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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할머니의 초대 2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by 온벼리

토토할머니의 초대 2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열 평 남짓의 작은 빌라. 단출한 살림. 할머니는 토토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작은 방 두 개와 부엌 겸 거실. 초라한 살림이 민망했는지 할머니는 혼자 사는 노인이라 별거 없다는 변명을 자꾸 늘어놓는다.

부엌과 거실 사이 둥근 2인용 식탁 의자에 앉았다.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미리 만들어 둔 반찬을 이것저것 꺼내고 전기밥솥의 밥을 펐다. 한 그릇은 반만 푸고 한 그릇은 수북이 고봉밥을 푼다. 할머니 인심에 손님에게 반 공기만 줄리 없다. 고봉밥이 내 밥인 것이 확실했다.

"밥이 너무 많아요! 이걸 다 어떻게 먹어요?"

"이 정도도 못 먹어? 나야 늙어서 조금밖에 못 먹지만. 언니는 젊은데 이 정도는 먹어야지."

"저도 많이 못 먹는데... 근데 무슨 반찬이 이렇게 많아요? 혼자 이렇게 차려놓고 드시는 거예요?"

"내가 먹으려고 만든 거 아냐. 나는 이가 안 좋아서 많이 못 먹어."

"근데 반찬을 왜 이렇게 많이 만들어 놓으셨어요?"

"여동생이 가끔 밥 먹으러 와. 그러니까 심심할 때 하나씩 만들어 놓는 거지. 놀면 뭐 해. 사람이 움직여야지."

오래 두고 먹을 짭조름한 반찬들과 손맛이 깊이 베인 나물들까지. 할머니표 집밥이다.

"잘 먹으니까 좋네~ 이뻐!!"

"이뻐요?"

"그럼~ 잘 먹으면 이쁘지!"

"할머니도 더 드세요."

"나는 다 먹었어. 늙으면 소화가 잘 안돼. 공방 언니나 많이 먹어."

"감사합니다."

그릇 가득 담겨있던 밥을 다 먹어 치웠다. 할머니는 진밥을 좋아하는지 밥이 유난히 질다. 잘 먹으니 예쁘다는 말에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더 먹어."

밥을 더 푸려고 일어서는 할머니를 보고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아니에요. 됐어요.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불러요."




이제는 할머니 집에 캔과 사료가 떨어지기 전에 배달을 간다. 할머니는 고마움을 밥 한 끼로 대신한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묻지도 않고 밥그릇을 가져가 다시 한가득 푼다. 미칠 노릇이다. 옛날 농사짓던 사람들이나 먹던 고봉밥을 요즘 시대 누가 두 그릇이나 먹는단 말인가. 이제 뱃살을 걱정해야 하는 40대 아닌가. 다이어트는 못 할 망정 한 끼에 밥 두 공기가 가당키나 한가.

"아니에요. 더는 못 먹겠어요. 배불러요."

"더 먹어~ 젊은 사람이 왜 그거밖에 못 먹어? 나는 언니 때 밥 두 공기씩 먹었는데?"


밥 두 공기를 다 먹고 돌아와 일하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소화제를 먹고도 저녁밥은 건너뛰어야 했다.

"밥 먹으러 가지 말까? 그렇다고 할머니 성의를 거절할 수는 없고. 어떻게 하지? 내가 밥 먹으려고 그 집에 가는 건 또 아니잖아. 얼른 캔이랑 사료만 내려놓고 바쁘다고 와 버릴까?"

뿌리치고자 하는 의지보다 잡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고 나는 매번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고양이 식량 지원을 해 주지 않는다면 할머니 형편에, 예전에 먹이던 사료를 다시 먹일 것은 뻔했다. 아무리 길고양이라도 입맛 예민한 고양이들은 달라진 사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내가 직접 돌보는 고양이들은 아니지만 약간의 책임감이 생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때가 되면 캔과 사료를 배달했고 할머니는 그때마다 밥을 차려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와의 식사는 식사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화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토토 할머니는 여느 할머니와 달랐다. 보수성향은 어쩔 수 없었으나 대체로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 차이가 많은 친구나 다름없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건방지고 당돌한 손녀였고, 할머니는 내게 허물없는 친구였다. 할머니에게 스스럼없이 반말하기 시작했다.

"공방 언니. 이리 와 봐! 내가 보여줄 게 있어."

"뭔데? 할머니는 뭘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

"사진 보여줄게. 옛날 사진."

두툼한 앨범은 빛바랜 사진들로 가득했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어릴 적보다 더 많은 사진이 앨범에 가득했다. 하얀 카라 셔츠에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은 젊고 날씬한 아가씨는 할머니였다.

"우와! 이게 할머니야?"

"그래. 이때가 스물여섯 살이었지."

"할머니 시대에도 미니스커트를 입었어? 완전 신여성이었네! 젊었을 때 무슨 일 했어?"

"시장 비서였어. 오래 근무했지."

"오... 그렇구나!"

"요즘은 눈이 침침해서 글씨도 잘 안 보이거든. 동사무소나 은행 가면 글씨가 잘 안 보이니까 요렇게~하고 들여다본단 말이야. 그러면 젊은이들이 (할머니! 글은 읽을 줄 아세요?) 그런다니깐. 이래 봬도 내가 대학 나온 여잔데 말이야!"

"그 시대에 대학까지 나왔으면 집안이 꽤 살았던 모양이네?"

"그럼! 우리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어."

"오......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살아?"

"어휴~ 사연이 길다."


"우리 형제가 아홉 남매인데. 형제 많아도 다 소용없더라. 내 위로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우리 언니가 의사였거든. 나는 언니를 엄청나게 좋아했지. 근데 언니가 서른여섯에 암에 걸린 거야. 아들이 둘 있었는데. 언니가 계속 아프니까 내가 언니 집에 가서 애들 봐주고 그랬지. 그때 큰 조카가 다섯 살이고 작은 조카가 세 살이었어. 아휴~ 생때같은 놈들을 두고 언니가 그 젊은 나이에 죽었어."

"서른여섯 살에? 너무 일찍 갔는데?"

"결혼한 지 6년도 안 됐는데 그렇게 됐어. 언니가 죽기 전에 그러더라. 애들 좀 잘 부탁한다고... 근데 형부도 얼마 못 살고 일찍 죽었어."

"아이고~ 애들은 어떻게 해?"

"우리 형제가 아홉이라고 했잖아? 조카들이 부모를 잃었으니 어떻게든 거둬야 할 거 아냐? 형제끼리 애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의했지. 근데 다들 제 살길만 관심 있지. 아무도 조카들 거둘 생각은 않더라. 보육원에 보내라는 걸. 됐다 그랬어. 내가 키운다고."

"그래서 할머니가 둘 다 키웠어?"

"그래. 어른 될 때까지 내가 둘 다 키웠지."

"그럼 할머니는 결혼은 안 했어?"

"못했지. 애가 둘이나 있는데 누가 결혼한다고 하겠어. 그리고 뭐! 별로 하고 싶지도 않더라. 근데... 그렇게 키워놨더니 또 둘 다 죽었어."

"어??? 또 죽어?? 아니 왜???"

"큰 놈은 교통사고 나서 죽고, 작은놈은 고속도로 갓길에 차가 세워져 있길래 경찰이 가봤더니 운전대에 엎어져 죽어 있더래. 심장마비라나 뭐라나."

"아이고~~ 어떻게 가족들이 다 그러냐?"

"그때 큰 놈한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애 엄마가 우울증이라고 친정 갔다 온다더니 소식이 없어. 돌도 안된 놈 둘러업고 부산까지 찾아갔지 내가. 근데 그 집에서도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거야."

"허... 미친다. 자기 딸이 어디 갔는지도 모른다고? 애 엄마는 어떻게 된 거야? 가출한 거야?"

"몰라..."

"그럼 친정집에도 안 간 거야? 자살한 건 아니겠지? 무슨 애 엄마가 그렇게 무책임해?"

"그러게 말이야. 친정집에서도 모른다는데 어쩌겠어. 어린것이 불쌍해서 찾기는 찾아야겠는데. 찾을 길은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닷가에 앉아서 애 옆에 앉혀두고 신세 한탄만 하다가 왔지. 그때 우리 준수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였어. 아! 우리 조카 손주 이름이 준수야."

"그래서 어떻게 됐어?"

"준수도 내가 키웠지."

"아우! 씨! 미친다. 그 애를 또 할머니가 키웠어? 또 아무도 안 도와줬어?"

"도와주기는 무슨! 자기들밖에 모르는 인간들인데... 형제들 다 필요 없어. 나는 큰오빠랑 작은오빠 얼굴도 안 보고 살았어. 큰오빠는 나 살던 집에서 내쫓은 사람이야."

"아니! 할머니 형제들은 도대체 왜 그래? 부자였다면서."

"몰라. 다들 이기적인 사람들이야. 나 젊었을 때는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랑 둘이 살았거든. 근데 그 집이 재개발돼서 나가야 되는 상황이 된 거야. 근데 또 알고 봤더니 엄마가 그 집을 큰오빠 이름으로 해 놓은 거지. 큰오빠는 보상받게 생겼으니까, 엄마를 얼른 모셔가더라. 그리고 재산도 다 가져갔지."

"그럼 할머니는?"

"나는 오갈 데 없어서 판자촌에 가서 살았어."

"아우! 나쁜 새끼!! 사람도 아냐! 동생을 어떻게 그렇게 내쫓냐?"

"그래. 나쁜 놈이지. 그렇게 내쫓겼는데 돈은 없지. 당장 갈 곳도 없으니, 별수가 있나? 판자촌이라도 가서 살아야지."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큰오빠라는 작자가 눈앞에 있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나와 비교해 할머니는 꽤 담담했다.

"근데... 또 웃긴 건 내가 살던 그 집이... 어떤 집이었냐면. 토막살인이 났던 집이라고 하더라고."

"아우!! 또 뭐야?"

"판자촌이니까 재래식 화장실이잖아. 근데 세상에! 그 화장실에서 토막 난 여자 머리가 나왔다는 거야.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알려줘서 그제야 알았지."

"뉴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긴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 살았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런 집에서 어떻게 사냐고 하길래 알게 된 거야."

"아우~ 진짜 그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

"집주인은 암말 않더라. 집이 싼 이유가 있었어. 내가 그런 집에서도 살아 봤다는 거 아냐."

"너무 엽기적이야!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야?"

"나는 쫓겨나서 그런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엄마는 나 버리고 큰오빠 집에 들어가서 잘~ 살더라고! 우리 집이 종갓집이라서 엄마는 아들밖에 몰랐어."

"아오! 속 터져!"

억울하고 힘들었을 텐데 할머니는 가족들을 크게 원망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릴 적에 우리 집이 꽤 잘 살았지. 그래서 그런가? 형제들이 다 자기밖에 몰라. 둘째 오빠도 엄청 이기적이었는데. 둘째 오빠는 머리가 좀 비상했어. 우리 어릴 적에는 연필이 귀했단 말이야. 아버지는 몽당연필이 돼야 새로 사주셨지. 형제들은 새 연필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했고. 근데 둘째 오빠는 얼마나 약았는지 그 연필을 칼로 반을 잘랐어. 그런 다음 그걸 몽당연필 두 개를 만드는 거야. 그렇게 해서 연필 두 자루를 새로 받는 거지. 둘째 오빠는 그림을 잘 그렸어. 서울대 미대를 갔어. 그 연필로 그림을 그렸던 거지. 둘째 오빠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결국 형제들하고 다 등지고 이혼까지 하더니 불쌍하게 갔어."

"그럼, 나머지 형제들은?"

할머니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아홉 형제를 설명했다.

"아들, 아들, 딸. 셋째가 그 일찍 죽었다는 언니. 그리고 내가 넷째. 내 밑으로 또 아들, 아들, 아들, 딸, 아들. 이렇게 아홉이야. 막내 여동생은 간호대 박사학위를 땄는데. 걔도 결혼을 안 했어. 나랑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형제야."

"밥 먹으러 온다던 동생?"

"그렇지. 그 동생 하고만 연락해. 위로 형제들은 벌써 다 죽었어."

"할머니가 올해 몇 살인데?"

"여든셋. 많이 늙었지?"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머나? 벌써 3시가 넘었네? 어떻게 하지? 할머니 나가 봐야 하는데. 가서 일해야 해!"

"그래. 자주 놀러 와!"

"아이고~ 내가 그렇게 자주 놀러 올만큼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코로나 때문에 일 없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뭐라도 해야 가게를 유지하지!"

"그럼 가끔 놀러 와서 또 이렇게 밥 먹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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