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의 동굴

"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by 온벼리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발달장애 재활치료는 자극을 주어 늦어진 발달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를 업고 버스로 병원을 오가며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했다. 보통 아이들은 주변 환경을 보며 스스로 자극을 찾아 발달하는데 봄이는 치료로 자극을 줘야 아주 느리고 힘들게 따라갔다. 걸음이 늦어져 다리 근육이 무너지고 발바닥 안쪽이 튀어나오는 심각한 평발이 되었다. 그래도 걸을 수는 있어서 다행이었다.

근육의 무너짐을 방지하는 맞춤형 깔창을 제작해 신발에 끼웠다. 성장에 맞춘 특수 깔창은 주기적으로 제작해야 했다. 맞춤형 깔창의 어마어마한 가격이나 중요성 따위를 알 리 없는 아이는 불편한 깔창이 든 신발은 신지 않고 벗어던졌다.


아이는 병원 재활치료를 싫어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치료를 종결하자는 말이 나올 때까지 몇 년 동안 부지런히 다녔다.


아기일 때는 소리 나는 장난감을 앞에 펼쳐 놓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치료사는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자극적인 장난감을 사용했다. 정적이고 조용한 것을 먼저 느끼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사치였다. 어릴 적부터 소리 나는 장난감을 자주 접한 아이는 종이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책과 친해지게 하기 위한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 텔레비전은 정해진 시간만 시청하게 하고 책을 많이 읽어 주었다. 둘째가 태어나고부터 칠 년 동안은 텔레비전 없이 살기도 했다. 드라마나 뉴스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나니 아이들은 책과 친해져 있었다.


재활병원에서는 언어치료를 받고,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심리치료, 인지치료, 감각 치료를 받았다. 발달이 비슷한 아이끼리 묶어 사회성을 길러주는 그룹 치료도 받았다.

장애인복지관은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다루는데 저렴하기까지 했다. 경쟁률이 치열했다. 해마다 심사를 거치거나 추첨을 통해 치료 대상을 선발했다. 순위에서 밀리면 다른 치료기관을 알아봐야 했다.


재활전문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했다. 집중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입원 치료를 하는 아이들이 상당했다.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 대기를 걸어 둬야 했다.

재활병원의 입원 치료는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퇴원해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대기자를 위한 배려였지만 입원 치료가 꼭 필요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치료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저기 치료를 다니며 장애아가 많다는 것에 놀랐다. 한 곳에 모아두니 더 많아 보였겠지만 장애아가 많다는 것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엄마들도 많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치료를 위해 재활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재활병원은 다른 병원들과 좀 달랐다. 숙식하며 집중 치료를 할 수 있는 기숙사 같은 곳이었다.

병원에서 함께 숙식하는 엄마들은 그룹을 만들고 계급이라도 있는 듯 행동했다. 어딜 가나 그렇지만 나이가 많고 오랜 재활병원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재활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가정들이었다. 그들은 돈 자랑으로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다. 처음 들어온 사람은 함부로 끼지 못하도록 까칠하게 굴었다. 나는 언니를 연발하며 딸랑거리는 성격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것도 싫어한다. 그들이 무섭고 싫었다. 돈도 없고 붙임성도 없었던 나는 있는 척과 텃세를 견디지 못하고 입원 하루 만에 퇴원해 버렸다.


복지관을 찾는 엄마들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듯 친밀했다. 순하고 착했던 그들은 재활병원의 이기적인 그룹과는 달랐다. 그들도 그들끼리만 어울렸다. 장애를 가진 아이끼리 놀고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끼리 어울렸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며 웃다가 같이 울기도 했다. 그리고 금세 눈물을 닦고 또 웃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가득 찬 슬픔을 서로 들추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을 가꾸지 못하고 초라하고 불쌍해 보였다. 빤히 보이는 슬픔까지 나와 너무 닮아있었다. 그래서 싫었다. 나는 그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아이를 치료하는 데 엄마들의 관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치료하는 동안 엄마들의 대기시간은 길다. 자주 보는 얼굴들과 대화하고 친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 속에 섞이지 못하면 외톨이가 된다. 뻔히 알면서도 나는 마음을 열지 못했다. 다가오면 한 발 뒤로 물러서 버렸다.


그렇다면 일반아동 엄마들과는 잘 지내야 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아이의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일은 보통 내공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내 아이는 그들의 아이와 달랐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었다. 몇 번의 거부를 당하고 나니 다가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스물아홉의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자 슬프고 외로웠다. 아픔이 커질수록 동굴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병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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