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병원에 실려갔다

"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by 온벼리


엄마가 당진으로 내려가고 이틀이 지났다. 밖에는 4월의 벚꽃 잎이 날리고 있다. 창문 가득 햇살이 들어오는 고요한 아침.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와 둘 뿐이다.


아침 설거지 중이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황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처음 듣는 고성을 지르며 아이는 몸은 바르르 떨었다. 고통스러운 울음이었다. 어디가 아픈지 여기저기 살피는 사이 울음소리가 금세 잦아들더니 아이는 몸이 축 늘어뜨리며 의식을 잃었다.


119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간호사는 아이가 경기하는 것 같다며 겉싸개와 내복을 풀어놓았다. 너무 어린 아기라 손을 쓸 수 없으니 소아과 의사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 뒤 내려온 소아과 의사는 약도 쓸 수 없는 시기에 상태까지 좋지 않으니, 중환자실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아기 상태를 보고 연락드릴 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세요."

의사는 아이를 안고 급하게 가버렸다. 의사가 나간 문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가 중환자실로 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집에서 기다리는 일뿐이라니...




신생아 중환자실은 평일 오전 11시에서 11시 30분까지만 면회가 가능했다. 작은 창문의 블라인드가 열리면 몇 명의 보호자들이 창문에 붙어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이를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의사는 아이의 상태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고 들어갔다.

대부분 황달이나 미숙아로 입원한 아이들이었다. 기형아로 태어나 다섯 번의 수술을 거친 아이도 있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간호사가 말해 주었다. 심장부터 얼굴까지 온갖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치료비든 뭐든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 엄마는 평생 죄인으로 살겠구나! 싶었다.

발등에 주삿바늘을 꽂다가 혈관이 다 터지면 머리털을 밀고 머리에 바늘을 꽂았다. 아이는 머리를 세 번이나 밀어야 했다. 아이는 답답하고, 좁고, 딱딱한 플라스틱 인큐베이터 안에서 버둥대고 있었다.

늘 면회 시간 마지막까지 남아 하염없이 아이만 바라봤다. 간호사가 그만 가라고 인사를 하며 블라인드를 닫으면 아무도 없는 복도 의자에 앉아 한참을 울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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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실 창문에 붙은 종이에는 전날 먹은 분유량과 몸무게가 적혀 있었다. 늘어난 몸무게와 아이가 먹은 분유량을 보고 호전 정도를 가름할 수 있었다.


아이는 중환자실에서도 경기를 계속했다. 보통의 경기가 아니었다. 뇌수막염으로 인한 뇌병변성 발작이었다. 영아 뇌수막염 사망률은 생각보다 높았다. 아이는 홀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면회를 가고, 의사의 말을 듣고, 기다리며 우는 것이 전부였다.


며칠이 지나자, 발작은 줄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극소량의 약물도 투입하기 시작했지만, 워낙 소량이라 아이는 오랜 시간 뇌수막염을 더 견뎌야 했다.


염증 수치가 서서히 낮아지고 드디어 조금씩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 2주 동안 금식이었던 아이는 분유 먹는 양이 하루가 다르게 늘기 시작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어른인 나도 장염으로 이틀 금식할 때 그리 힘들었는데 작은 몸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곁에 없으니 얼마나 서러웠을까?


아이를 볼 수 있는 30분을 위해 하루를 살았다. 병원에서 울다 돌아오면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녁에는 꾸역꾸역 밥을 삼켰다.

종일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기다린다고 당장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보지도 않는 TV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아이만 기다렸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하루는 너무 길었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드디어 기다리던 퇴원 날이다. 의사와 퇴원 면담을 시작했다.

"OOO 아기 퇴원 면담 하겠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OOO는 아기 이름이 아니고 제 이름입니다."

"아 그래요? 아기 이름은 아직 없나요?"

"네 아직 못 지었어요."

"네... OOO 산모님 아기 퇴원 면담 시작하겠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생후 3주 만에 병원으로 실려 와 생사를 오갔으니 출생신고 기간이 지나도록 이름 지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OOO 산모님 아기는요. 그동안 고비가 몇 번 있었는데 잘 넘겼어요.

퇴원 앞두고 뇌척수액 검사를 한 번 더 했는데 백혈구 수치가 정상치로 돌아왔네요.

뇌척수액 검사는 척추에 바늘을 꽂고 척수액을 뽑아서 검사를 하는 건데요. 어른도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검사예요. 아기는 처음 두 번은 반응도 하지 않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어요. 그런데 저번에 검사할 때도 반응하고 이번에 검사할 때는 아주 많이 반응했어요."

반응하지 않았다는 말도 아팠고 반응했다는 말도 아팠다.

"백혈구 수치가 낮아졌으니까, 뇌수막염은 이제 다 좋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외래 진료받으면서 통원 치료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컴퓨터 모니터를 돌려 MRI 촬영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음... 여기 MRI 사진에... 뇌가 많이 소실된 것이 보이시나요?

여기, 여기 군데군데 여러 부분 보이시죠? 이 부분들은 염증이 생겨서 뇌가 소실된 부분들인데 굉장히 광범위하죠? 다 물로 변한 거예요."

뇌의 4/1이 녹아 없어졌다. 그런데도 아이가 살아 있다. 기적이었다. 하지만 기적보다 더 크게 와닿는 것은 현실이었다.


"뇌는 신체의 모든 제어를 담당하잖아요? 소실된 부분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텐데요. 예를 들면... 눈을 관장하는 부분에 이상이 있으면 실명할 수도 있고, 신체 움직임을 관장하는 부분에 이상이 있으면 걷지 못하거나 마비가 올 수도 있죠.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에 이상이 있으면 말을 못 하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뇌가 관장하는 부위에 따라서 지장을 받는다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지금은 어떤 기능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앞으로 아기가 어떻게 자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뇌는 다른 부분들이 기능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긴 해요. 그래도 부위마다 관장하는 기능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대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더 많죠.

크는 것을 지켜보면서 발달 테스트도 하시고 재활치료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재활의학과랑 소아청소년과를 연결해 드릴 테니까 진료 날짜 예약하시고 가시면 됩니다."


아이의 뇌는 온통 물로 변해 있었다. 대천문이 열려 있던 시기라 이마 앞쪽에 위치한 대뇌는 직격타를 맞았고 가장 많이 소실되었다. 의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울고 있었다. 참아 보려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랄지 장담할 수 없다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다리가 후들거려 겨우 걸어 나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날인데 행복하지 않았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많은 날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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