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스물여덟. 임신 3주부터 시작된 입덧으로 앙상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친정엄마는 나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9개월 동안 입덧을 했다. '그렇게 못 먹어서 네가 이렇게 약하게 태어났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입덧은 유전이라는데 유별난 입덧은 엄마를 닮았나 보다. 변기와 씨름하다 지쳐 바닥을 기어다녔다. 화장실 문 앞에 널브러져 잠들 때도 많았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물과 비스킷 몇 조각이 전부였다.
아파트 1층 단골 감자탕집 고기 육수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육수 냄새가 9층까지 올라왔다. 한여름에 창문도 열지 못하고 찜통더위를 선풍기로 버텨내고 있었다. 머리를 감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친정엄마가 당진에서 올라왔다. 초췌한 몰골로 바닥을 기고 있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결혼 한 둘째 딸 집에 처음 온 것이다. 궁핍한 살림에 에어컨 하나 없이 비실거리는 딸이 안쓰럽다며 엄마는 같이 온 남자에게 부탁해 36개월 할부로 스탠드형 에어컨을 사주고 내려갔다. 에어컨이 가전제품 중 가장 고가의 제품일 만큼 집안 살림은 초라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먹고사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을 돌보지 않았던 엄마는 국민학교 이후로 한 번도 학교에 와 본 적이 없었다. 학비와 생활비는 보내줬지만, 대학 시절 자취방을 구하는 것부터 이사하는 것까지 모든 일을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먹고사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을 돌보지 않았던 엄마는 국민학교 이후로 한 번도 학교에 와 본 적이 없었다. 학비와 생활비는 보내줬지만 대학시절 자취방을 구하는 것부터 이사하는 것까지 모든 일을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먹고사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을 돌보지 않았던 엄마는 국민학교 이후로 한 번도 학교에 와 본 적이 없었다. 학비와 생활비는 보내줬지만, 대학 시절 자취방을 구하는 것부터 이사하는 것까지 모든 일을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대학 3학년. 졸업에 대한 두려움으로 2년간 휴학을 했었다. 3D 학원에 다니고 싶어 서울로 올라왔지만, 학원비는커녕 방 구할 돈도 몇 푼 되지 않았다. 저렴한 사글세를 찾아 구로구 가산동으로 갔다.
두 평도 되는 방안에 싱크대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쪽방인 듯 쪽방은 아니지만 쪽방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비좁은 공간이었다.
엄마는 웬일로 서울에 일이 있다며 들렀다 가겠다고 했다. 외삼촌과 이모들과 함께였다. 딸이 사는 꼬락서니를 형제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웠던 엄마는 방에 들어와 보지도 않고 문밖에서 휘둘러보고는 그대로 가 버렸다. 서둘러 돌아서며 엄마는 주식이 어떻고 땅이 어떻고 떠들고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날의 충격은 딸이 굶어 죽는 꼴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석 달 동안 연락을 끊고 생활비도 없이 굶기 시작했다. 며칠을 굶다가 아무 약이나 한 움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한창나이에 그 정도로 죽을 리 없었다. 3D 학원은커녕 살기 위해 취직을 해야 했다. 웹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딸자식의 더위가 걱정된다는 엄마의 말을 나는 또 의심했다. 그저 함께 온 남자 앞에서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에어컨을 들여놓고 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가산동 쪽방을 급하게 떠났던 엄마는 이번에는 에어컨만 들여놓고 급하게 떠났다.
임신 6개월쯤 입덧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5개월 동안 먹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먹깨비처럼 먹어대기 시작했다. 앙상하던 팔다리는 금세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배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엄마와 남자가 사는 당진에 내려가 보기로 했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15년 동안 식당을 하며 아이 넷을 키웠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하다 결국 쓰러졌다. 병원에 실려 가고 나서야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식당을 접고 당진에 사는 남자 집으로 들어가 살겠다고 했다.
남자는 엄마를 보려고 수없이 식당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미인이라 따르는 남자들이 많았지만, 자식들이 넷이나 되니 재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엄마가 드디어 식당을 처분하고 당진으로 가게 된 것이다.
당진 아저씨는 집안의 제사가 많은 장손이다. 엄마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상관없이 자신의 살길을 찾아서 간 것이다. 남동생은 군대를 가고 여동생은 고시원 생활을 해야 했지만 형제들은 엄마의 선택에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었다.
당진 아저씨는 건축하는 사람이다. 남편과 당진에 내려갔을 때 자신의 집을 직접 지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1층은 건축회사 사무실, 2층은 살림집, 벽은 황토를 칠해 건강에 좋다는 그 집은 크고 넓었지만, 주인을 닮아 포근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이었다.
엄마가 아저씨의 몇 번째 여자인지는 모른다. 본처가 아닌 듯한 젊은 전처와 그 사이에서 나은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전처에게 신기가 있어 못 견디고 이혼했다는 아저씨의 말에는 전처에 대한 애정도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없었다.
아저씨는 내가 옆에 있는데도 엄마를 무시하며 따지고 들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찾아가며 잔소리를 견디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엄마! 아저씨 성격이 안 좋은 거 같은데? 무슨 잔소리를 저렇게 많이 해? 그리고 엄마를 너무 무시하는데?"
"잔소리 허는 거 같어두 엄마헌티는 잘혀!"
"잘하기는 뭘 잘해?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엄마가 여기 사니깨 고생 안 허구 살잖니?"
엄마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기 밭이다 고구마 심었는디 가 볼 텨? 약 하나두 안쳐서 유기농이여!"
밭을 보여주던 엄마는 딸의 걱정이 못내 신경 쓰였는지 아까 하던 말을 다시 꺼냈다.
"엄마가 편허니깨 고구마두 심구 살지. 식당 허믄 워디 고구마를 심을 정신이나 있간디? 걱정 허지 말어! 엄마가 알어서 잘 헐 탱깨."
"어휴~~"
"내가 맞추구 살으야지! 나이가 한두 살두 아니구 여태 저렇게 살었을 텐디... 고치라구 헌다구 고쳐지간디? 사람 쉽게 안 고쳐지는겨!"
"네... 알았어요..."
군대를 제대한 남동생이 당진에서 며칠 머물며 건축 현장을 돕다가 아저씨의 호된 질책을 견디지 못하고 스트레스로 장이 꼬여 응급실에 실려 갔다.
엄마는 아들이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그 집을 나와버렸다. 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고 같이 오래 살다가는 여러모로 속 썩을 것은 뻔하니 이건 아니다 싶었던 모양이다.
다시 가볼 일 없을 것 같은 그 집에 갔을 때 우리는 하룻밤을 자고 왔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액운을 막고 성공을 부르는 부적 같은 그림이 분명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전날 밤 꾼 꿈이야기를 했다.
"자기야! 나 어젯밤에 꿈꿨는데... 엄청 무서운 꿈 꿨어."
"무슨 꿈?"
"커다란 호랑이가 나를 쫓아오는데 무서워서 막 도망쳤거든? 근데 계속 쫓아오는 거야! 한~ 참을 도망치다가 깼는데 너무 생생해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을걸?"
"호랑이가 계속 쫓아왔어?"
"어!"
"그래? 우리가 잤던 방 침대 위에 호랑이 그림이 있었잖아?"
"어! 있었지!"
"그리고... 거실에도 호랑이 그림이 있었잖아! 무슨 호랑이 그림을 그렇게 큰 걸 집에다 두 개나 걸어두냐?"
"그러게?"
"그 그림 때문에 그런 꿈꾼 거 아닐까?"
"그런가?"
"그래서. 잠을 못 잤어?"
"더 자려고 했는데... 잠이 안 와서. 그냥 밖에 나가서 산책했지."
"피곤하겠네!"
남편은 뭔가 조금만 이상해도 귀신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자다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발견하면 귀신인 줄 알았다며 유난을 떨어 가끔 짜증 나기도 한다.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남편은 귀신도 믿고, 행운도 믿고,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체 모를 신도 믿는다.
종교는 무교라고 말하는 이 남자는 말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것만 믿는다지만 실제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믿는 것이다.
절로 들어가 승려가 된 땡중 친구에게는 자신이 언제쯤 잘 풀리냐고 자주 물었다. 친구가 대답해 주면 그중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지금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된 나도 그때는 남편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중학생 때 친구 따라다니던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주일예배만 달랑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엄마는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종일 교회에서 산다며 당신이 다니는 교회로 옮기기를 강요했다. 엄마가 다니는 교회 사람들의 신앙은 실망스러웠다. 이후로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10년이 넘도록 교회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 결혼 당시 남편의 무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의 꿈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심약한 남자의 개꿈이려니 생각했다. 이후로 무시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남편의 꿈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야 남편은 예지몽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작 본인은 기억해야 할 꿈은 잊어버리고 기억하고 싶은 꿈만 기억하는데 말이다.
"나 어제 좋은 꿈 꿨는데 복권 살까?"
"나 대통령이랑 악수하는 꿈 꿨어! 나는 아무래도 진짜 잘될 것 같아!"
"좋은 꿈은 많이 꾸는데! 내 인생은 언제 풀리는 거지?"
그놈에 잘된다는 꿈은 수없이 꿔 놓고 도대체 언제 잘되는 것인지 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서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