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취학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일반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수업을 따라갈 수는 있을까?'
'그냥 특수학교를 보내야 하나?'
남들 다 가는 초등학교의 담장이 한없이 높아 보였다. 학교는 어린이집과 다르다. 선생님이 일일이 챙겨주지 않는다. 이제 스스로 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스스로 해야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학교에서 날아온 안내문에는 <1학년이 되려면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 아래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자기 집 주소와 부모의 전화번호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용변 후 뒷 처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등하교를 혼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호등 규칙을 지켜 건널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 수 있어야 합니다.
수저를 사용해 도움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
.
.
학교에서는 도와줄 수 없으니 잘 가르쳐서 보내라는 말이었고, 도와주지도 않겠다는 말이었다.
일반 아동들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늦된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친절한 당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봄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쉽지 않은 일들이니 안내문은 친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단호함의 높은 벽을 미리 체험하게 했다.
안내문의 내용 중에서 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노력하다 보면 차차 가능해질 것들도 있었지만 당장에는 쉽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큰 일은 용변 처리였다.
일반 학교 진학이 어려울 것 같아 특수학교의 진학 상담 신청을 했다. 특수학교에서는 봄이가 아깝다고 했다. 특수학교의 초등과정 아이들은 대부분 중증 장애아들이다. 봄이가 중증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다면 배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복지관에서 연결해 준 장애아동 진학 상담사를 만나보고, 추천해 주는 장애아 진학에 관한 강의도 들었다. 상담사도, 강사도 일반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며 힘들더라도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시킬 것을 권했다.
장애아가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엄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아이는 친구들을 따라가기 벅찰 테고 선생님에게는 항상 뒤처지는 부족한 아이로 평가될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은 뻔하다.
일반 학교에는 전 학년 중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모아 학습을 돕는 특수학급이 한두 학급 정도 있다. 특수학급에서는 반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공부를 조금씩 보충해 준다. 학교 내의 장애아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다니 걱정했던 것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반 초등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뇌전증 약의 부작용으로 봄이는 변비가 심했다. 오랜 변비를 겪으면서 항문 괄약근이 느슨해져 조금이라도 묽은 변이 나오면 속옷에 실수를 했다. 처리도 깨끗하게 하지 못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제때 화장실을 가지 않아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씻기고 옷도 갈아입혀 주었는데 학교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대변 실수로 냄새나는 아이를 선생님은 그냥 둘 수 없었을 것이다. 수업 중에 씻고 오라며 봄이를 집으로 보냈다. 집은 가까웠고 선생님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수업 중에 아이를 집으로 보낸다는 것은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냄새는 왜 그리 지독한지 고약한 대변 냄새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바지에 똥 싸는 아이'라고 소문난 봄이는 친구들의 기피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저학년은 수업이 일찍 끝난다. 방과 후를 시키고 싶었지만, 들을 수 있는 과목이 없다. 방과 후 교실까지 스스로 찾아가지도 못할 것이고, 아이들의 수준을 따라가지도 못한다. 함께 수업하는 의미가 없다. 방과 후 교사만 힘들게 할 뿐이다.
아는 분이 학교 앞에서 피아노 학원을 하고 있었다. 봄이를 가르쳐 보겠다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학원을 보냈다. 하교 시간에 맞춰 학원에서 아이를 데려가면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마중 나갔다.
봄이는 노래를 잘하고, 음감이 뛰어나다. 하지만 뭐든 잘 기억하지 못하니 배운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어제 배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같은 것을 무한으로 반복해야 했다. 그러니 진도는 더디기만 하다. 오래 반복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습득할지 모르니 천천히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기초 반주법만 반복하고 있었지만,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닌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더 이상 봄이를 가르칠 수 없다는 전화였다. 아이들의 항의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원에서도 같이 놀 아이는 없었다. 혼자 있을 때 아이들의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낙서를 하고, 다른 아이가 먹다가 잠시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나간 간식을 먹었다.
봄이는 자기가 발견한 것은 자기 것으로 생각했다. 물건의 주인이 너에게 준 것이 아니면 네가 발견해도 너의 것이 아니라고 수없이 설명해 줘도 소용없었다. 학원에서 왕따가 된 봄이는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초등학교 6년을 다니는 동안 봄이는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었다. 같은 반에 말이 느리고 어눌했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도 같이 놀 친구가 없어 봄이에게 놀자고 했던 모양이다. 그 친구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며 봄이의 팔을 꼬집어 시퍼렇게 멍들게 했다.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도록 물어뜯기도 했다. 아무리 친구가 없다지만 그런 친구와 놀게 둘 수는 없었다.
같은 반 남자 친구가 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아이가 집으로 들어오려다 나와 마주쳤다. 놀란 눈치였다. 엄마가 집에 있느냐는 질문에 봄이는 모른다고 했던 모양이다. 아이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으니 봄이를 데려다주려고 왔다며 황급히 가버렸다. 녀석은 봄이의 돼지 저금통을 노리고 온 것이었다.
저학년 때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꽤 많았지만, 고학년이 되자 몇몇 아이들은 봄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운동화에 모래를 가득 채워두거나 화장실에서 흠뻑 적셔다 놓거나 신발, 재킷, 가방을 숨기고 버리기도 했다. 한참 친구 관계가 중요한 시기에 친구는커녕 괴롭힘을 당하는 봄이는 계속 혼자였다.
보통 아이들은 1학년 1학기부터 혼자 하교하는데 나는 봄이를 3학년 때까지 따라다녔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200미터도 되지 않았다. 3년을 가르쳐 줬으니, 이제는 알아서 잘 오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오는 길을 아느냐 모르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봄이는 엄마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어도 집으로 곧장 오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놀이하는 것을 구경하고, 슈퍼에서 떡볶이 사 먹는 친구들 옆을 기웃거리고, 학교 옆 공원에서 운동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구경하며 의자에 혼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전화기는 꺼진 상태 그대로 받지도 않는다. 아이를 찾으러 다녀야 했다.
친구는 없고 심심한데, 집에 들어가기는 싫었던 아이는 하교 시간이 되면 학교 주변 빌라를 돌아다녔다. 궁금하다는 이유로 남의 아파트나 빌라에 들어가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조용히 뒤따라가 보았다. 길을 익히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심심하고 궁금해서 그러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에 나가면 다른 반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느라 수업 시간이 되어도 교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반 친구들과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봄이를 찾아다녀야 했다. 봄이는 호기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먼저였다.
어느 날은 이웃집 아저씨가 봄이가 뭘 끌고 왔다고 가르쳐 주었다. 일러준 곳으로 가보니 봄이가 끌고 온 유모차가 있었다. 아이는 빌라 골목을 돌아다니다 유모차를 끌어다 아파트 1층 주차장 구석에 세워놓고 집으로 들어왔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이를 끌고 한참을 돌아다녀 겨우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조금 전에 한 일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의 기억을 따라 가져다 놓았으니 사실 제자리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봄이의 행동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지적해 주고 도와줄 친구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친구가 있을 리 없다. 있다고 해도 친구에게 그런 요청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일이었다.
율이는 커가면서 봄이와의 수준 차이를 점점 좁히고 있었다. 율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발달이 빨랐다. 여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봄이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봄이가 또래보다 한참 뒤처져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율이는 언니와 놀며 불편함이 있어도 짜증 내지 않고 잘못된 것을 기꺼이 지적해 주었다. 율이는 조용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하는 성격이 아니다. 봄이가 문제의 행동을 반복해도 화 한번 내지 않고 차분하다.
남들 앞에서 언니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놀리지도 않는다. 꼬맹이가 "우리 언니는 장애가 있어서 그래요"라고 담담하게 설명한다.
율이는 어느 순간부터는 천방지축인 언니를 챙기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어쩌면 커서 봄이의 보호자가 될지도 모를 율이는 왕따 봄이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이좋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눈물이 핑 돈다. 기쁘고, 예쁘고, 고맙고, 미안하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