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봄이의 초등학교 졸업과 율이의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마흔이 넘도록 운전면허가 없었다. 남편은 내가 운전하기를 바랐다. 운전이 무섭고 수영도 무섭다. 심지어 자전거 타는 것도 무섭다. 겁이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편보다 용감하고 적극적일 때도 많다. 하지만 생명과 직결되고 사고 확률이 높은 것들은 유난히 싫어한다. 특히 수영이 그렇다. 내 주변에는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물을 유난히 무서워한다. 일종에 정신적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섬 출신인데 배를 싫어하고 바다는 좋아하지만, 물에 들어가는 것은 싫어한다.
그런 내가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운전을 배워야 한다. 남편이 운전을 하니 그동안에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서울이나 일산의 먼 거리의 병원을 오갈 때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야 했다. 남편은 출근도 못 하고 태워다 줄 때가 많았다. 율이의 일정이 겹치면 봄이를 데리고 자기 혼자 병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남편은 나의 운전면허가 절실했다.
설득과 강요에 못 이겨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이론은 한 번에 합격했지만, 주행이 문제였다. 도로에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머리가 하얘졌다. 과연 내가 주행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주행 시험 날 다른 한 명의 시험 대기자와 주행 시험관을 옆에 태우고 천천히 출발했다. 60대로 보이는 남자 주행 시험관은 같이 탄 면허 재시험자(아무래도 음주 운전으로 취소가 된 것 같았다.)에게는 조심해서 운전하지 않는다며 냉랭하게 대하더니 얌전하고 조심스럽다 못해 주행속도를 겨우 맞추며 거북이 운전을 하는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고 친절했다. 학원 강사처럼 화내거나 냉정했다면 주행시험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어쨌든 주행 시험관의 응원에 힘입어 무난히 합격하고 학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학원 주차장에 들어서자, 남편과 아이들이 보였다. 반가움보다 아이들의 몰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난 부스스한 머리는 묶지도 않고 그대로다. 옷은 내복인지 외출복인지... 어쩜 저렇게 촌스럽게 입혀서 나왔는지... 내가 키우던 아이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냥 집에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정신없는 그 와중에도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 뛰어왔다. 주행 시험관은 내 아이들이냐고 물었다. 점잖아 보였던 그는 창문을 내리더니 처음 보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쁜 마음을 듬뿍 담아 외쳤다.
"얘들아~ 엄마 면허 시험에 합격했다~ 와~~~~"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면허를 따 보겠다고 도전한 것이 기특하고 아이들까지 응원하러 왔으니 예뻐 보였던 모양이다. 정작 나는 창문 내릴 손도 없어 앞만 보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나의 상황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던 그가 나 대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흔하나가 돼서야 나는 그렇게 면허를 따게 되었다.
남편이 운전 연수를 해주기로 했다.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받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운전연수비가 아까워 그냥 남편에게 받기로 했다.
남들이 하지 말라는 것은 역시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남편은 위험하다고 소리 지르고, 그것도 제대로 못 하냐며 화를 냈다. 상냥하게 가르쳐 주면 될 것이지 왜 소리를 지르냐며 나도 화를 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너무하네! 초보가 운전 못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 가르쳐 주면 될 것을 왜 자꾸 화를 내? 너는 초보 때부터 잘했니?"
"어!! 나는 잘했어! 나는 고속도로도 막 다녔어!"
"어~ 그래? 너 참~ 잘났네~ 그렇게 운전 잘하는 너는 운전 못하는 내 차는 안 타면 되겠네~~"
나는 아쉬울 게 없었다. 운전 까짓것 안 하면 그만이다.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연습은 시켜야겠고, 화는 나고, 그러니 자꾸 싸우게 되고... 남편은 차라리 안전한 곳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며 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를 찾아갔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열 번만 왔다 갔다 해봐."
미션을 던져주고 자기는 도랑으로 내려가 아이들과 민물낚시를 즐겼다.
나도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사고 나더라도 아이들까지 위험해지지 않아서 좋고, 옆에서 타박하는 사람 없으니 실수해도 마음 편히 연습할 수 있었다.
제법 할만하다 싶어 도로 운전을 시작했다. 차가 많은 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면허를 따긴 땄는데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마트나 동네가 전부다. 운전 실력이 금세 늘지 않았다.
인천 부평에 살고 있었다. 결혼 전에 남편이 부평에 집을 사 둔 이유로 부평에서 살림을 시작했고 봄이와 율이의 어릴 시절을 보냈다.
봄이의 중학교 진학을 위해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배운 것도 많지만 사춘기가 시작된 봄이에게는 또래 친구가 절실했다.
주변의 특수학교는 중학교 역시 중증인 아이들이 많았다. 다른 경기권 지역의 자연 친화적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특수학교는 인천이 많다. 장애인 복지와 병원까지 따져보면 인천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특수학교라 해도 학교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도 없이 그저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곳도 있었다. 환경과 학교 분위기를 따져보고 인천 연수구 연일학교에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장애아 수에 비해 특수학교 수는 적고 한 반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도 적다. 장애인학교 입학 경쟁률은 높다. 서류심사와 면접 심사까지 합격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관할 지역만 심사 대상이 된다. 원칙대로라면 부평구에 사는 우리는 연수구에 있는 연일학교에 서류를 넣을 수 없었다. 부평에도 몇 개의 특수학교가 있기는 했지만 봄이에게는 연일학교가 더 잘 맞을 것 같았다.
서류를 준비해 무작정 학교로 찾아갔다. 행정 담당자는
"관할 행정구역 내 신청 요망이라고 적혀있어서 접수해도 승인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관할 구역에 있는 학교로 신청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했다. 담당자의 말이 오히려 희망적으로 들렸다. 신청이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하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이사 올 계획이니 서류 신청을 받아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서류를 받아주었고 면접 심사도 받을 수 있었다.
면접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평가하는 선생님들은 지적장애 3급인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할 줄 아는 것이 많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심사는 모두 합격했다. 관할지역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교육청에서는 학교의 긍정적인 평가와 꼭 이사 올 것이라는 엄마의 굳은 의지를 믿고 입학을 허가해 주었다.
부평의 집이 쉽게 팔리지 않았다. 매일 자가로 원거리 등하교를 해야 했다.
출근 시간이면 고속도로를 타도 40분은 넘게 달려야 했다. 이제 막 1학년이 된 율이도 등교시켜야 하니 봄이는 남편이 태워다 주고 먼 거리를 돌아서 출근했다. 율이가 하교를 하면 이번엔 내가 율이를 태우고 봄이를 데리러 가야 했다.
고속도로를 타면 조금 더 빨리 오갈 수 있겠지만 왕초보 주제에 굴러가는 것도 다행이지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신호도 많은데 천천히 조심해서 운전하다 보면 학교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하교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일찍부터 움직여야 했다.
특수학교는 원거리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등하교 시 여러 대의 통학버스가 움직인다. 부평은 버스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에서 한참 벗어난다. 자가 통학을 하겠다고 우겨서 들어갔으니 이사 전까지는 책임지고 등하교를 시켜야 했다.
매일 학교를 오가며 것이 번거롭고 시간 낭비 같이 보였지만 덕분에 나의 운전 실력은 늘고 있었다.
입학하고 두 달이 넘도록 부평의 집은 팔리지 않았다. 결국 전세로 내놓고 연일학교와 멀지 않은 연수구 송도동으로 이사했다.
교회는 그대로 다니기로 했다. 아이들 어릴 적부터 다니던 교회라 옮기고 싶지 않았다. 일요일이면 이제 송도에서 부평으로 가야 한다. 남편은 가까이 살 때도 교회와 친하지 않았다. 매주 우리를 태워다 줄 리 없다. 교회를 오가느라 나는 또 운전을 해야 했다. 그렇게 오가며 쌓인 운전 경험으로 고속도로도 탈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운전이 무섭다. 얌체 운전자들은 왜 그리 많은지... 도로 위는 무법천지요 운전자들은 죄다 깡패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리저리 차들이 교차하며 차선을 바꿀 때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차들이 줄줄 서 있는 옆 차선을 지날 때면 차가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한다. 그래도 어느덧 운전 경력 5년 차다. 가벼운 주차장 접촉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잘 굴러다니고 있다.
최근에 갑자기 끼어든 운전자 때문에 사고 날 뻔한 적이 있었다. 블랙박스 동영상을 돌려보며 씩씩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다가와 이제는 방어운전도 할 줄 안다며 칭찬했다.
시기적절한 운전면허 취득 덕분에 봄이는 연일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율이는 공원과 대단지 아파트 사이에 있는 학교에 다니며 동네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게 되었다. 남편은 로망이던 송도 주민이 되었다.
그럼 나는?
나는 도시보다는 자연이 좋고, 아파트보다는 주택을 선호한다.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었다. 송도는 아파트로 가득한 도시지만, 아침저녁으로 새소리가 들린다. 비가 오면 아파트 연못에서 맹꽁이도 운다. 가족들만큼 만족도가 높지는 않지만, 연일학교가 가깝고 아이들 키우기에 안전하고 좋은 환경이다. 그래서 나도 우리 동네와 사이좋게 지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