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의 꽃처럼 피어나라

"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by 온벼리


막 결혼식을 올린 내게 남편의 땡중 친구는 빨리 아이를 갖지 않으면 이혼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기운을 느끼고 관상을 보고 뭔가가 보인다고 떠드는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땡중 말도 믿고 운세도 보는 사람이었다. 이제 막 결혼한 사람에게 이혼이라니... 땡중은 지금 조계사 사회국장이 되었다. 승려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려답지 않았던 그를 알기에 나는 그를 그냥 땡중이라고 부른다. 절에 들어앉아 세상 모든 것을 통달한 듯 떠드는 너보다 인생 풍파를 세게 겪어낸 내가 내공이 더 깊지 않겠냐고 떠들어도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편은 아직도 땡중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가 보고 싶지 않다. 남편 카톡으로 보내온 땡중의 온라인 법회 모습은 낯설고 거북스러웠다. 할 건 다 하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그가 속세와의 인연은 언제쯤 끊을 것인지 궁금하다. 누구처럼 풀 소유라도 하려는 것인가?


결혼 초 나는 땡중의 말을 듣고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생긴 아이가 첫째 아이다.

그의 말대로 아이가 없었다면 우리 부부는 분명 이혼했을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불같이 싸웠으니 이혼할 수 없게 된 것이 오히려 억울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것은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이혼은 불가능한 일이 된 것이다. 화가 나면 감정에 치우쳐 이혼 카드를 꺼내 드는 남편보다 현실적이고 아이에 대한 애정도가 높은 나는 더 참고 견뎌야 했다.


땡중은 정말로 뭘 알고 조언했던 것일까? 뭐가 보이긴 했던 것일까? 그래서 이제 우리 집에는 발걸음도 못 하는 것일까? 뭐든 알고 있었다면 내가 본인을 반기지 않게 될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반기는 게 다 뭔가? 면상이라도 보였다가는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남편이 그리 불러도 우리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은 칭찬해 줘야겠다.


썩을 놈에 땡중은 그냥 이혼하게 내버려둘 것이지, 힘들게 낳은 아이는 장애인이 되고 차마 이혼하지도 못하고 매여 살게 만들다니...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간에 그따위 조언을 한 대가로 멱살뿐 아니라 머리채를 쥐고 흔들어도 시원찮을 판이다. 아니다! 잡아챌 머리털도 없으니 물어뜯어야겠다.

나의 이런 삐딱함에 남편은 그저 웃는다.

"그랬었어? 그놈이 뭘 알고 떠들었겠어! 그냥 한 말이겠지!"

그렇다. 남편은 역시 땡중의 말을 믿은 게 아니었다. 자기가 믿고 싶은 말만 믿는 것이다.

나는 또 힘겨운 현실에 눈물짓지 않으려고 신세 한탄 대신 남편의 친구를 두고 있지도 않은 머리털을 다 뽑아 놓는 상상을 하며 화풀이를 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가 괜히 밉다.


대학 동기인 친구 Y는 철학을 독학했다.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의 관상을 보고 뭐라 뭐라 떠들어 대던 녀석이다. 나는 Y에게 아이의 관상을 봐 달라고 했다. 재미로 봐 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핑크빛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아이의 불안한 미래가 두려운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Y는 아이가 어려서 관상을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크면서 얼굴도 많이 변할 테고 아직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아 관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에 내 관상에서 자식 운을 봐주겠다고 했다.

Y는 내가 생각보다 아이를 잘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잘?'

Y의 말을 계속 되뇌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걱정하는 미래보다 나는 아이를 잘 키워 낼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누군가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관상을 봐달라고 한 것은 거역할 수 없고 거꾸로 오를 수도 없는 운명의 파도를 견디기 위한 힘과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의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이름으로 지을 수는 없었다. 되지도 못할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놀림거리가 될 것이다.


봄에 태어난 아이에게 희망이 되는 이름을 주고 싶어서 새봄이라고 지어 주었다.


산과 들에 새싹이 돋아나는 새봄.

모든 자연이 새로이 시작되고 꽃을 피우듯

너도 꽃처럼 피어나라고...


봄이라는 글자에 한자가 없어 한글로 지었다.

동사무소에 벌금을 내고 뒤늦은 출생신고를 했다. 아이는 이제 이름과 주민번호를 갖게 되었고 완전한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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