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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편견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by 온벼리

장애인에 대한 편견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공방은 이제 밥때만 되면 고양이들로 북적인다. 꼬맹이, 귀티, 급식소 단골손님인 미애와 미미, 거기다 새 식구 마틸다와 빛나까지 모두 여섯 마리다.

인스타 친구가 구조한 카오스 새끼 고양이 마틸다를 임시 보호하게 되었고, 토토 할머니 집 뒷마당에서 지내던 삼색 고양이 빛나가 공방 식구가 되었다.


구조 당시 눈곱이 심했던 마틸다에게 안약이 처방되었다. 사람의 손길에 익숙지 않은 녀석인 데다 성격까지 까칠했다. 그런 녀석에게 안약을 넣겠다 씨름했으니 나를 경계할 수밖에.

마틸다는 꼬맹이와 귀티를 잘 따른다. 특히 늘 혼자 노는 꼬맹이와 유독 친하게 지낸다. 언니 오빠들이 외출하면 마틸다도 밖으로 나고 싶어 했다. 평소 같으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공방 문을 활짝 열어두지만, 아직 어린 마틸다는 밖으로 나가면 다시 공방을 찾아올 줄 모른다. 그러니 마틸다가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두고 드나드는 고양이들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잠깐씩 열었다 닫는다. 뻔질나게 드나드는 녀석들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마틸다의 안전을 위해서는 귀찮더라도 참아야 했다.


몇 개월이 지나 마틸다도 제법 컸다. 공방 고양이가 된 이상, 마냥 가둬둘 수는 없다. 예전처럼 문을 열었다. 마틸다는 언니 오빠를 따라 조금씩 외출 반경을 넓히더니 이것이 겁도 없이 외박을 감행했다. 꼬맹이가 얌전해지니 새로운 놈이 또 속을 썩인다. 고양이들은 중성화수술을 해 주지 않으면 발정기에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빨리 중성화 수술을 해 주어야 했다. 나를 경계하는 녀석을 잡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조그만 녀석이 어찌나 날렵한지. 한참 추격전을 벌이다 화장실 구석으로 몰아 이불로 덮쳤다. 포획이나 다름없었다. 마틸다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그 일로 나를 더욱 싫어하기 시작했다.

수술 직후에는 얌전한 듯 보였으나 회복을 한 이후로는 이전보다 더 경계하며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 근처만 가도 하악질이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도록 마틸다는 나를 변함없이 싫어한다. 괜히 임시 보호를 하겠다 해서는 이게 뭐람. 자기를 돕는 사람에게 감사는 못할망정.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내 생전 고양이에게 자존심이 상해 보기는 또 처음이다. 철없고 멋모르는 꼬마 고양이 아닌가. 너그럽게 기다려 주자고 마음먹었다가도 막상 마틸다의 눈빛과 대면을 하게 되면 괘씸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았건만. 이놈의 건방진 새끼 고양이가 나를 사악한 마녀 취급을 한다니. 까칠한 깍쟁이 계집애. 카오스가 까칠하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이렇게 까칠할 줄은 몰랐다. 임시 보호한 지 한참인데 홍보를 해도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돌봐주는 사람을 저리 경계하는데 누가 예쁘다고 데려갈까. 임시 보호를 하지 말걸... 후회막심이다.


토토 할머니 집에 캔과 사료를 배달 갔다.

"언니! 이리 좀 와 봐!"

"왜?"

할머니는 나를 빌라 뒷마당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 좀 봐봐!"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고양이 집 안에서 락스 냄새가 진동했다.

"뭐야? 이 냄새는? 락스 냄새 아니야? 누가 이런 짓을 했어?"

"우리 빌라에 새로 이사 온 영감이 있는데. 그 인간 짓이야. 그 인간이 그렇게 유난을 떤다.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냄새난다고, 난리 난리를 치길래. 그냥 무시했거든. 그랬더니 고양이 집을 발로 다 밟아서 밖에다 내다 버린 거야. 그래서 다시 가져다 놨지! 그랬더니, 이렇게 얘들 집에다 락스를 뿌려 놓는다. 저번에는 쥐약까지 넣어 놨더라고."

할머니는 한쪽 구석에 비닐로 싸 놓았던 쥐약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거 봐! 이걸 이 안에다 이렇게 넣어 놨더라니깐!"

"얼른 버려! 얘들 주워 먹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래, 그래서 애들 못 먹게 꽁꽁 싸 놨잖아. 언니 보여주려고 내가 안 버리고 가지고 있었지."

"공동 공간이니까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락스를 뿌리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그놈에 영감탱이랑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

"큰일이네? 고양이들이 불안해서 들어오겠어?"

"요즘 고양이들이 영감 무서워서 잘 안 들어와. 길고양이라고 밥만 챙겨주면 되는 줄 알았더니. 뭐가 이렇게 어렵냐?"

"나 같으면 끝까지 싸울 텐데. 할머니는 적당히 눈치껏 해! 해코지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래야 하는데. 성질나는 걸 어떻게 하냐고."

토토 할머니는 여전했다. 죽은 토토 대신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매일 아침 폐지를 주으러 온 동네를 누비고, 먹지도 못할 반찬을 부지런히 만든다. 할머니의 고봉밥을 꼭꼭 씹어 먹고 공방으로 돌아오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계속 나를 따라온다. 슬쩍 전봇대 뒤에 숨어서 살폈더니 녀석이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다. 구내염으로 침을 질질 흘리는 비쩍 마른 삼색 고양이. 할머니 뒷마당에서 지낸다는 빛나였다. 녀석은 일정 거리를 두고 나를 뒤쫓고 있었다. 모른 척 내 길을 걸었다. 빛나는 공방 앞까지 나를 따라왔다.

"저 녀석 뭐지? 왜 여기까지 따라왔지? 배가 고픈가? 내가 밥을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자기한테 밥을 직접 준 적도 없는데 왜 나를 따라왔지? 급식소 운영하는 걸 알 리도 없을 텐데. 신기한 놈일세! 도대체 고양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호구를 잘도 알아보는 거지?"

빛나는 눈치를 살피면서 공방 안으로 들어와 탐색했다. 고양이들은 어쩜 저렇게 자기를 도울 사람을 잘도 알아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꼬맹이와 귀티가 그랬고, 길이도 그랬다. 길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녀석들은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나는 마틸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마틸다! 자냐? 쟤 좀 봐라! 빛나라는 놈인데. 토토 할머니 집에서 여기까지 나를 따라왔다. 쟤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온 거야. 근데 너는 뭐니? 이 건방지고 철딱서니 없는 것아! 너는 엄마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주고, 치료까지 해 주는걸. 고마워하기는커녕. 아주 그냥 세상 못된 마녀 취급을 하고 있으니. 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이 나쁜 계집애야!! 알아듣냐고!!"

캣타워에서 자고 있던 마틸다가 큰 소리에 놀라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눈치를 보아하니 자기더러 하는 말인 것 같으니 슬며시 바닥으로 내려와 방으로 몸을 피한다.

"말해 뭐 해! 나만 구차스럽지. 에이! 다시는 임시 보호를 하지 말아야지!"

빛나는 매일 공방을 찾아와 밥을 얻어먹었다. 처음에는 밥만 얻어먹는가 싶더니 며칠 지나자, 공방 안에서 낮잠을 자고, 또 며칠이 지나자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공방 식구라도 되는 양 밖으로 나갈 생각도 않는다. 아예 공방을 제 집으로 삼은 모양이다. 빛나는 쫓겨나지 않으려면 공방의 다른 고양이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느 놈에게도 덤비지 않고 서열의 꼴찌를 인정하고 아주 조용하고 얌전히 지냈다. 눈치 빠르고 얌전하지만 의외로 뻔뻔스러운 구석이 있는 이상한 놈이다. 나는 녀석을 받아들인 적이 없는데 멋대로 들어와 나갈 생각을 않으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내쫓지 않기로 했다. 토토 할머니 빌라가 지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빛나도 알고 나도 안다. 그리고 나는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녀석은 내쫓지 않는다.


눈이 슬픈 빛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아직 무언가 요구할 배짱은 없다. 눈만 떼굴떼굴 굴리며 눈치를 살필 뿐이다. 가끔은 측은하기도 하다. 건방진 마틸다와는 딴판이다. 물론 꼬맹이와 귀티도 건방지다. 그렇다고 마틸다처럼 은혜도 모르고 까칠하게 굴지는 않는다. 마틸다만 유별난 것이다. 같은 시기에 들어온 놈들이니 유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 비교하게 된다.




재개발 지역에서 공방 하던 시절. 작은 몰티즈 새끼를 안고 공방 앞을 산책하던 두 사람이 있었다. 70대로 보이는 할머니와 40대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모자 사이인 두 사람은 둘 다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오른쪽 눈에 사시가 있고 말이 약간 어눌한 경증 장애로 보이고, 아들은 초등 저학년 수준의 지능을 가진 늙은 청년이었다. 행색마저 초라했다.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품에 안겨있던 강아지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이 과연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강아지 키우는 법을 알기는 할까? 멋모르고 학대를 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은 주인을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 그들이 공방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사람보다 강아지를 더 걱정했다. 그들이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은 별이었다.


공방을 이전하고 몇 년이 지났다. 공방 앞마당을 쓸고 있을 때였다. 예전에 봤던 그 장애인 모자가 목줄을 한 몰티즈 한 마리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별이었다. 할머니와 아들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별이는 훌쩍 자라 있었다. 별이의 발걸음은 발랄하고 경쾌했다. 털도 깨끗하고 건강해 보였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격한 반응을 보였다.

"어머!!! 너 별이 아니니? 아우~~~ 별아~~~ 여기서 또 보네? 안녕? 반가워! 잘 지냈어?"

할머니가 반색하며 물었다.

"우리 별이를 어떻게 알아요?"

"예전에 저쪽 재개발 지역에서 공방 하다가 이쪽으로 이전해 왔는데. 그때 공방 앞을 산책하시는 거 자주 봤어요. 요만한 새끼 강아지였잖아요. 아기처럼 안고 다니면서 우리 별이! 우리 별이! 그러셔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죠."

"아! 그래요? 그 공방이 여기로 이사 왔어요?"

"네! 이전한 지 몇 년 됐어요. 별이가 이 골목으로 지나가는 건 처음 보는데요?"

목공방 자리는 골목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온 외진 골목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으로 상점을 차렸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이 자리를 택했다. 나의 목공방은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주문을 위주로 하고 주택가는 오히려 외진 곳이 소음에 대한 항의도 적기 때문이다. 거기다 월세까지 저렴하지 않은가.

"별이가 가자는 대로 따라왔어요."

"그렇구나! 별아!! 이리 와 봐!! 아이고 예뻐라~ 어쩜 이렇게 예쁘게 잘 컸어?"

별이는 사람을 잘 따랐다. 천진난만하고 밝은 것이 사랑받으며 자란 것이 분명했다.

"간식 좀 줘도 될까요?"

가만히 있던 아들이 갑자기 손사래를 친다.

"안 돼요. 간식 주면 안 돼요. 간식 먹으면 사료 안 먹어요."

아들의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자기 딴은 별이를 잘 키워 보겠다는 노력이 아니던가. 할머니는 모든 것을 별이의 시점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은 할머니고 아들은 삼촌이었다. 별이는 할머니 손자요 아들의 조카인 것이다. 별이네 집은 공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후로 그들은 산책길에 매일 공방 앞을 지나갔고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별이는 신나게 뛰어와 내게 안겼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이를 닮았다.


어느 날은 웬 할아버지가 별이와 산책을 나왔다. 별이의 할아버지였다. 맙소사! 할아버지도 장애인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적 장애가 있는 노부부와 중년이 다 되었지만, 초등학생의 지능을 가진 지적 장애인 아들이라니. 어떻게 셋 다 장애가 있는 걸까? 돌봐 줄 정상인 하나 없이 장애인 셋이서 이 복잡하고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나는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모른다.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판단할 뿐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들을 지켜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들은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별이를 포함한 온 가족이 행복해 보였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에 만족도가 높았고, 불평보다는 감사의 언어들이 많았다. 서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아끼며 사랑했다. 별이에게도 그러했다. 나의 걱정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일 뿐이었다.


별이네 가족이 이사를 한다고 했다. 장애인 기초수급자로 정부의 주택 매입 지원을 받아 첫 내 집 마련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왔던 그들 아닌가. 내가 더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별아! 별이가 좋아하는 이모 이제 못 봐서 어떻게 하니?"

나는 별이에게 이모였다.

"잘됐어요! 아우~ 진짜 잘됐어요. 정말 축하해요. 제가 더 기쁘네요."

"새집이라서 깨끗하고 좋아요."

"그러니까요. 정말 잘 됐어요. 와! 별이는 진짜 좋겠다~ 이제 새집에서 살게 되었구나!"

"안녕히 계세요. 별이 예뻐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네! 안녕히 가시고, 건강하게 잘 사셔야 해요. 별아~~ 잘 가~~~ 행복해야 해!!"

별이와 할머니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분 좋은 이별이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저녁이었다. 해가 지평선에서 낮과 밤의 가르면 가로등은 일제히 골목을 밝혔다. 잠옷을 입은 아가씨가 공방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하는 말이

"들어가도 돼?"

반말이다. 새파랗게 젊은것이 초면에 자기보다 열 살은 족히 더 되어 보이는 내게 반말이라니. 아무리 목공방도 서비스업이라지만 예의 없이 초면에 반말이 뭔가? 그래, 기분 나빠하지 말고, 반말에는 반말로 응대하면 될 것 아닌가.

"안 돼!"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예쁘장하고 곱상하게 생긴 아가씨가 다 저녁에 잠옷 차림이라니. 반말인 데다 당당한 태도는 또 뭔가?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뭔가 조금 이상했다. 움직임과 말투를 유심히 살폈다. 외견상 어디가 아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장애가 있어 보였다. 아가씨가 귀티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만져도 돼?"

"안 돼. 만지지 마!"

그녀는 이미 귀티를 쓰다듬고 있었다.

"만지지 말라고 했지!"

"물어?"

"어!! 물어!!"

그녀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귀티를 쓰다듬었다. 눈치 없는 귀티는 아가씨의 손길을 즐기며 머리를 비벼댄다. 그녀는 질문은 해도 듣지는 않는 눈치다. 질문이 질문이 아닌가? 이번에는 진열대 위 메모장을 만지작거리며 묻는다.

"이거 뭐야?"

"메모지야."

"만져도 돼?"

"이미 만지고 있잖아! 안돼! 만지지 마!"

"나! 이거 가질 거야!"

"그래! 가져라. 가져!! 네 마음대로 할 거면서 묻기는 왜 묻니?"

그녀는 스물두 살이라고 했다. 외모만 봐서는 훨씬 더 들어 보였다. 겉은 어른이지만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진 아가씨가 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다 큰 처녀가 이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 집이 어디야? 집에 갈 줄은 알아?"

"갈 줄 알아."

"그럼 얼른 집으로 가!"

"알았어."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얼른 들어가라고 했지!"

"알았어."

대답과 행동도 일치하지 않는다. 알았다더니 집에 갈 생각은 않고 계속 딴짓이다.

"만지면 안 된다고 했잖아!"

"싫어. 만질 거야."

"집이 어디야? 엄마한테 전화한다!!"

그녀의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말을 안 들으니, 엄포를 놓을 수밖에.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그녀는 양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아~~~~~ 안 들려! 안 들려! 아~~~~~"

그녀는 질문을 하고, 나는 잔소리를 한다.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런 식이다.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그녀는 질문을 하고 대답은 듣지 않는다. 그러면서 또 질문을 한다. 귀찮지만 나는 꼬박꼬박 대답한다. 그렇다고 절대 긍정적인 대답은 아니다.


어느 날은 그녀가 공방으로 들어오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가 뒤따라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조심스레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네! 어떻게 오셨어요?"

"쟤가 제 딸이에요. 어딜 돌아다니나 해서 따라와 봤더니 여길 오는 거였네요."

"아! 그러세요? 저 친구 가끔 여기 와서 고양이랑 놀다가 가요."

"아빠한테 혼나는데 자꾸 돌아다니네요."

"몇 살이에요?"

"서른 살이요."

"자기 말로는 스물두 살이라고 하던데요?"

"기억이 거기서 멈춰서 그래요."

그랬다. 그녀의 기억은 스물두 살에 멈춰 있었다. 교통사고로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에 장애인이 된 것이다.

"우리 애는 지능이 열 살 정도밖에 안 돼요."

열 살이면 초등학교 3학년인데 내 보기엔 그녀의 지능은 일곱 살도 안 되어 보였다. 초등학교 후문에서 공방을 한지도 꽤 됐다. 목공방에는 초등학생들도 자주 놀러 온다. 아이들은 과자를 사들라고 와 자기들끼리 먹고 떠들다 고양이를 만지며 놀다가 간다. 초등학생을 많이 본 내가 3학년의 수준을 모를 리 없다. 아가씨는 1학년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열 살과 일곱 살의 지능의 차이는 크다. 열 살이라고 믿고 있는 부모에게 구태여 일곱 살이라고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일곱 살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나가지 말라는데 자꾸 밖으로 나가네요. 찾아다니느라 애 먹었는데. 여길 온 거였어요. 사장님이 받아주시니까 계속 오고 싶었나 보네요. 감사합니다."

"아! 그래요? 저는 뭐! 딱히 받아주고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자기 혼자 놀다가 가는 거예요."

"그래도 내치치 않고 받아주셔서 고마워요."

내치지 않아 고맙다는 말에는 그녀의 아픈 경험들이 담겨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 만큼 잘해주지는 못했다. 말도 살갑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꾸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모녀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고맙다. 말은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가끔 다운증후군 남학생이 골목을 지나다 공방 앞마당에 누워있는 고양이들을 만지려 했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고양이들은 경계하며 후다닥 뛰어 도망을 친다. 꼬맹이와 귀티만 빼고 말이다. 어느 날은 귀티가 다운증후군 남학생 품에 안겨 있는 것이 아닌가. 겁도 없이 저것은 아무에게나 안겨서 큰일이다. 무서운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나는 다운증후군에 대해서 잘 모른다. 단지 외견상으로 드러나는 특징만 알 뿐이다. 귀티를 안고 있다가 갑자기 던지지는 않을까? 때리는 것은 아닐까? 나 모르는 사이에 안고 사라져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괜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차마 남학생에게 내려놓으라는 말은 못 하고 괜히 귀티만 타박한다.

"어라? 귀티! 너 그렇게 아무에게나 안기면 어떻게 해?"

"안녕하세요? 고양이가 너무 예뻐요."

남학생의 말투는 생각보다 온화하고 얌전했다. 거기다가 예의까지 바르다. 나도 덩달아 말이 부드러워진다.

"고양이 좋아해요?"

내가 말을 받아주자, 남학생은 해 같이 밝게 웃었다.

"네! 고양이 엄! 청! 좋아해요."

순간 모든 오해가 사르르 녹아 없어지더니 미안한 마음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래요? 그러면 자주 보러 와요."

나도 모르게 자주 오라는 말까지 해 버렸다. 실수였다. 자주 오라는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네!"

순하고 예의 바른 남학생. 고양이를 쓰다듬는 크고 두툼한 손길이 너무도 조심스러워 피식 웃음이 날 정도로 귀엽다. 저 나이에 저 정도로 무해무독한 사람이 있을까? 자주 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동네는 의외로 장애인이 많다. 토토 할머니 말로는 예전에는 장애인 학교가 근처에 있었고 더 많은 장애인이 살았는데 주민들의 잦은 항의로 학교가 이사 가면서 장애인들도 줄었다고 했다. 편견과 무지에서 오는 집단 이기주의였다.


나는 이제 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거짓과 위선에 물들어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정직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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