿈에 들어온 호랑이는 왜 엄마 꿈까지 찾아왔을까? 애석하게도 세 개의 꿈을 제대로 해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에서 몸조리하는 동안 남편은 독감에 버금가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조리원에서는 감기 걸린 가족이나 손님의 면회는 금지한다.
옛날 사람들도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걸고 외부 사람의 출입을 막았던 이유가 병균과 바이러스로부터 아기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인지 알지 못했고 엄마는 감기에 걸렸으니,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뿐이었다.
사랑스러운 꼬물이가 너무 보고 싶었던 남편은 퇴근하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쪼르르 달려가 마스크만 낀 채 자는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아이 앞에서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집안에서는 마스크를 끼지 않았고 그 지독한 감기를 나에게도 나눠주었다. 코로나를 겪어낸 지금은 마스크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마스크를 끼고 돌봤지만, 이런저런 경로로 바이러스가 아이에게 갔던 모양이다.
병원에서는 부모의 감기가 아이에게 뇌수막염을 일으킨 것 같다고 판단했다. 건강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보통의 아기들은 생후 3개월까지는 엄마에게서 받은 면역력으로 감기를 견딘다. 서서히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생후 6개월이 되면 자가 면역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엄마가 면역력이 워낙 약해 우리 아이는 받은 면역력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저항력 없는 아이의 몸으로 들어간 바이러스는 뇌 수막에 염증을 일으켰고, 열린 대천문을 통해 뇌 안까지 침투했다고 의사는 말했다.
탄생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엄청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우리는 대책 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귀신 나부랭이나 예지몽 따위가 무서울 게 아니었다. 거역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은 끝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터널로 우리를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