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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있는 반항 1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by 온벼리

소신 있는 반항 1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친구 해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아야! 나 식탁 좀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그래? 어떻게 만들어 줄까?"

"아파트로 이사 오니까 집이 너무 좁아. 접이식 식탁이 필요해."

"접이식? 접이식 식탁은 아직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참에 도전해 보면 되지! 너는 뭐든 잘 만들잖아."

"어떤 걸 원하는지 더 자세히 말해 봐."

"음... 일단, 재료는 나무였으면 좋겠고, 가볍고 튼튼했으면 좋겠어. 4인용인데 6인용 같이 넓은 식탁. 식탁으로도 쓰고 거실 용 테이블로도 쓸 수 있는 다용도 테이블. 길이 조정이 된다거나 접을 수 있어서 공간이 좁을 때는 세워둘 수 있었으면 좋겠고. 아! 기왕이면 반조립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어. 이동도 편리하고 분해하면 수납도 가능했으면 좋겠고."

목공을 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접이식 반조립 테이블은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해주가 요구하는 것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음... 일단 튼튼하면서 가볍기는 좀 어렵네! 보통 튼튼한 나무는 무겁거든. 반조립으로 만들려면 부속도 복잡하고, 길이 조절이나 접이식으로 설계하는 것도 꽤 복잡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요구사항이 많아 미안했든지 해주가 애교를 부린다.

"힝~ 그러니까 너한테 주문하는 거잖아. 어 야~~ 만들어 주랑~ 집이 너무 좁아서 그랭~ 내 사랑하는 단짝 친구야~ 부탁이야~"

"이것이. 언제 적 단짝을 들먹이고 그러는 거야? 누가 안 만들어 준 댔니? 만들어 줄 게! 대신 좀 오래 걸린다."

"우와!! 정말? 오래 걸려도 충분히 기다릴 수 있어. 고마워 친구! 내가 직접 가지러 갈 테니까. 예쁘고 튼튼하게 만들어 주세요~"

친구의 애교와 응원에 힘입어 '가벼운 나무로 만들었으나 튼튼한 6인용 같은 4인용 접이식 반조립 테이블'을 멋지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반 식탁이라면 뚝딱 만들어 냈을 것을. 준비하는 과정만 서너 배의 시간이 더 들 것은 뻔하다. 설계에도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부속품을 알아보고 주문했다. 제작 기간은 생각보다 더 길어질 것 같았다.




은평구 갈현국민학교 6학년 2반. 해주와 나는 같은 반이었다.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던 해주는 2반의 반장이었다. 서울로 중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파주에서 전학 온 친구들이 있었다. 해주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해주와 현아 그리고 나. 셋은 단짝이었다. 엄마는 내가 두 친구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둘 다 공부를 꽤 잘했기 때문이다. 비교의 달인이자 잔소리 마녀였던 엄마는 하필이면 내 친구들과 남동생의 친구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영수야! 너 또 어디 갔다가 왔어?"

"왜? 친구들이랑 오락실 갔다 왔는데?"

"이놈 새끼는 허구한 날 오락실에서 사네! 너 엄마가 그 못난 놈들이랑 놀지 말라고 했지. 너는 왜! 꼭! 너 같은 놈들하고만 붙어 다니는 거야? 너희 누나를 좀 봐봐! 누나는 공부는 못해도 저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랑 놀잖아! 지아 저것은 친구 하나는 야무지게 잘도 골랐어. 지한테 도움 되는 친구들하고만 놀잖아!"

제기랄. 또 시작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머리를 사정없이 쪼아댄다. 앙칼지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는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귀에 콕콕 들어와 박힌다. 비교 대상에서 우위를 선점한다고 할지라도 안심할 일은 아니다. 공평한 엄마는 삼 남매를 똑같이 예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능글맞은 동생 놈은 기죽지 않고 실실거리며 말대꾸한다.

"에이~ 엄마. 그렇다고 내 친구들이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닌데?"

"지랄하네. 반에서 중간도 못 하는 것들이. 그게 공부를 잘하는 거니?"

"누가 잘한다고 했어? 못하는 건 아니라고 했지."

"그게 그거지! 10등 안에도 못 들면 잘하는 거니? 그렇게 어중간한 놈들 말고. 너보다 공부 잘하는 놈들이랑 다니면서 좀 배우란 말이야."

"그래서 누나가 그 친구들이랑 다녀서 성적이 올랐어?"

"이제 조금씩 오르겠지. 그리고 지아는 적어도 오락실은 안 가잖아!"

"그건 누나가 오락에 흥미가 없어서 그런 거고."

"이놈의 새끼가 꼬박꼬박 말대답네?"

엄마는 영수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쳤다. 영수는 평소답지 않게 발끈하며 눈에 힘을 주고 대든다.

"에이 씨! 왜 때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좀을 보소? 어디 엄마한테 눈을 부라리고 그래??"

대든다고 물러서거나 져줄 양반이 아니다. 영수는 괘씸죄로 뒤통수를 한 대 더 맞아야 했고 폭풍 같은 잔소리도 들어야 했다.

"이놈 새끼야! 너보다 잘난 놈들을 만나야 덩달아 공부도 하고 성적도 오르는 거야!! 너 지난번에 몇 등 했어? 어? 이제 또 중간고사 볼 때 되지 않았어? 공부는 하긴 하니? 나는 네가 집에서 공부하는 꼴을 못 봤다. 오늘 숙제는 없어? 학교 끝나면 얼른 들어와서 예습 복습하고 숙제도 하라고 했지! 오락실 좀 작작 좀 다니고! 공부 좀 하라고 이 새끼야!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는 거냐 너는? 어??"

"그러는 엄마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어? 몇 등 했는데?"

헉! 큰일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건넌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삼 남매 중 그래도 눈치가 제일 빠른 놈인데 분노에 눈이 뒤집혀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엄마는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 사람이다. 지지리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억울했던 사람 아닌가. 그 한은 작은 충격에서 쉽게 터지는 화산과 같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화를 입는다. 숨죽이며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 둘! 셋! 엄마의 고함소리가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세 친구의 가정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가난했다. 서로 비슷한 처지였으니 가난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지 않았다. 지질하고, 옹졸하고, 폭력적인 독재자들을 희화화하며 낄낄거릴 뿐이었다. 또래와의 대화는 현실의 무게를 줄여주고 툴툴 털어내고 웃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현아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가난은 현아의 앞길을 막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가난의 벽 앞에서 좌절하고 실망했다. 자기보다 공부는 못했지만, 부유했던 친구의 유학 소식은 현아를 또 한 번 좌절하게 했다. 몇 년 후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와 높은 자리에 올랐고 현아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그때 나는 현아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겁이 없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힘으로 뭐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난은 싫고 고통스럽지만, 성공을 바라며 대단한 무언가가 되려는 욕심은 없었다. 그러니 현아를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허구한 날 딸의 자존감을 꾹꾹 밟아 쥐포로 만들었다.

뭘 하든 '네까짓 게'라는 말로 일단 찍소리도 못하게 밟고 시작했다.

"엄마! 나 대학 갈 거야."

"뭐? 네까짓 게 무슨 대학을 가겠다고 그래? 우리 집은 너 대학 보내 줄 돈 없어. 취업해서 돈 벌어서 시집이나 가! 계집애가 무슨 대학이야? 야! 엄마는 어떻게 산 줄 아니?"

안다. 백만 번도 더 들어서 줄줄 외우고 있다. 지겨운 잔소리에 귀가 막힐 지경이다. 빌어먹을. 그럴 거면서 똑똑한 친구 타령은 왜 했으며 공부는 왜 하라고 한 것인지. 그저 자기 속 편해지려고 그랬던 걸까?

나는 밟힐수록 고개를 쳐드는 인간이다. 절대로 지지 않는다. 좌절하거나 슬퍼하는 것도 싫다. 참아가며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더욱 질색한다. 엄마는 내가 독하고 지질맞다며 싫어했지만 내가 누굴 닮았겠는가?


응원은커녕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내 힘으로 벌어 스물다섯에 대학을 갔고, 4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장학금을 받아 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 20대가 끝날 때까지 대출금을 갚았다. 그것뿐인가. 내 힘으로 혼수를 마련하고, 유학까지 다녀왔다.


가난은 싫었지만, 가난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게도 삶의 의욕이 무너지는 순간은 있었다. 목표가 사라졌던 순간이다.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달렸건만 막상 다다르고 보니 이상과 현실은 달랐고 순식간에 목표는 사라지고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나답지 않게 현실과 타협해 보려 아등바등 애써 보기도 했지만, 생각은 돌고 돌아 결국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역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집쟁이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엄마도 내 고집에 학을 뗀 것이다.


나를 찾지 못하던 어느 혼란스러웠던 시간에는 모든 것들이 멈춰버렸다. 웃을 수 없었고, 누릴 수 없었고, 계획할 수 없었고, 누군가와 마주할 수도 없었다. 무기력함에 종일 잠만 쏟아졌다.

그러니 직장을 때려치우고 계획에도 없던 유학을 가지 않았던가. 절박했던 나는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었고 일본에서 살아생전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다. 그제야 현아가 돈 없이는 유학을 갈 수 없다고 말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용감했으나 지혜롭지는 못했다. 좀 더 알아보고 갔어야 했다. 무작정 밀어붙였으니, 고생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일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고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학 때의 경험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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