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봄이는 수술 이후 정기적으로 MRI를 찍어야 했다.
어린아이들은 MRI 검사를 무서워한다. 협소하고 시끄러운 기계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들 검사에는 수면제가 처방된다.
당일 아침부터 긴장 상태다. 검사 도중 조영제를 몸 안으로 주사해야 하기 때문에 정맥주사를 꽂아야 하고,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여야 하고, 아이를 달래서 재워야 한다.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만 검사실로 들어갈 수 있다.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30분 먼저 병원에 도착했다. 혈관을 찾느라 아이를 한바탕 울리고,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MRI 검사 대기실에서 약을 먹인다고 또 울리고, 억지로 재우기 위해 아이와 씨름한다. 어른이라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일이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MRI 대기실에는 창문 하나 없었다. 답답하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두 평도 안 되는 비좁은 공간에 ㄱ자 모양의 3인용 소파와 테이블 하나가 전부다.
어린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냥 꿀꺽 삼키면 좋으련만 약을 삼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울며 뒤집어진다. 울음이 길어지면 약뿐만 아니라 먹은 것까지 다 토해낸다. 냄새나는 옷을 닦아주고 다시 약을 받아와야 했다. 겨우 약을 삼켰다고 해도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아이는 계속 칭얼대기만 할 뿐 잠들지 않는다.
봄이는 잠자리를 가린다. 잠귀도 밝다. 어딜 가든 집이 아니면 잠투정에 지친다.
제시간에 잠들고 검사를 하면 좋으련만 여유롭게 왔어도 뒤늦게 잠들어 뒷사람과 순서를 바꿔 검사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떤 날은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몸에 좋지 않은 수면제를 검사 때마다 먹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또는 당연하다는 듯 강요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아이가 잠들면 기계 위에 눕히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머리와 몸을 고정했다. 엄마는 MRI실 안에 있어야 했다. CT나 MRI를 찍을 때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은 검사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린아이는 예외다. 검사 도중 아이가 깨어나는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MRI가 돌아가는 동안 아이의 얼굴을 주시하며 옆을 지켰다. 간혹 아이가 깨어나 검사가 중단된 적도 있었는데 더 큰 문제는 머리와 몸을 고정한 상태에서 울다 토하게 되면 기도가 막히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빨리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뭘 하든 쉽지 않고 별것도 아닌 일에 울음을 터뜨리니 부모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겨우 30분의 검사를 위해 두 시간을 씨름하며 긴장 상태로 있다 보면 금세 녹초가 되고 만다.
아이를 재워야 할 때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자장가는 너무 짧다. 반복해서 부르다 보면 내가 더 지겹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음이라야 잠이 잘 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따뜻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봄이는 아직도 어릴 적 듣던 자장가를 기억한다. 노래를 불러주며 기억나냐고 물었다. 노래를 부르자마자 입을 씰룩거리며 멋쩍게 웃는다. 그리고 가사는 다 기억나지 않지만, 음은 기억난다고 대답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불러줬으니 5년 정도 불러줬던 것 같다. 이후로 나는 둘째를 돌봐야 했고 봄이는 자연스럽게 아빠 담당이 되었다. 아빠는 자장가를 불러 주지 않았다. 아이 옆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그리고 먼저 잠들었다. 잠든 아빠를 지켜보다 아이도 잠들었다.
봄이는 대뇌가 많이 소실되면서 기억을 잘 저장하지 못한다.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새로 입력되는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반복된 장기 기억은 단기 기억보다는 나은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뭐든 잘 기억하지 못한다. 몇 년 전이나 며칠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특히 어린 시절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 들었던 자장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자는 것도 싫은데 자꾸 자라고 노래를 부르니 당시에는 그 노래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여덟 살이 된 지금의 봄이는 어릴 적 자장가를 따뜻함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불러주길 잘했다.
봄이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다.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예민]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고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주고파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언제쯤 그 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거렸죠
흐르는 냇물 위에
노을이 분홍빛 물들이고
어느새 구름사이로
저녁달이 빛나고 있네
노을빛 냇물 위엔
예쁜 꽃모자 떠가는데
어느 작은 산골소년의 슬픈(예쁜) 사랑~ 얘기~
('슬픈 사랑'이라는 말이 안타까워 '예쁜'이라는 말로 바꿔 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ulcIdBOaZG4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
너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걸
언제나 너를 향한 몸짓에
수많은 어려움뿐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굳은 다짐뿐이죠
다시 너를 구하고 말 거라고
두 손을 모아 기도 했죠
끝없는 용기와 지혜 달라고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여
이제 나의 손을 잡아보아요
우리의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죠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소중해 함께 라면
https://www.youtube.com/watch?v=tbMp8B3w_wo
어릴 적 나는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꾸었다. 비행기나 기구를 통하지 않고 중력을 거스르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둥둥 떠올라 날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가 좋았나 보다.
아이가 '나를 위한 엄마의 자장가'라고 따뜻함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