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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부고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by 온벼리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뜻밖의 부고


출근 전인데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린다. 무음으로 바꾸고 화면에 뜨는 발신자의 이름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전화기를 침대 위에 던져 버렸다.

"안 받으면 그만둘 것이지. 자기가 언제부터 나랑 친했다고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짜증 나게?"

'나영민'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만 다섯 통이다. 전화를 받지 않았더니, 이번엔 문자 알림이 '띠링'하고 울린다.

(지아야, 아빠가 폐암이래. 빨리 전화 좀 받아 봐! 아니면 네가 전화를 하든가)

철천지원수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아빠가 왜 폐암이야?"

"몸이 안 좋다고 올라오셔서 병원에 왔는데... 폐암인 것 같다고 정밀 검사받으라고 해서 지금 입원 준비하고 있어."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왜 생뚱맞게 폐암이냐고!"

"아빠가 예전부터 기침 많이 했잖아! 담배 자주 피워서 그런 거겠지. 아파도 말도 않고, 참고 살면서 병을 키운 거고."

"헐... 참. 진짜 어지간하다. 몸 상태는 어떤데?"

"웬만해서는 병원 가겠다고 말하는 양반이 아니잖아. 본인이 느끼기에도 상태가 심각하니까 병원 가겠다고 올라오신 거지. 보기에도 많이 안 좋아 보여."

"아니! 왜! 그 지경이 되도록 참고 살았데? 왜 여태 병원을 안 갔냐고!"

"나도 예전에 아빠 기침하는 거 보고 병원 좀 가보라고 했었거든. 근데, 아빠가 뭐라고 한 줄 알아? '병원은 죽을 때나 가는 거야 인마!' 그러시던데 뭘."

"병원비 많이 나온다고 안 간 건 아니고?"

"그런 것도 있겠지."

"야! 요즘은 암 진단받으면 치료비도 다 돌려주는데. 병원비 많이 나올까 봐 안 간다는 게 말이 되니?"

"노인네가 그런 걸 알겠니? 맨날 아파서 죽는다는 소리만 할 줄 알지. 병원 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양반 아니니."

"그래서, 의사가 뭐래?"

"지금 봐서는 거의 100% 암이 확실하데. 조직 검사 결과 나오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에이! 미련한 양반. 어떻게 그렇게 될 때까지 참고 살지? 평생을 고집쟁이로 살더니 끝까지 힘들게 하네!"

"병원에는 안 올 거야?"

"안 가! 내가 거길 왜 가?"

"야! 그래도 아빠가 아프신데. 한 번은 와 봐야 할 거 아냐!"

"됐어! 가족이랑 인연 끊고 살기로 한 거 알면서 뭘 물어? 너도 연락하지 마! 끊어!!!"

"지아야! 그래도..."

말도 다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빠는 가정 폭력범이었다. 오빠는 아빠가 나를 예뻐했다고 말하지만 때리지 않은 것이 예뻐한 거라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가난에 찌들어 살던 어린 시절이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했던 아빠는 매일 술에 절어 하루가 멀다고 엄마와 싸움을 벌였다.

아빠는 또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오빠와 남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였고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아빠의 폭력에 맞서지 않았다면 세 남매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을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아빠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했다. 심지어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들이대기까지 했다. 엄마 또한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엄마도 가엾을 리 없다.

나는 아빠의 사랑을 바란 적 없다. 하지만 아무리 씩씩하고 당돌한 꼬마라도 엄마의 사랑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엄마 역시 폭력적인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런 엄마에게 사랑받기를 원했다.

겨우 네 살이었던 어린 딸을 할머니 집에 맡기고 돈벌이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오지 않았던 엄마였다. 엄마를 찾아 헤매다 길을 잃고 파출소 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가끔 꿈에서 네 살인 나는 엄마를 찾아 골목을 헤맨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골목의 미로는 끝이 없다. 밤새 길 위에서 울다 깨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상처로 남았다. 자신의 불행했던 삶을 자식에게 폭력으로 풀었던 아빠였고, 돌보지 않고 모질기까지 했던 엄마였다. 아빠에게 당한 폭력의 상처를 동생들에게 폭력으로 해소했던 오빠였고, 가족들 사이를 이간질하기를 좋아하는 동생이었다. 화해도 사과도 없었다. 나는 가족과 인연을 끊은 지 오래다.




며칠 뒤 오빠가 다시 전화했다. 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나영민 이놈은 포기하지 않고 또 문자를 보낸다.

(지아야! 아빠가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병원으로 빨리 와)

문자에 답변은 하지 않고 혼잣말만 한다.

"에이 씨! 차단해 버릴까 보다!"

.

.

다음날.

(지아야! 아빠가 이상해. 엄마가 그러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한대. 아무도 없는데 문 앞에 누가 앉아 있다고. 저놈 좀 내보내라고 자꾸 헛소리를 한대. 빨리 좀 와 봐!)

"됐다고! 안 간다고!"

(여기 서울아X병원 암병원 6011호야. 빨리 좀 와)

"쳇! 내가 가나 봐라! 근데, 이놈은 아빠한테 그렇게 두들겨 맞고 자랐으면서. 무슨 애정이 남았다고 이렇게 호들갑이지?"

.

.

다음날.

(지아야. 아빠 위독하셔. 빨리 와!)

"젠장! 안 간다니까!"

.

.

다음 날 새벽.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침대를 울린다. 또 나영민이다.

"아... 왜 또 새벽부터 전화질이야?"

부배중 전화 알림이 뜨고, 연달아 문자 알림이 뜬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이미 잠은 달아났다. 결국 일어나 문자를 확인했다.

(지아야. 아빠 돌아가셨어.)

"......"


죽어도 나를 찾지 말라 했더니... 아빠가 정말 돌아가셨다.


우리 가족은 한 번도 서로를 축하하거나, 위로하거나, 울어주거나, 걱정하거나, 미안해하는 식의 감정 따위를 공유해 본 경험이 없다. 아빠의 죽음 앞에서 울고불고 '미안하다.' '고마웠다. ' '사랑한다.'는 식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설사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그 꼴은 보기도 싫고,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싫다. 정말 가기 싫었다. 하지만 고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을 깨웠다.

"자기야! 일어나 봐!"

"어! 왜? 몇 시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아빠 돌아가셨데!"

"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방금 연락받았어."

"엊그제 병원에 계신다고 그러지 않았어? 아니, 근데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나도 몰라. 상태가 많이 안 좋았나 봐. 위독하시다고 그랬었거든."

"근데 왜 여태 안 가봤어?"

"알면서 뭘 물어?"

"아니, 지아야! 그래도 너희 아빠잖아."

괜히 남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기 싫은 걸 어떻게 하냐고!!!"

"진정하고, 지아야! 지금 안 가면 후회할 거야. 지금이라도 가 보자!"

"......"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흐느끼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긴 한숨을 내쉬고 담담하게 물었다.

"거기 어디라고?"


내가 기억하는 살아있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은 벽제에서였다. 아빠는 폐교를 목공 작업실로 사용하며 홀로 지내고 있었다. 평생을 자기 고집대로만 살더니 늙어서도 목공을 하겠다며 벽제까지 내려갔다. 폐교를 관리하는 조건으로 월세도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보수도 개조도 없이 교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아무리 작은 학교였다 할지라도 혼자 지내기엔 넓고, 휑했다.

"아빠! 화장실도 재래식이잖아. 귀신 나올 것 같아."

"귀신은 무슨."

"안 무서워?"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인마? 아빠는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워!"

"아니! 뭘 얼마나 벌겠다고 여기까지 내려와서 이러고 살아?"

"아빠는 여기가 편해."

벽제까지 내려가 혼자 살겠다며 고집부리는 아빠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병원이 아닌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빠는 수의를 입고 새하얀 무명천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새까맣던 얼굴은 분칠을 했는지 뽀얀 것이 낯설다.

아무도 아빠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때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오빠였다. 오빠는 아빠의 손을 잡고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 죄송해요.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속 많이 썩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으어어 엉~~"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고, 나와 남동생은 그대로 얼어붙어 멀찍이 서 있었다. 엄마가 나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개와 고양이의 장례식에서는 원 없이 울고 마지막 인사도 잘만 했던 나인데, 아빠의 죽음 앞에서는 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만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인가. 그저 냉정하고 담담하게 보내주기로 했다.

"음...... 음...... 아빠...... 잘 가!"

나는 울지 않았다. 남동생도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할 뿐 울지 않았다. 울고 싶지 않았다. 이리 허무하게 갈 거면서 가족들은 왜 그리 못살게 굴었는지. 불쌍한 삶을 살았던 아빠를 이해해 보려 노력한 적도 있었지만 내 고통이 더 컸기에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일말의 정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너무도 애절하게 울어대는 오빠 때문이었을까?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장례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장례식장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모들이었다. 우리 가족과 다르게 감성이 풍부하고 공감 능력이 유별날 정도로 탁월한 고모들은 장례식장 1층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빈소로 먼저 들어온 첫째 고모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이고~~ 오빠~~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인사도 없이 갑자기 가면 어쩌라고~~~"

어느 집 장례식장에서도 본 적 없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큰고모가 뒹굴자 따라 들어온 둘째 고모도 드러누워 아이처럼 울어댄다.

"아이고~~~ 아이고~~~ 오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쩌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변 사람들 반응을 살폈다. 그때 남동생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아... 저 눈치 없는 새끼를 어쩌면 좋지? 저 새끼는 소시오패스가 분명해! 내가 어릴 적부터 알아봤어. 아빠한테 인사할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더니.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지?'

어처구니가 없다. 한숨밖에 나오질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시원하게 뒤통수를 후려갈겼을 텐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제가 필요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눈으로 기를 모아 백만 볼트의 레이저 광선을 쏘아대며 '너! 죽고 싶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놈이 눈치를 채고 움찔하더니 커다란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그제야 표정 관리를 한다.


자정이 지났다. 조문객들은 가고 친척들만 남았다. 남동생과 마주 앉아 육개장을 안주 삼아 소주를 한 잔씩 따랐다. 남동생이 말했다.

"아까 보니까. 누나 울던데?"

"......"

"형이랑 나랑 누나 오기 전에 내기했거든. 나는 누나가 안 울 거라고 했지, 누나도 소시오패스 아닌가?"

"미친 새끼. 그만해라."

"있잖아! 근데 나는 진짜 소시오패스인가 봐!"

"어! 진작부터 알아봤어."

"나는 왜 아빠가 돌아가셨는데도 하나도 슬프지 않지?"

"나도 안 슬퍼."

"근데, 아까 왜 울었어?"

"글쎄... 몰라 나도."

가족들은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일까? 그들은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래! 장례식 끝나면, 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

오늘따라 소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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