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일주일이 넘도록 토토 할머니가 보이질 않는다. 매일 폐지를 주우러 다니더니 요즘은 왜 통 보이질 않는 걸까?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하던 날 마친 할머니가 공방을 찾아왔다. 혼자였다.
"할머니.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어디 아팠어?"
"나 우울증인가 봐! 폐지 줍는 것도 귀찮고, 돌아다니는 것도 싫고, 만사가 다 귀찮아."
"왜? 그렇게 쌩쌩하던 사람이 갑자기 웬 우울증이야?"
"토토가 죽었어."
"아...... 그랬어? 괜찮아? 그래서 우울한 거구나!"
"그런가 봐!"
"토토가 몇 년 살았지?"
"21년 살았지."
"음...... 오래 살았네!"
"엄청 오래 살았지. 그래도 매일 있던 놈이 곁에 없으니까 허전하고 우울해."
"당연하지! 나도 그 마음 이해해."
"언니,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밥 먹자! 나 외로워."
"그러면 그럴까?"
갈까 말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토토는 할머니에게 20년 지기 친구였고, 유일한 가족이었다. 오랜 시간을 의지하며 함께했던 존재 아닌가. 할머니는 외롭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슬픔이기도 했다. 토토의 빈자리가 얼마나 클까. 나의 소소한 몇 마디 위로와 겨우 밥 한 끼로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위로가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오늘은 할머니 곁에 오래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토토의 물건들은 아직 그대로였다.
"할머니, 토토 물건들이 그대로 있네? 왜 하나도 안 치웠어? 이렇게 보니까 꼭 토토가 여기 있는 것 같네!"
"토토 거기 있지. 아직 안 갔어. 지가 나랑 산 세월이 얼만데. 아쉬워서 쉽게 가겠나? 며칠 놀면서 인사하고 가겠지."
"아잉... 그렇게 말하니까 슬프잖아."
토토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냉장고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반찬들을 꺼낸다. 이번에는 내가 밥그릇에 밥을 펐다. 그릇에 밥을 반씩만 퍼 식탁 위에 올려놓았더니 할머니는 말없이 내 밥그릇을 가져가 꾹꾹 눌러 나머지 반을 채운다. 반 그릇만 먹으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할머니! 나 이밥 다 못 먹는다니깐!"
"천천히 먹으면 되지. 다 못 먹으면 남겨."
"에이 진짜!"
할머니도 그렇겠지만 어릴 적부터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밥 남기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밥 차려준 사람의 성의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닌가.
오늘도 반찬이 식탁 가득하다.
"할머니, 동생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 밥 먹는 거 보니까 반찬도 얼마 못 먹던데... 왜 이렇게 반찬을 많이 만들어 놓는 거야?"
"내가 이런 거라도 해야 사는 재미가 있지. 못 먹는다고 반찬도 안 해놓고 살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 그래. 그러면 사는 게 재미가 없잖아."
"...... 그래? 그래도 너무 많이 만들지 말고, 조금씩 해. 힘들잖아. 아픈 데는 없어?"
"아픈 데가 왜 없어. 많지! 고혈압에, 허리도 안 좋고, 무릎도 아프고, 눈도 안 보이고, 잇몸도 안 좋고, 그... 뭐더라? 갑상선이랑 심장도 안 좋다더라. 멀쩡한 데가 하나도 없지. 여든이 넘었는데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요즘에는 머리에서 자꾸 쇠 긁는 소리도 들려. 병원 가니까 약 주더라! 죽을 때 다 됐지 뭐!"
"에이~ 왜 또 그렇게 말을 해. 슬프게."
할머니는 새로 처방받았다는 약을 봉투째 보여주었다.
"이거 봐! 약이 한 줌이야. 인생이 원래 다 그렇지 뭐! 늙으면 죽는 건 당연한 거고. 토토도 늙었으니 죽은 거고. 오래 살았어! 그놈도."
늙으면 죽는다는 말은 사랑이 할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 아닌가. 기분이 묘했다. 약 봉투에 쓰인 처방 약을 휴대전화로 검색해 보았다. 신경안정제와 공황장애약이었다.
왜 이런 약을 먹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러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손자는? 자주 와?"
"준수? 자주 못 오지. 지 살기도 바쁜데 뭐!"
"그래도 자주 와야 되는 거 아냐? 할머니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가끔 오긴 와."
"언제 왔다 갔어?"
"재작년에 왔다 갔나?"
"응? 재작년? 1년에 한 번도 안 온다는 거야?"
"원래 자주 왔었는데. 요즘은 아주 바쁜가 봐! 그리고, 여기 오면 뭐 해. 재미도 없고, 사람도 없고, 괜히 왔다 갔다 하다가 지 아빠처럼 사고 날까 봐 나는 싫어. 안 오는 게 더 나아."
"그런 게 어디 있어! 이 나쁜 새끼!"
"아냐! 그러지 마. 준수 착해. 엄청 착하고 바르게 컸어."
"착하긴 뭐가 착해?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이 착한 거야?"
"아냐~ 바빠서 그래. 준수 엄청 착하게 컸어."
"어휴... 할머니는 사람이 왜 그렇게 물러 터졌어?"
"준수는 나한테 자식이고 손자잖아. 부모 마음이나 할미 마음이 다 그렇지 뭐!"
"우리 할머니랑 엄마랑 아빠는 안 그렇던데?"
"우리 할머니랑 엄마랑 아빠는 안 그렇던데?"
"공방 언니도 사연이 많아?"
"아냐! 거기까지는 가지 말자! 내 이야기까지 시작하면 오늘 집에 못 가."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했다. 할머니는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얄궂게도 곱기만 하다. 설거지를 마치고 미리 타 놓은 믹스커피를 들고 할머니 옆으로 가 앉았다.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보이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나는 토토가 먼저 간 게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
우리를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었다.
"왜? 먼저 가면 슬프잖아."
"저번에 내가 한번 쓰러진 적이 있었어. 그때 정신 잃고 119에 실려 갔었는데 나흘이나 병원에 있었어."
쓰러졌다는 말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어?? 쓰러졌었어? 언제?? 왜??"
"몇 달 됐지.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데 갑자기 핑하고 도는 거야. 너무 어지러워서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 겨우 기어 나와서 전화기 들고 119를 눌렀다? 그런데 한마디 말고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어. 그 뒤로 기억이 안 나. 일어나 보니까 병원이야. 내가 독거노인이라고 119에서 알아서 출동했나 봐. 그런데, 눈뜨자마자 내가 한 말이 뭐인 줄 알아?"
"뭐였는데?"
"(토토는 어디 있어요?) 그랬어. 나흘이나 누워있었다는데 토토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걱정돼서 눈 뜨자마자 얼른 집으로 왔지."
"아니. 그렇다고 쓰러진 사람이 눈뜨자마자 병원을 나오면 어떻게 해?"
"토토 봐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해 그럼. 다행히 큰 일은 아니라고 해서 왔지."
"토토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데?"
"난리도 아니었지. 며칠 동안 계속 젖어 댔다고 하더라. 이웃 사람들이."
"응? 그럼 그렇게 짖어대는 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질 않았어?"
"들여다보기는 무슨. 사람들은 (그 집 개가 며칠 계속 짖길래. 할머니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그러더라."
"그게 뭐야? 왜 사람들이 그렇게 매정해?"
"요즘 사람들은 원래 다 그래. 누가 독거노인 죽었다고 들여다보고 그래? 그냥 죽었으면 죽었나 보다 하는 거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다행이지."
"그래? 그럼 내가 이상한 건가? 나는 안 그럴 것 같은데?"
"언니는 착하잖아."
"내가 착하다고? 나 안착한데?"
"허허. 안착해?"
"착한가? 왜 자꾸 다들 나한테 착하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착한 거 싫어."
"그래? 그러면 뭐라고 해? 좋은 사람이라고 해?"
"아니. 뭐! 꼭. 그런 말을 바라는 건 아니고. 나 보기보다 안착해. 암말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욕도 많이 해."
"속으로 욕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나도 욕 많이 하는데."
"사실은...... 겉으로도 많이 해."
"그래? 그래도 나는 말 통하는 젊은 친구가 있어서 좋아. 내 말도 잘 들어주고."
할머니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괜히 어색하고 쑥스럽다. 할머니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해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만 특별히 오래 앉아 있는 거야."
다 안다는 듯 할머니도 창밖의 먼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이럴 때는 뭐라 대답해야 하는 걸까? 딱히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서... 토토가 먼저 가서 다행이야. 내가 먼저 죽으면 그놈 그거 불쌍해서 어쩔 거야."
"어휴~~~~"
"이제는 개 안 키우려고.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할머니의 담담한 말투에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져 갔다.
"토토 죽고 나니까 나갈 일이 별로 없어. 토토 있을 때는 산책시킨다고 돌아다니니까 운동도 되고 그랬는데. 이제는 책임질 놈도 없으니까, 만사가 다 귀찮아. 나이 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안 아프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자꾸 여기저기가 아파."
"폐지는 이제 안 주우려고?"
"그것도 뭐! 솔직히 안 주워도 살기는 살아. 할 일은 없고, 종일 가만히 있으면 뭐 하나 싶어서 주우러 다닌 건데. 그것도 요즘은 귀찮아. 그만둘까 봐."
"그러면 노인정이라도 가서 놀아!"
"나는 노인정이랑 안 맞아. 예전에 친구 따라 노인정을 한 번 가봤는데. 영 안 맞아."
"뭐가 그렇게 안 맞는데?"
"다 안 맞아! 그런데 가면 환영해 주고 그럴 것 같잖아? 그런데 노인정은 안 그래. 내가 일흔 살쯤에 갔는데 거기서 막내였거든. 다 꼬부랑 할메 할배들만 있어가지고. 점심때 나더러 뭐라는 줄 알아? (어~이! 막내! 어여 수저 안 놓고 뭐 해!) 이러는 거야."
"가자마자 일부터 시켜?"
"그러니까. 언제 봤다고 처음 본 사람한테 일부터 시키냐고. 그리고 거기 할메들은 사람을 가만히 두지를 않아.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 심심한 노인네들이라 말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게지. (남편은 죽었냐? 자식은 몇이냐? 자식이 결혼은 했냐? 직업은 뭐냐?) 별 걸 다 물어봐! 내가 결혼을 안 했다고 하면 왜 결혼을 안 했냐고 물을 게 뻔하잖아? 그래서 영감은 죽었다고 했지. 그랬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눈치도 없이 (어머! 얘 결혼 안 했어요!) 그러는 거야. 그러니 또 (왜 여태 결혼을 안 했냐?) 난리지. 아... 나랑은 진짜 안 맞아. 다시는 노인정은 안 가기로 했어."
"그러게. 결혼을 왜 안 했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나? 아홉 남매랑 엄마랑 조카랑 손자까지 줄줄이 이야기가 끝도 없는데......"
"그러니까."
"근데! 왜 나한테는 얘기해 주는 거야?"
"언니는 편하잖아. 나는 언니가 좋아. 예의 없고 답답한 노인네들은 싫어. 어떨 때 보면 내가 좀 유난스러운 사람인가 싶기는 한데. 싫은 걸 어떻게 해."
시간이 아주 잠깐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할머니의 몸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들이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80년을 살아내느라 하얗게 바래 버린 머리칼, 늙고 쪼글쪼글해진 손등, 깊이 파인 팔자주름, 두툼해지고 찌그러져 못생긴 손톱까지.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닌가. 그저 폐지 줍는 할머니에 불과했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내게 자신의 특별한 정원을 보여주고, 서로의 것을 나누고, 밥을 같이 먹고,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넘어선 특별함이었다. 물론, 찰진 고봉밥은 빼고 말이다.
토토 할머니도 사랑이 할아버지처럼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려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부고 소식이 들리면 어쩌나... 하고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인연을 맺고 끊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찾아가지 않아도 나를 찾아오는 고양이들과 그 고양이들을 따라 공방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이야기.
이제 나는 할머니가 나를 찾지 않아도 먼저 할머니를 찾는다.
"할머니. 이제는 개 키우지 말고, 길고양이들 밥만 챙겨주면서 살아."
"응. 안 그래도 그러려고."
"너무 안 움직이면 안 좋으니까 살살 돌아다니고."
"그래야겠지?"
"반찬은 좀 적당히 좀 만들고."
"알았어. 고마워!"
"고맙기는 뭘! 잔소리하는데 왜 고마워?"
할머니는 대답은 하지 않고 배시시 웃기만 한다. 나는 잔소리를 하나 더 추가했다.
"아프지 말고!"
"금방 죽을 건데 어떻게 안 아파."
"아~~ 그런 말은 좀 하지 말고!"
"그래. 알았어."
나의 여든셋은 어떤 모습일까?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해지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노인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꼰대가 되지는 않겠지? 목공 한답시고 운동할 시간도 없는데 여든까지 살 수는 있으려나? 나도 토토 할머니처럼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할머니가 내 곁에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