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새벽기도를 다니기 위해 4시 30분에는 일어났다. 저녁형 인간인 내가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새벽기도를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나를 지키고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해 남편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술이었다. 어머니는 유방암이 간암으로 전이되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남편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심했고 곧 겪게 될 상실의 아픔까지 미리 겪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이 집을 나간 모양이다. 그를 견디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임신 5개월에 봄이를 데리고 나도 가출을 했다. 가출이라고 해봐야 고작 친정행이 전부지만 연락도 없이 짐을 싸 들고 나와 버렸다. 놀란 남편은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앉아 미약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임산부의 몸으로 애까지 데리고 오래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며칠 후 적당히 타협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과하게 슬퍼하던 남편은 막상 장례식장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손님들을 대접한답시고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취해있었다. 어쩌면 남편은 슬픔을 마무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눈물 대신 술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집 나갔던 남편의 정신도 돌아왔다.
둘째 출산일이 다가오자, 긴장의 끈을 더욱 조였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조리원에 들어가야 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봄이를 남편에게 맡기는 것이 걱정스러웠지만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봄이가 장애인이 된 것은 운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두 번째 출산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제왕절개 수술 당일날도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갔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락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교회 담임 목사님이 분만 대기실까지 찾아와 태아 심장 박동 체크기를 달고 누워있는 나를 붙들고 굳이 기도를 해주고 가셨다.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계셨다.
수술의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다. 계획하고 기도하며 바란 대로 흐트러짐 하나 없이 모든 순간이 순조로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큰 일을 당해본 사람에게는 눈물 나도록 감사한 일이 되기도 한다.
수술 입원 기간을 지내고 추가로 일주일간 병원에서 몸조리했다. 조리원으로 옮겨 2주를 지내며 한 달의 몸조리 기간을 채웠다.
엄마와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큰 아이와 한 달이나 떨어져 지내려니 마음은 가시방석이다. 그래도 둘째를 위해 눈 질끈 감고 버텼다.
남편은 밥을 할 줄 모른다. 남편의 밥은 죽이 됐다가 고두밥이 되기도 했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제법 밥 같은 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반찬은 계란부침, 김치, 김이 전부다. 남편은 반찬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나서야 그제야 시장에서 파는 반찬을 사다 먹기 시작했다. 풍성해진 식탁에 만족하며 아이 밥을 잘 차려준 자신을 매우 칭찬했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반찬에 허구한 날 햄과 치킨 잔치였다. 봄이와 남편은 한 달 내내 먹는 단짠 음식에 질려 엄마보다 엄마가 해준 밥이 더 그리워지고 있었다.
봄이는 어린이집에서 저녁을 먹고 아빠가 퇴근하고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남편의 회사는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다. 7시에 퇴근하는 데 8시까지는 어린이집에 도착해야 한다. 시간은 빠듯한데 퇴근 시간이면 여지없이 길이 막혔다. 마음이 급해진 남편은 막히는 차들 사이로 곡예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이 어린이집에 도착해도 아이들은 모두 가고 봄이와 담당 선생님만 남아 있었다.
그즈음 남편에게 공황장애가 생겼다. 본인은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운동을 심하게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생긴 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증상일 뿐 원인은 아이를 데리러 오는 시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급하게 운전하면서 한참 숨을 참다가 몰아 쉬기를 반복했다. 본인이 숨을 참고 운전하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 남편은 유난히 수다스러웠다. 온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벽까지 소독한 이야기,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다 먹는데 햄과 치킨이 지겨웠다는 이야기, 봄이와 매일 동생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던 이야기,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는 시간에 늦을까 봐 곡예 운전을 했던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두서없이 마구 쏟아내고 있는 남편이 낯설고, 귀엽고, 우스웠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할 것이지...' 그동안 괴롭힘 당한 것을 생각하면 어퍼컷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반가움에 들떠 신이 난 사람에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봄이와 나 사이에는 시간의 틈이 존재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던 나인데 한 달의 공백이 생기고 나니 내가 모르는 봄이의 시간들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보다 남편이 봄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도 묘하게 불편했다. 아이와 연결되어 있던 끈 중 몇 개가 끊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는 아이를 잠시 잃어버렸다가 찾은 것 같은 아찔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어린이집이다. 등원은 아빠 차로, 하원은 엄마와 마을버스로 해야 했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잠든 봄이를 나는 더 이상 안아 줄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번쩍 안고 집까지 걸어왔을 텐데 이제 엄마에게는 동생이 매달려 있다. 봄이는 아무리 졸려도 일어나 스스로 걸어야 했다. 갑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늘기 시작했다. 아이가 커가는 당연한 과정이겠지만 아직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다. 오래 기다려주고 조금 더 도와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음과 현실은 달랐다. 준비도 되지 않은 아이의 손을 갑자기 놓아버린 것만 같아 미안하고 불안했다.
남편은 공황장애로 7년 동안 정신과 약을 먹었다. 이 남자는 무슨 약을 한 번 먹으면 의리 있게 꾸준히 먹는다. 의리 하나는 최고다.
공황장애는 갈수록 심해졌고 약의 양도 점점 늘고 있었다. 거기에 분노조절장애 증상까지 나타나 돌발적인 폭력 충동도 느끼고 있었다. 남편은 밥투정을 부리는 아이에게 자기도 모르게 주먹질할 뻔했고, 어느 날은 누군가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가정이 박살 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치료에 개입해야 했다.
다닌다는 정신과를 따라가 보니 의사는 약만 쥐여주고 진료를 끝내려 했다. 이런저런 질문을 했더니 대답도 시큰둥하다. 형편없는 의사를 믿고 7년 동안 약을 먹고 있었다니... 공황장애 치료로 유명한 한의원으로 남편을 끌고 갔다. 한약 냄새를 싫어하는 남편은 처방받은 한약과 환을 제때 복용하지 않았다. 아이 달래듯 달래고 타일러야 했다. 몸에 맞지 않는다는 둥 설사를 한다는 둥 핑계도 다양했지만 어림도 없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했다. 한 번에 먹는 양을 줄이고 먹는 시간대로 바꿔서 복용하게 했다. 한방과 양방 두 병원을 모두 다녔다. 의사들과 상의하면서 한약과 양약을 같이 복용하다가 양약은 서서히 줄여나갔다. 한약을 꾸준히 복용하니 증세가 서서히 좋아졌다. 오랫동안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한약도 서서히 줄일 수 있었다. 스트레스와 분노는 스스로 제어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남편은 드디어 모든 약을 끊고 정신과 의사에게 공황장애 완치 판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