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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고양이의 삶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by 온벼리

길 고양이의 삶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유난히 조용한 골목. 이른 여름의 아침 햇살이 뜨겁다. 빛은 쨍한 것이 반나절이면 이불 빨래도 바싹 말릴 기세다. 더럽혀진 길이의 이불을 꺼내 빨래를 했다. 마당 한쪽에 작은 빨래건조대를 펼치고 물기를 탈탈 털어 이불을 널었다. 뛰어놀던 고양이들은 어느새 조용하다. 일광욕을 즐기러 나온 귀티가 더웠는지 슬며시 그늘로 가 눕는다. 담장 위로 올라간 꼬맹이는 잎이 파릇파릇해진 벚나무를 오가며 재잘거리는 참새들을 구경하는 중이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을 제외하고 공방 문은 항상 열려있다. 녀석들은 하루 종일 들락거리다 저녁때가 되면 안으로 들어와 잠을 잔다. 공방은 고양이들의 안전하고 편안한 잠자리가 된다.

밤 10시.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지 한참이다. 귀티는 잠든 지 오랜데 꼬맹이는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 작업한다 샘치고 느긋하게 기다려보기로 했다. 밤 12시. 시간을 인지하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조각도를 작업대 위에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와보니 마당에 미애가 누워있다. 미애 옆으로 가 앉았다. 녀석은 나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눈을 감는다.

"미애야! 여기서 뭐 해? 밥 먹고 쉬는 거야? 아는 척 좀 하시지? 너 혹시 꼬맹이 봤어?"

"......"

"꼬맹이는 도대체 어딜 돌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추우면 쪼르르 잘도 들어오는 놈이. 날만 따듯해지면 나가서 이렇게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 네가 가서 좀 데리고 올래?"

"......"

"이놈은 왜 자꾸 속을 썩이는 걸까? 들어오면 궁둥이 팡팡 때려줘야겠지?"

"......"

"몇 대 때려주면 좋을까? 열 대? 스무 대? 아니다. 백 대 정도는 때려 줘야 정신을 차리겠지?"

"......"

"그 눈빛은 뭐야? 더 때려 주라는 건가? 허~ 참!! 미애 너 꼬맹이 싫어하지? 내가 다 알고 있거든? 너! 귀티 하고만 친하게 지내지 말고. 꼬맹이하고도 좀 친해져 보는 건 어때?"

"......"

"싫어? 왜 말이 없어?"

"......"

"싫음 말고."

"아... 그런데 이놈 짜식은 도대체 어딜 돌아다니길래 이렇게 안 들어오는 거야?"

스마트 태그로 위치를 추적해 보았다. 이런 날을 위해 위치추적기를 목에 달아 놓지 않았던가. 공방 뒤 어디쯤으로 나온다. 위치 추적이 제법 정확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밖으로 나와 찾아보지만, 캄캄한 골목에서 숨은 고양이 찾기가 쉽지 않다.

"꼬맹아!!! 꼬맹이 어디 있어? 꼬맹아~~"

꼬맹이는 대답도 없고 내 목소리만 골목을 쩌렁쩌렁 울린다. 민망할 정도로 조용하다. 공방으로 다시 들어가 북어트릿을 봉지째 들고 나왔다. 목소리를 최대한 상냥하고 부드럽게 가다듬어 다시 불러본다.

"꼬맹아~~~ 우리 이쁜 꼬맹이 어디 갔을까? 엄마가 북어트릿 가져왔는데~~ 얼른 나와서 북어트릿 먹어야지?? 응?? 네가 제일 좋아하는 북어트릿 왔어요~~~ 꼬맹아~~~ 꼬맹이 어디 있니??"

북어트릿을 봉지째 흔드는데도 반응이 없다.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분명히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데 왜 대답이 없는 걸까?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걸까?

"꼬맹아~~~ 꼬맹아~~~~ 꼬맹이 얼른 나와 봐!! 꼬맹아~~~ 얼른 나와 보라고~~"

상냥했던 말투는 점점 거칠게 변해갔다.

"꼬맹아~~~ 나와 보라고! 이 새끼야!!!! 엄마가 부르는데. 왜! 대답도 않느냐고!!"

이쯤 되면 살살 구슬려 꼬드기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갔다. 고양이는 소리에 민감하다. 화내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그러니 화를 내면 더욱 말을 듣지 않는다. 알면서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 이제 누가 듣든 말든 안중에도 없다. 화산 폭발과 동시에 용암은 흐르고 가스는 하늘을 뒤덮었다.

"야! 이놈에 고양이 새끼야!! 콧구멍에 바람만 잔뜩 들어가지고! 불러도 대답도 않고!!

너 이러려고 나한테 키워달라고 왔어? 어??? 내가 니 호구냐?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먹여주고 재워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절은 못할망정.

부르면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이런 싹퉁머리 없는 새끼야!!!

에이 씨!!! 빌어먹을. 말할수록 더 열받네?!!"

혼자 폭발하면 뭐 하나. 듣는 놈은 대답도 없는데. 분노를 삼키며 다시 위치를 추적해 보았다. 그 자리 그대로다. 이놈이 다 듣고 있으면서 아는 척도 않는 것이다.

"야~~ 꼬맹이!!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거든? 어디 두고 보자!! 엄마 갈 거야 이제! 들어오기만 해 봐 이놈 새끼! 아주 그냥 뒤지게 궁둥이를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백 대가 뭐야. 백만 대는 맞아야겠네!"

별수 없이 포기하고 퇴근하기로 했다. 밤새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날 아침. 공방 앞에 주차된 차 밑에 숨어있던 꼬맹이는 공방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시원하게 똥오줌을 싸 젖히더니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간다. 어이가 없다. 궁둥이를 때려 줄 심상으로, 방으로 따라 들어가 보니. 어라? 벌써 잠든 것인가? 대낮이라고 눈이 부신지 두 앞발로 얼굴을 가리고 쪼그리고 자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반사적으로 카메라부터 들이댄다. 귀여운 것은 사진부터 찍어야 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놈을 어떻게 때린단 말인가. 젠장! 겨우 귀여움 하나에 분노가 사르르 녹는다. 그래도 어제 일을 생각하면 잔소리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야 이놈아! 피곤하냐? 어? 피곤해? 그렇게 놀아 재꼈으니 피곤도 하겠지? 밤새 어딜 그렇게 돌아다닌 거야? 도대체 뭐 한다고 밤새 안 들어온 거냐고! 어? 어우~ 이놈의 새끼를 그냥!! 곤히 자는 놈을 팰 수고 없고!!

꼬맹아!! 외박 좀 하지 말고 일찍 일찍 좀 들어오면 안 될까? 어?"

순간 기분이 묘했다.

"뭐지? 나는 왜. 밤새고 들어온 다 큰 딸내미에게 잔소리하는 기분이 들지?

쳇! 자식이 없어서 편하게 살 팔자인가 했더니. 이놈에 고양이 새끼들이 속을 썩이네!"

혼잣말인지 대화인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떠들어야 속이 시원해진다. 속은 바로바로 풀어야 무병장수할 수 있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일어난 꼬맹이는 슬금슬금 기어 나와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소변을 본다. 나가지 말랬더니 눈치를 살살 보다가 한눈판 사이 냅다 밖으로 줄행랑이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오늘도 이 빌어먹을 고양이 새끼는 들어올 생각이 없다. 낮잠을 그리 잤으니, 밤잠이 오겠는가? 해가 지고 적당히 선선해진 바깥 날씨는 놀기에도 딱 좋다. 오늘도 신나게 놀아 재낄 셈이다. 세탁소 담장 너머에 아지트라도 만들어 놓은 것인가. 근처에 있는 것 같은데 불러도 대답이 없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꼬맹이!!! 엄마 퇴근한다! 밤새 문 앞에서 기다려도 소용없어! 알아서 해!!! 고생 좀 해 봐라! 요놈아!"


다음 날 아침. 밤새 뉘우치며 기다리고 있었을 꼬맹이를 생각해서 일부러 느지막이 출근했다.

"똥줄 좀 타 봐라! 요놈! 제가 가긴 어딜 가? 갈 데도 없는 놈이. 밤새 잠 못 자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쌤통이다. 요놈아!"

어라? 근데 공방 문 앞에 꼬맹이가 없다. 주차된 차 밑에도 없다. 급식소에 남은 밥이라도 먹고 또 놀러 갔나? 혹시 길이 집에서 자고 있는 건 아닌가? 길이 집에는 길이 혼자뿐이다. 공방 앞 CCTV를 돌려 보았다. 밤새 꼬맹이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지? 불길한 예감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위치를 추적해 보니 세탁소 담장 너머 어제 그 자리 그대로다. 별다른 움직임 없다. 밤새 한자리에 있다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떻게 밤새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지? 애타는 마음으로 꼬맹이를 찾기 시작했다.

"꼬맹아~~~ 꼬맹아~~~ 어디 있어? 꼬맹이 어디 있는 거야! 어?"

공방 옆 담장 위로 올라가 균형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 높다란 세탁소 담장까지 다다랐다. 세탁소 담장 위는 지붕이 둘러져 있었다.

"꼬맹아~~ 꼬맹이 어디 있어?"

"냥~~~~~~~~"

담장 너머 어딘가에서 조그맣게 고양이 울음 소기라 들려왔다.

"꼬맹이니?? 꼬맹이 거기 있니?"

"냥~~~~~~~~"

꼬맹이 울음소리가 분명했다. 힘없고 구슬프고 애절한 소리.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담장 안쪽은 지붕 때문에 보이질 않는다. 소리를 따라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담장에 친 기붕과 그 아래 높이 쌓아둔 짐 때문에 안쪽이 보이질 않는다.

"이런 썩을. 여기다 왜 지붕을 쳐놓은 거야? 이거 불법 구조물 아냐? 이웃이고 뭐고 신고해 버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담장 안쪽을 들여다보니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꼬맹이가 보인다. 반가움과 안도감에 목소리가 격해진다.

"꼬맹아!! 너 거기 있었어? 거기 어떻게 들어간 거야??"

담장이 너무 높다. 꼬맹이가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밤새 거기 갇혀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어?"

"냥~~~~~~~"

"아이고. 어쩌냐? 여길 어떻게 들어가지? 너무 좁은데? 큰일 났네!"

"냥~~~~~~"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걱정이다. 꺼내달라며 애절하게 울어대니 마음이 더 급해진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꺼내 줄게!"

"냥~~~~~~"

지붕 아래로 높이 쌓은 짐은 파란 비닐 방수포에 싸인 채 줄로 묶여있었다. 몸을 최대한 작데 접어 조심조심 틈 사이로 기어들어가 겨우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나를 본 녀석은 마음이 놓여서인지 반가워서인지 생전 부리지도 않던 애교를 부리며 쉴 새 없이 얼굴을 비벼댄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 부러지거나 다친 곳 없어 보인다. 다행이었다. 꼬맹이를 안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갑갑하다. 방수포가 미끄러워 올라갈 수가 없다. 고민을 하다 묶어둔 끈을 풀고 방수포를 젖혀 쌓아 둔 짐들을 밟고 기어올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꼬맹이의 손톱은 짧게 닳고 쪼개져 있었다. 담벼락을 오르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다. 털은 온통 먼지투성이고 밤새 울어댔는지 목소리는 갈라지고 힘이 없다.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있었던 충격이 생각보다 컸던지 밥도 먹지 않고 좋아하는 북어 트릿과 템테이션도 먹지 않는다. 소파 밑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번쩍거린다. 눈치 없이 장난을 걸던 귀티는 평소같이 않은 꼬맹이의 앙칼진 공격에 깜짝 놀라 후다닥 도망을 친다.

충격은 때로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큰 깨달음은 얻은 꼬맹이는 이후로 개과천선하여 날이 저물면 부르지 않아도 칼같이 들어와 밥을 먹고 따뜻한 방에서 곤히 잠을 잔다. 그리고 아주 조금 얌전해졌다.




스스로 찾아온 똑똑한 길고양이. 다시 급식소를 차리게 만든 녀석. 몇 번의 계절이 바꾸는 동안에도 길이와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구내염을 앓고 있었던 길이는 이제는 만성이 된 것처럼 구내염을 달고 산다. 약만 먹어도 금세 좋아질 병인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니 자꾸 병이 도진다.

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바쁜 일들과 금전적인 문제까지 겹쳐 길이의 병원행은 계속 뒤로 밀렸다. 최근 들어 부쩍 쇠약해진 모습이다. 조용히 들어와 밥을 먹고 있는 듯 없는 듯 쉬었다 가는 녀석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미안하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그날 저녁 길이를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구내염에 헤르페스에 칼라시바이러스까지 걸려 있었다. 이빨은 다 어디 가고 다섯 개뿐이다. 입원시켜 수액을 맞혔더니 금세 기력을 회복했다. 이렇게 금방 좋아질 것을 여태 치료도 못 하고 있었다니. 퇴원 소식을 들은 슈퍼 아주머니는 길이를 위해 닭가슴살을 삶았다. 길이는 슈퍼에서 닭가슴살을 얻어먹고 밤이 되어서야 공방으로 왔다. 끼니때가 되면 꼬박꼬박 들어와 밥 먹는 녀석인지라 굳이 공방에 격리시켜 치료할 필요는 없었다. 캔에 약을 비벼줘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기특한 녀석이다. 약을 먹으니 감기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보슬비가 점심때가 되도록 그칠 줄을 모른다. 비가 오는 아침은 사람이나 고양이나 일어나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불에서 나오기 싫었던 길이가 늦잠을 자다가 점심때가 다 되어 졸린 눈을 끔뻑거리며 문 앞에 앉아 밥을 기다린다. 무스 캔에 약을 비벼주니 금세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비 내린 젖은 골목을 유유히 걸어간다.


토요일 아침. 아직 출근 전인데 슈퍼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아침 일찍 무슨 일이세요?"

"조금 전에 손님이 와서 그러는데. GS편의점 앞에 고양이가 죽어 있다고 그랬거든. 근데 손님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아무래도 길이가 아닌가 싶어!"

"네?? 길이가요?"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

'죽은 고양이가 길이라고?? 길이가 죽었다고? 길이가?? 왜???'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가게를 비울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좀 가서 살펴볼 수 없어?"

"아... 네! 네! 알겠어요. 제가 가 볼게요."


급하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대충 묶고, 어제 벗어 두었던 옷을 다시 그대로 입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같이 가자! 나 혼자 못 갈 거 같아."

남편을 재촉해 집을 나섰다. 초조했다. 길이가 아니길 바랐다. 멀리 편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누워있는 고양이가 보인다. 검은 고양이. 나는 먼저 내리고 남편은 공방 앞에 주차하러 갔다. 편의점 쪽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워질수록 바닥에 누워있는 고양이가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길이의 몰골이 참담했기 때문이다. 찌그러진 얼굴, 반쯤 튀어나온 눈, 입 밖으로 빠져나온 두 개의 송곳니, 납작해진 배, 항문 밖으로 튀어나온 변까지. 차바퀴에 깔린 것이 분명했다.

"아~~~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진짜 우리 길이야. 길이가 죽었어. 어떻게 해~~~ 으엉~~~"

주차를 마치고 뒤늦게 온 남편이 길이의 몰골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가까이 가려는 나를 막아섰다.

"지아야! 손대지 마! 내가 할 테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아~~~ 어떻게 해! 우리 길이였어. 어떻게 해!!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우리 길이였어. 어떻게 해~ 길이가 죽었어~~~ 으엉~~~"

남편은 말없이 편의점으로 들어가 빈 종이 상자를 가져와 길이의 사채를 옮겨 담았다. 길이를 담은 상자를 들고 공방으로 향했다. 상자를 공방 바닥에 내려놓고 한참을 울었다. 돌보던 녀석 중에 병들어 죽은 녀석들은 있었지만, 사고로 이리 처참하게 죽은 녀석은 처음이었다.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내 보내지 말고, 좋아질 때까지 데리고 있을걸...

진작에 병원 데려가서 치료해 줬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고양이가 차 밑으로 들어가면 좀 조심해서 운전할 것이지.

왜 확인도 않고 차를 움직이고 그러냐고~ 흐어엉~~"

"길이가 몸이 약해서 차를 못 피했나 봐."

"피할 시간이라도 좀 주지! 뭐가 그렇게 급해서 고양이를 깔고 가느냐고!!! 으앙~~~"

"그러게... 에휴..."

커다란 종이 위에 길이를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감싸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잘 가! 이제 아프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밥 먹고 갔는데... 이게 무슨 일이니? 어제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흐흑."

충격적인 몰골은 사고 당시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불쌍한 우리 길이. 흐흑!!"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길 생활을 잘 버텨왔던 길이였다. 병원 다녀온 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가엾기 짝이 없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정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길고양이 사체는 구청에 신고하면 수거해 간다. 하지만 어떻게 처리할 것이지는 너무도 뻔하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길이를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슈퍼 아주머니에게 전화했다. 사고 난 고양이는 길이가 맞다고. 우리가 장례를 치러 주겠노라고. 슈퍼 아주머니가 남편과 교대하고 공방으로 달려왔다. 아주머니는 울먹이며 길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길이는 이제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자기 덕분에 그래도 잘 지냈잖아."

"길이가 이렇게 갑자기 갈 줄은 몰랐어요. 너무 속상해요."

"그래. 나도 속상한데 자기는 오죽하겠어. 그래도 할 만큼 했어. 사고였는데 우리가 어쩌겠어. 너무 슬퍼하지 말고."

"어제까지만 해도 밥 잘 먹고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그래... 에그. 불쌍한 놈. 살아 보겠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허망하게도 갔네."

"너무 불쌍해요. 어떻게 고양이를 그렇게 깔고 지나갈 수 있냐고요."

"많이 놀랐구나! 괜찮아! 괜찮아!!"


슈퍼 아주머니는 장례 비용에 보태라며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고 떠났다. 남편과 나는 마르코와 쁜이를 보냈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사람 장례식장이나 반려동물 장례식장이나 휑한 것은 마찬가지다. 유독 마음이 시린 곳. 차디찬 복도 끝 의자에 앉아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 몇 번째 오는 거지?"

"글쎄... 다섯 번째인가?"

"인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

"나도..."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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