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다

"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 (봄의 왈츠)"

by 온벼리


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은 내게 특별 과제를 내주었다. 리코더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음악 시간에는 대충 넘어가도 발표회 합주는 넘어갈 수 없다고 했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배웠을 텐데 리코더 잡는 법도 제대로 모르니 연주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뭘 배워도 습득이 어려워 수없이 반복해야 겨우 기억하는 아이다. 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아이의 저항을 받아내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가르쳐도 아이는 제자리걸음이다.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다.

못하면 못 하는 대로 인정해 주면, 아이도 편하고 나도 편하다. 하지만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꼭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아이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며칠을 씨름해 가며 겨우 연주법을 가르쳤다. 이제 연주곡의 계이름을 외워야 했다. 계이름 한 곡 외우는데 또 하루가 갔다. 힘들게 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총 세 곡을 연주하기까지 봄이는 많이도 울었다. 하기 싫어서 울고, 외워지지 않는데 계속하려니 힘들어서 울었다. 나도 울었다. 겉은 물론이고 속까지 새까맣게 타 버렸다.

'리코더가 그렇게 어려운 악기였던가...' 한숨이 절로 났지만 봄이에게는 기억하는 일도 인내한 일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니 리코더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반 학교는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맞춰주지 않는다. 아이가 따라가야 했다. 벅차고 어려운 시간일 수밖에 없다.


리코더를 연주할 수 있게 된 봄이는 이제는 리코더를 좋아한다. 처음으로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생긴 것이다. 연주법을 익히고 나서는 시키지 않아도 혼자 무한 반복하며 끊임없이 연주했다. 연일학교 합주부에서는 리코더 연주를 담당하기도 했다. 나는 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할 때마다 리코더 이야기부터 꺼낸다. 배우는 것은 뭐든 어렵고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리코더 연주처럼 가능해질 거라고...


타인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 있다. 사실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 많은 것들을 다 가르칠 수는 없지만 그중 꼭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 있다.

봄이가 열일곱 살이 되도록 나는 직접 목욕을 시켜 줬다. 스스로 씻을 수 있도록 가르쳐 보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덩치 큰 아이를 씻기고, 동생을 씻기고, 나까지 씻으려니 목욕하는 시간이 점점 버거워졌다. 이번에는 기필코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모방과 관찰력이 부족한 봄이에게는 하나하나 작은 것까지 가르쳐 줘야 한다. 샴푸는 몇 번 짜야하고, 어디에 비벼야 하는지... 거품을 낼 때는 손가락은 어떻게 해야 하고, 코와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고개를 어느 각도로 숙여야 하는지... 물은 어떻게 뿌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헹궈야 하는지... 거품을 내는 동안 샤워기는 어디에 둬야 하는지... 세세한 손놀림과 동선까지 반복해서 가르쳤다.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아이는 또 짜증을 내며 운다. 그래도 가르쳐야 하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진로상담 선생님은 바리스타를 꿈꾸는 봄이가 최소한 거스름돈 계산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수학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주문은 내게 큰 부담이고 스트레스다.

봄이는 수학을 가장 어려워한다. 단순한 셈은 가능하지만 약간의 응용만 추가되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수학 공부를 하자고 부르면 한숨을 쉰다. "하기 싫은데 꼭 해야 돼?"부터 시작해서 거부의 "왜?"를 연발한다. 짜증과 원망의 연속이다. 틀린 것을 가르쳐 주면 왜 틀렸냐고 도리어 화를 낸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끝날 줄 모르는 사춘기를 자랑하며 거친 말로 속을 말도 못 하게 긁는다.


봄이는 중간이 없다. 흑 아니면 백이다. 좋은 것이 아니면 싫은 것이고, 맛있는 것이 아니면 맛없는 줄 안다. 찾는 것이 거기 없으면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없다고 한다. 해결 방법은 생각지도 않고 되는지 안 되는지만 따진다.

감정의 기복도 심하다. 좋을 때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싫을 때는 세상이 무너진 듯 운다.

아이에게 다양성과 중간 어디쯤의 적당한 융통성을 가르치는 일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친구가 좋다고 친구만 소중한 줄 아는 아이에게 가족의 소중함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이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도 가르친다. 동생이 다쳐서 울고 있는데 자기 볼일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우선순위를 가르치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가르친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아마도 평생 가르쳐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아이는 부모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마땅한 일 아닌가? 하지만 봄이를 가르치는 일은 보통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봄이는 율이를 가르치는 것의 백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것은 10년을 넘게 가르쳤어도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연일학교에서 한 아이가 머리에 복싱용 보호 헬멧을 쓰고 등교하는 것을 봤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아이의 엄마는 익숙한 듯 머리를 아무 데나 박아서 그렇다고 설명해 주었다. 중증 장애아의 부모들은 봄이를 보면 부러워한다.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서 부모가 얼마나 편하고 좋겠냐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모른다. 그러니 그들도 나의 고통과 아픔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것이 요구되고 끝도 없이 반복해서 가르치고 인내하는 고통은 그들이 겪는 고통과는 또 다른 고통이다. 어느 것이 더하고 덜한지 모르겠지만 둘 다 힘든 것은 확실하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습득을 요구한다. 봄이는 스스로 탐구하고, 깨우치는 것이 어렵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계속해서 가르쳐야 한다.


잔잔하고 고요하고 싶은 내게 봄이를 가르치는 일은 폭풍을 맞닥뜨리는 일과 같다.

하지만 나는 봄이를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앞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를 율이의 짐을 덜어줘야 할 것이고, 엄마가 없어도 세상과 어우러져 살아가야 할 봄이의 앞날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가르친다.


부모는 사랑만 줘도 충분하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내게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가르쳐도 장애가 있는 아이의 미래는 걱정스럽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과 더불어 적당한 가르침도 필요하다.


인생의 길을 걷다 보면 돌고 돌아 결국 나의 어리석음과 마주할 때가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로 길을 잃을 때도 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때도 있다.


그래도 표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내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다.


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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