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해주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다. 아버지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는 가정의 불화로 이어졌고, 가정의 불화는 해주의 반항심을 부추겼다.
6학년 때 내 일기장에는 놀고먹는 이야기들만 가득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해주는 달랐다. 해주의 일기장에는 조숙했던 사춘기 소녀의 고민과 반항심이 가득했다. 해주는 요란하거나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세상을 거스르는 아이였다.
중학교 국어 시간. 해주는 총각 선생에게 교과서로 뺨을 맞을 적이 있었다.
해주는 당시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야!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려! 어떻게 여학생 뺨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후려갈길 수가 있어?"
"그런데, 왜 맞은 거야?"
"아니, 그때 본문에 시가 나왔어. 시가 나오면 시를 감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 거 아냐? 나는 지은이가 시를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아주 궁금했거든. 근데, 맨날 은유법이 어떻고, 비유법이 어떻고 하면서 빨간 줄 긋고, 별표 친 것만 외우라는 거지. '이것은 시험에 나오고, 저것은 안 나온다.' 그러면서 주입식 교육만 하잖아. 그날따라 나는 그게 너무 화가 나는 거야."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갑자기 화가 났어?"
"그동안 불만이 계속 쌓였던 거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교과서를 찢어버렸어."
"헐..."
"아니! 내가 좀 과했다고 쳐!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무식하게 팰 수가 있냐고. 내가 그 선생한테 책으로 뺨을 몇 대를 맞은 줄 알아? 아우! 생각만 해도 끔찍해. 아직도 치가 떨려. 그날의 모욕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야."
"야! 요즘 애들 그렇게 때리면 난리가 날 텐데. 그때는 선생들이 좀 무식하게 때렸지."
국민학교 2학년. 마냥 해맑은 코흘리개 시절. 해주는 첫사랑을 시작했다. 해주는 뭐든 남들보다 한 발 앞서면서도 다른 삶을 추구했다.
훗날 해주는 첫사랑과 결혼했다. 해주의 첫사랑은 연석이었고 연석의 첫사랑도 해주였다. 첫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길고 긴 인연의 실타래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둘을 '앤과 길버트'라 불렀다.
앤과 길버트는 결혼식도 남달랐다. 스몰웨딩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스몰웨딩을 실천했고, 짧은 이브닝드레스를 구입해 자기 집 시골 마당에서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결혼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길버트는 평상복 차림이었다. 촬영은 셀프 촬영으로 카메라를 앞에 세워두고 의도적으로 뻣뻣한 자세로 찍는다. 그리고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는다.
해주는 혼인신고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아들이 태어나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기념일 사진도 다 큰 아들이 사진 찍기를 거부하면서 중단되었다.
해주는 파주 시골집에서 야채를 키우고, 자연을 벗 삼으며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았다. 어린 아들은 숲 유치원을 다니며 자연에서 뛰놀며 자랐다. 해주의 공교육 알레르기는 여전했다. 이후로도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며 소신 있는 반항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이는 해주와 달랐다. 숲과 새와 동물 친구들보다 사람 친구들을 더 좋아했고, 축구와 농구를 좋아했다. 해주의 아들은 친구들이 많은 일반 학교 진학을 원했다. 해주는 아들을 위해 일산 도심으로 이사를 했다. 제주도에 살아보겠다며 내려간 적도 있었지만 녹록지 않았던 제주살이는 한달살이로 끝이 났다.
파주에서나 제주에서나 자기 손으로 채소를 키워 먹던 친구다. 남들은 부지런하다고 말하지만, 먹을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참 피곤하게 사는 친구였다.
토토 할머니도 그렇다. 쓸데없이 일을 만들어서 몸을 피곤하게 만든다. 둘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래서 통한 걸까? 토토 할머니의 항아리 화분을 가져간 친구도 바로 해주였다.
해주가 주문한 테이블이 완성되었다.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덕분에 경험치가 쌓였다. 매일 고도화로 뿌듯해하던 일본 유학 시절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다.
뜻한 바를 이루고 의기양양하게 해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탁 다 만들어 놨어. 언제 가져갈 거야?"
"어머! 진짜? 고마워~~ 아이 좋아. 주말에 가지러 갈게."
"그냥 화물 택배로 보내면 안 되겠니? 반조립이라서 포장도 쉬운데."
"아니야. 친구 얼굴도 볼 겸. 직접 가지러 갈게. 전해 줄 것도 있고."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보는 얼굴. 해주는 다이어트를 했는지 그사이 얼굴이 핼쑥해졌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생머리는 단발로 싹둑 잘라 파마하고, 선크림 없이 밭을 누비느라 검게 그을렸던 얼굴은 어딜 가고 이젠 뽀얀 도시 아줌마가 다 되었다.
오랜만에 본 해주는 할 말이 많다.
"있잖아. 그 소식 들었어? 은식이가 암이래."
"은식이가? 진짜? 어머! 어떻게 해? 이 나이에 벌써 암이야?"
"야! 젊다고 암에 안 걸리는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너무 이르다. 뭐 때문에, 암에 걸린 거야?"
"걔가 원래 술 담배를 많이 했어."
"그래? 무슨 암인데?"
"위암이래."
"술 담배를 많이 하면 위암에 걸려?"
"몰라. 그런가 봐! 아무튼, 술 담배는 만병의 근원이야."
"그렇다 치고, 야... 그나저나 은식이 불쌍해서 어떻게 하니?"
"그러게 말이야. 애들도 다들 깜짝 놀라더라."
"너 그거 알아? 서문이 제주도에 살았었데."
"서문이가 제주도에서 살았다고?"
"어! 내가 제주도에서 한 달 살다가 올라왔다고 하니까. 자기도 제주도에서 스테이 하다가 그만두고 올라왔다고 하더라."
"그러면, 서문이는 지금 뭐 하고 살아?"
"야! 걔 래퍼 됐잖아."
"응? 래퍼? 걔가? 헐... 진짜 의외인데? 공부만 하던 하얀 얼굴의 부잣집 도련님이 래퍼가 됐다고?"
"나도 처음에 들었을 때 완전 의외였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서문이는 내 로망을 다 이루고 사는 거 같아서 부럽더라."
"네 로망이 뭔데?"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일. 서문이 요즘 학교에서 방황하는 애들한테 랩 가르치고, 제주도에 남방 돌고래를 풀어줘야 한다고 노래 만들어서 SNS에 올리고 그러더라."
"이야~ 신세계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저번에 베드로가 다녀갔다면서?"
"네가 그럴 어떻게 알아?"
"베드로가 알려줬지!"
"별 걸 다 안다. 베드로가 되게 풀이 죽어 있었어. 안 됐더라고. 그래서 내가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줬지."
"베드로 요즘 뭐 하고 지내는 줄 알아?"
"몰라. 그 뒤로 연락 없어.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진짜 연락이 없네? 걔는 요즘 뭐 하고 지내?"
"옛날에 다니던 회사에 다시 들어갔다더라."
"응? 죽어도 싫다고 그랬는데?"
"일부러 들어간 거래."
"왜?"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보겠다고. 너한테 영향 많이 받았다고 그러더라."
"그래? 나는 자기 하고 싶은 거 찾으라고 했는데?"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지. 그리고, 나름의 계획이 있겠지. 아무튼, 활기차게 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야! 너는 뭘 그렇게 모르는 게 없니? 조용히 사는 것 같은데 정보가 빨라. 되게 도망치고 싶어 하고 반항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항상 남들보다 앞서간다니깐. 참 신기한 애야!"
"나는 반항심도 많기만 호기심도 많거든."
"길버트는 잘 지내니?"
"응. 잘 지내고 있지. 예전에 다니던 회사로 다시 들어갔어."
"걔도 참! 순둥순둥한 것이. 마누라 말을 잘 들어서 예뻐. 결혼 참 잘했다!"
"그런가? 네 남편도 순하잖아."
"음... 우리 남편은 순하긴 한데 좀 답답한 면이 있지...""어우~ 야! 다 똑같아. 우리 남편도 그래."
"그래?"
해주는 집으로 가기 전 차에서 종이 가방을 꺼내 와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고마워서 주는 선물인데. 별건 아니고. 부끄러우니까 나 가면 봐!"
"그래, 고마워! 근데 뭘 또 부끄럽데?"
"아니야! 나 원래 부끄러움 많이 타잖아."
해주가 가고 종이 가방을 열어 보았다. 조그맣고 길쭉한 글라스락 두 개가 노끈으로 예쁘게 묶여있었다. 뚜껑에는 '시골 된장', '고춧가루'라고 쓰여있었다. 도심에 사는 애가 직접 담갔거나 재배한 것은 아닐 텐데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걸까? 도시에 살아도 시골의 것들을 공수해다 먹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는 친구다. 어딜 가든 불편함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실천하는 해주는 어쩌면 자신의 로망을 이미 충분히 실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