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태도가 미치는 영향

"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by 온벼리


봄이는 일곱 살에 '간헐적 외사시' 진단을 받았다. 간헐적인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증상을 말하고, 외사시는 눈동자가 바깥쪽으로 치우치는 사시를 말한다.


처음에는 피곤하고 졸릴 때만 사시가 보이더니 갈수록 빈번해져 나중에는 내내 보이기 시작했다. 수술을 결정해야 했다.


사시 검사는 일반 시력검사와는 좀 다르다. 안과 의사는 검사를 한다며 머리가 눕혀지는 의자에 아이를 앉혔고 간호사는 아이의 머리를 붙들었다. 도구를 사용해 의도적으로 눈을 깜박이지 못하게 하자 아이는 무서워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의사는 가만히 있으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그 소리를 들은 아이는 더 심하게 발버둥 쳤다. 검사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생소함에 놀라고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니 의사는 의사대로 힘들었겠지만, 지켜보는 부모 입장에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잦은 병원 생활은 봄이에게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남겼다. 붙들려 힘으로 제재받았던 경험이 많다 보니 병원에서 누군가 자신을 붙들면 무서움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았다.


일곱 살의 봄이는 병원을 아주 싫어했다. 디스크로 수술하신 엄마의 병문안을 가는 길이었다. 처음 가보는 병원인데도 봄이는 병원 입구부터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외할머니가 아프시고, 우리는 병문안을 온 거니까 치료는 없을 거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아이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날 봄이는 병원 안으로는 들어갔지만, 할머니가 있는 병실은 들어가지 않았다. 병실에 누워있는 할머니까지도 무서워했다.

그런 아이에게 안과에서는 검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큰소리까지 치니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은 친절하고 상냥한 의사도 많고 어린이 치과나 어린이 담당 안과 의사도 많다. 어느 어린이 치과는 과할 정도로 친절해 부담스러운 정도다. 하지만 10년 전 그때 의사들은 원래 다 그러려니 할 정도로 불친절했고 아이에 대한 배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봄이를 진료한 안과 의사는 하필 최악이었다.


다른 병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니던 세브란스 안과에서 검사를 해 보았다. 검사가 너무 많고 복잡했다. 아이는 검사하다 또 지쳤다. 큰 병원이라고 좋은 것만은 아이구나 싶었다. 아이에게 잘 맞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아는 분이 강남 00 병원의 박 00 교수를 추천해 주었다. 박 00 교수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병원을 옮긴 상태였다. 박 교수를 찾아 일산 00안과로 갔다. 일산 00안과는 여러 명의 교수가 모여 개원한 안과 전문병원이다.


종합병원과는 달리 꼭 필요한 검사만 했고, 조용하고 아늑해 마음이 한결 편했다.

소아사시 전문의 박 교수는 차분한 말투로 아이를 대했다. 과한 치료를 권하지 않았고 아이를 놀라게 하지도 않았다. 보호자에게는 세심하게 오랫동안 설명해 주었다.

봄이는 일산 00 안과의 진료나 검사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친절한 태도에 아이는 안심했다. 다른 안과에서 무서워했던 검사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고 눈높이를 맞춘 간호사의 말투에 금세 무장해제 되었다.


수술 일정이 잡혔다. 복잡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아이라 전신마취를 해야 했다. 담당 교수는 아이들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무서워할 수도 있다며 수술 후 정서적 안정에 대해 당부했다. 병원에 오래 있는 것도 아이는 힘들다며 당일 퇴원을 권했다.


수술 전 피검사를 하러 온 간호사는 주사기를 꺼내기 전 봄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말했다.

"새봄아~ 이모가 여기를 살짝 꼬집어 볼 거야! 아주 조금 따끔할 건데! 살짝만 꼬집어 볼게~"

간호사는 아이의 팔을 손으로 아주 살짝 꼬집었다.

"어때? 이모가 살짝 꼬집었는데 괜찮아?"

"네!"

"그럼 이번엔 아주 조금만 더 세게 꼬집어 볼게~ 어때? 괜찮아?"

"네!"

"그래~ 그럼 이제 주사기로 따끔할 건데~ 이모가 방금 꼬집은 것만큼만 따끔할 거야! 괜찮겠어?"

"네!"

"아주 잠깐 따끔하고 말 거야! 알겠지?"

"네!"

"자~ 따끔할 거예요~ 무서우면 눈 꼭 감아요! 따끔해요~ 따끔~" "......" "우와~~ 씩씩하네~ 벌써 끝났어! 어때? 정말 잠깐 따끔하고 말았지?"

"네!"

"그래~ 아주 씩씩하게 잘했네! 잘했으니까, 이모가 선물로 사탕 줄게~"

"네!!!"


아이는 태연하게 주삿바늘이 자신의 살을 찌르는 것을 지켜봤다. 간호사의 말을 믿었던 것이다. 이런 병원은 처음이었다. 불친절하고 냉정한 병원에 익숙했던 나는 일산 00 안과의 의사와 간호사의 태도에 감동했다. 문제 앞에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이의 정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깊이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수술하는 동안 아직 걷지 못하는 율이를 안고 대기 병실에서 기다렸다. 수술을 잘 마친 봄이는 퉁퉁 부은 두 눈에 안대를 하고 돌아왔다. 눈 안의 근육을 절개했으니, 눈과 머리가 아플 텐데 많이 울지도 않고 잘 참아 주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고 편안했다. 이곳으로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무서워했다면 절대 쉽지 않았던 순간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수술이 이렇게 가볍고 쉽게 끝났다는 것이 신기했고 한없이 감사했다.


수술 이후 봄이의 눈동자는 또렷하게 앞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빠진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안경을 끼기 시작했고, 일산을 8년간 오가며 진료받다가 이제는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봄이는 8살. 유난히 더웠던 늦은 봄. 도보 나들이로 짜증 난 봄이를 유모차 드라이브로 쌩쌩했던 율이가 찔러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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