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안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by 온벼리


봄이의 머리는 대천문이 닫히지 않은 상태로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뇌는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고 그 물은 뇌 안의 물길(뇌실)을 통해 빠져나간다. 뇌수막염은 뇌만 녹인 것이 아니라 물길까지 막았다.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니 뇌압은 높아지고 머리는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두증이었다.


생후 6개월에 션트수술이 결정됐다. 두개골 후두의 피부를 절개한 뒤 뼈에 구멍을 뚫어 물을 빼내는 장치(션트)를 뇌실 안까지 길게 꼽는다. 두개골 밖으로 빼낸 관을 피부와 근육 사이로 삽입해 복부까지 빼낸다. 관은 머리 뒷부분에서 목을 타고 내려와 앞쪽 갈비뼈 사이를 지나 복부로 들어간다. 관 안으로 흐르는 물을 복부의 내장들 사이로 빼주면 몸 안에서 흡수되어 물을 배출할 수 있게 된다.


션트 수술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이다. [사진 출처 : 분당서울대병원]



돌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수술과 병원에서의 모든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조그마한 몸에 정맥주사를 꽂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버둥대지 못하도록 아이의 몸을 단단히 묶어 고정하고도 머리와 다리를 붙잡아야 했다. 혈관을 찾지 못하고 팔다리에 수없이 바늘을 꽂았다 뺄 때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이 어린 간호사가 열한 번을 쑤셔놓고는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두 번째 간호사도 포기하고 나가자 그제야 경력이 많은 간호사를 불러왔다. 혈관 찾기가 금세 끝나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화가 치밀기도 했다.

처음부터 숙련된 사람을 보낼 것이지 어린 아기의 혈관은 찾기 어렵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초짜 간호사를 보내다니... 실습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당직 간호사가 바뀔 때마다 제발 혈관 잘 찾는 사람을 보내 달라고 사정을 해야 했다.

간호사들은 자꾸 찔러대니 혈관이 더 숨는다며 진땀을 흘렸다. 링거를 꽂은 아이의 얇은 혈관은 이틀도 못 가 터져 부어올랐고 또다시 새로운 혈관 찾기를 반복해야 했다.


열여덟의 봄이는 두꺼운 바늘도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 씩씩해졌지만, 어릴 적 봄이에게 병원과 주삿바늘은 공포 그 자체였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더 했을 것이다. 혈관을 찾을 수 없어 머리에 꽂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는 그 실상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수술을 위해 또 머리를 밀어야 했다. 이번에는 잔털까지 바짝 밀어야 한다며 나이 지긋한 이발사가 병원으로 왔다.

남자는 시작도 전부터 손을 떨고 있었다. 머리털을 깨끗하게 밀어야 하는데 아이는 가만있지 않을 테니 행여나 살이라도 벨까 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염 깎듯 거품이라도 바르고 깎으면 좋으련만 남자는 물기 하나 없는 마른 살을 면도날로 밀기 시작했다. 잘 깎일 리 없었다. 민 곳을 밀고 또 밀었다. 연약한 아이의 살갗 위로 날카로운 칼날이 반복해서 지나갔다. 살은 다 까지고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버둥대는 아이가 칼날에 베이지 않도록 더 힘껏 붙들어야 했다. 아기가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려니 속이 타들어 갔다.

정신없는 이발사가 같은 곳에 반복해서 밀고 있는 꼴을 지켜보다 못해 결국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애가 아파하는데 왜 깎은 데를 자꾸 깎는 거예요? 맨살을 계속 밀면 살이 다 까지잖아요! 애가 아파서 우는 거 안 보여요? 머리털을 깎으라니까 왜 자꾸 살을 깎냐고요!!!!!" "어... 어... 머. 머리털이 남지 않게 다. 다 밀어야 되는데... 아이고... 더 바. 바짝 밀어야 하는데... 잘 안 깎이네... 아이고... 아이고..." 땀범벅이 된 남자는 말까지 더듬었다.


소아병동은 장염 환자들로 가득 차 어쩔 수 없이 신경외과 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대두분 나이 지긋한 환자들이라 아이의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맥주사에 이발까지 하면서 병동은 떠들썩했다. 입원 첫날부터 안쓰러운 아기의 존재를 모두에게 알리는 요란한 신고식이 되었다.


이발을 겨우 끝내고 붙어있는 머리털을 닦아 주어야 했다. 샤워실에서 봄이는 또 병동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맨살을 면도날로 깎았으니, 물이 닿자마자 쓰라림에 울어 재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씻기라고 했으니 씻기기는 해야겠고 아이는 울어대니 이번엔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손발이 맞지 않아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화를 쏟아내고 있었다.


입원 내내 간호사를 수시로 불렀다. 요구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들은 유난스럽다며 싫어했지만, 아이에게 불편함을 참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욕을 먹더라도 어쩔 수 없이 유난을 떨어야 했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슬며시 음료수 한 상자를 가져다 두고 아무 말 없이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 당일 아침 첫 번째 순서로 수술이 잡혔다. 어린애라고 통제구역 수술방 입구까지 엄마가 안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수술 전까지 최대한 안정을 취하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봄이를 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 잘될 거라고... 편안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불러 주었다.

간호사가 아이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확인하자 의사가 전신마취제가 든 주사기와 산소마스크를 들고나왔다. 품에 안겨있을 때 마취제가 링거를 타고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아이의 몸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의료진은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아이를 안고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식을 잃고 거꾸러지던 아이의 모습은 가슴 깊이 새겨져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마도 내가 죽는 순간이 되면 인생이라는 필름이 펼쳐질 때 한 장면으로 지나갈 것만 같다.


아이를 수술방으로 들여보내고 통제구역에서 나올 때 기다리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참았던 감정이 북받쳐 올라, 한 발짝도 더 내디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다. 부모라는 자리의 무게를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수술 시간은 꽤 길었다.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수술 중이라고 쓰인 글씨만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남편을 끌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도라고 생각했다.

"자기야! 우리 기도하자! 내가 기도 할 테니까. 자기는 내 손잡고 마음으로 기도해!"

남편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사람들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12년 만에 하나님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제발 살려 달라고... 너무 어린아이라고... 그 연약하고 조그마한 머리에 구멍을 뚫어 수술한다고... 모든 순간을 지켜달라고... 제발... 별 탈 없이 수술이 잘 끝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목이 찢어져라 부르짖었다. 온 영혼과 마음을 갈아 넣은 기도였다. 최선을 다한 몸부림이요 고통이었다.

남편도 흐느껴 울었다. 눈물이 콧물이 되고 목을 타고 흘러 옷을 적셨지만, 닦아낼 정신도 없이 기도에만 집중했다.

기도가 끝나고 남편과 나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수술은 예상 시간을 1시간 30분이나 지나서 5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의사는 수술이 잘 끝났다며 웃으며 이야기했고 아이가 깨어나는 것을 도와주라며 나를 회복실로 불렀다.


수술대에 맨몸으로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아이의 몸은 차가웠고 가래와 콧물이 심했다. 스스로 호흡하고 기침을 할 수 있도록 가슴을 계속 두드려 줘야 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나는 또 소리 없이 울었다. 아이는 아직 몽롱한 상태였지만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쉼 없이 중얼거리며 아이의 몸을 만져 주었다.

아이는 머리와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압박붕대를 감고 있었다. 두통이 심한지 계속 울고 있었지만, 수술이 잘 끝났다는 것이 감사했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견뎌낸 아이가 대견했다.

"잘했어! 울 아기 고생했지? 조금만 참자~ 며칠만 지나면 더 좋아질 거야! 조금만 참으면 두통도 사라질 거야!"

아이를 달래고 내 마음도 달랬다.


병실로 옮기고 회복하는 동안에 아이 옆에서 부지런히 떠들었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눈을 맞추고 쉼 없이 놀아 주었다. 옆 침대 환자는 어떻게 그렇게 쉬지도 않고 놀아주냐며 신기해했다. 조금이라도 통증을 잊게 해 주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 드디어 분유를 먹기 시작했지만, 자꾸 토했다.

친정엄마와 여동생이 면회를 왔다. 분유를 막 토하고 한바탕 울어 잦히던 순간에 엄마가 병실로 들어섰다.

"어이구~ 어린것이 불쌍혀서 어쩐다니... 어이구~"

엄마는 손녀가 불쌍하고 그런 아이를 품고 있는 딸이 또 불쌍해서 눈물을 닦으며 병실을 나갔다.




부기가 빠지고 회복이 잘 되어 실밥을 풀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잠시 집에 다녀온 사이 병실에서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실밥을 잡아당겨 끊어야 하는데 아프고 예민해진 수술 부위를 잡아당기니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고 병실 사람들은 물론이고 옆 병실 아주머니들까지 몰려와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한 아주머니가 나를 붙들고 말했다.

"아이고~ 어디 갔다 왔어! 아까 아기 머리 실밥 뽑는다고 난리가 났었는데~ 얼마나 아프면 그렇게 울겠어~ 아기는 거짓말을 못 해! 아이고~ 안쓰러워서 여기 엄마들 가슴이 다 녹아내렸다니까~"


병원비가 부담스러워 다인실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안정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안정을 위해서 병실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엄마와 큰 아주버니의 도움을 받아 1인실로 옮겨 며칠을 더 지냈다.


션트 수술은 2년도 안 돼서 재수술하는 경우가 많고, 어린아이일수록 성공 확률이 낮은 수술이라고 한다. 관이 막히거나 감염의 위험도 크다.


봄이는 어릴 때 수술한 이후 지금까지 션트가 제 기능을 잘하고 있다. 키가 자라면서 몸 안에 션트가 짧아지면 재수술하는 때도 있는데 관을 여유 있게 넣어두어 재수술은 필요 없다고 했다.

봄이의 뒤통수에는 머리털이 자라지 않는 커다란 말굽 모양의 수술 흉터가 남아있다. 머리를 만져 줄 때마다 흉터가 보인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아릿한 아픔이 올라온다.


아픔은 아픔대로 남아 지금의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감사의 고백을 하게 만든다.



목의 상처는 션트 관이 지나갈 때 절개된 수술 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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