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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목공방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by 온벼리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이상한 목공방


아빠의 장례식에 다녀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잘 지냈어?"

"나야 뭐! 항상 잘 지내지!"

"나는 어떻게 지냈는지 안 물어봐?"

"글쎄,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그래, 나는 맨날 똑같으니까. 근데, 오빠 안 보고 싶었냐?"

"뭐지? 이 닭살 멘트는? 미친 거 아니야?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였지? 야! 정신 차려! 갑자기 왜 이래? 죽을 때 다 됐어?"

나는 사실, 오빠가 변했다는 것을 눈치는 채고 있었다. 평생 기도 못 펴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백수로 은둔형 외톨이로 노총각으로 늙어가던 오빠였다. 차려주는 밥만 축내며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하는 기생충 같던 놈이 아빠 장례식에서는 제법 장남 같은 듬직함을 보였고, 아빠를 보내는 마음가짐 또한 가족 누구보다도 어른스러웠다. 먼저 용서하고 손 내밀던 성숙함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개과천선했다 볼 수는 없어도 달라진 것은 확실했다.

"지아야! 내가 어릴 적에 많이 때렸던 거 미안해."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는데... 이제 용기 내서 말하는 거지. 미안해."

"됐어! 바보 같은 오빠지만, 너도 피해자니까 밉지는 않았어."

"그랬어? 고마워! 그리고, 지아야!"

"자꾸 왜!!"

"우리 이제 얼굴 보면서 살면 안 될까?"

"뭐래? 왜 자꾸 이상한 말만 하지? 너 진짜 어디 아프니?"

"아픈 건 아니고, 얼마 전에 엄마랑 둘이 얘기해 봤는데, 내가 엄마한테 그랬어.

(엄마! 지아가 집에 안 오는 건 엄마 때문인 거 알지?) 그랬더니, 엄마가 안다고 그러더라?"

"그래?"

"그래서 또 그랬지.

(저번에 지아가 엄마한테 자기 어렸을 때 힘들고 서운했던 거 다 이야기했는데, 그때 엄마가 사과도 하지 않고, 별거 아닌 일 가지고 왜 아직 마음에 담고 산다고 면박 주고 무시하고 막 화내고 그랬잖아!) 그렇게 말했거든.

"그래?"

"근데, 너만 그런 건 아니잖아. 영수나 나나 우리 다 마찬가지지. 그래서 내가 또 그랬어.

(엄마! 나도 마찬가지야. 어릴 적에 엄마 아빠한테 받은 상처. 나도 사과받고 싶어! 근데,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잖아. 그러니까 엄마라도 사과해 줬으면 좋겠어! 자식이 용기 내서 말하면 엄마도 잘못은 인정하고 사과해야지. 아직도 그런 태도를 보이니까 지아가 집에 안 오는 거잖아!)라고 말했어."

"헐...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야! 너는 오빠를 뭐로 보는 거니?"

"바보? 찐따? 쪼다? 등신? 머저리? 아! 기생충?"

"에이 씨! 진짜!! 내가 너한테 지은 죄가 크니까 욕해도 뭐라 할 말은 없는데... 아무튼,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엄마도 그런 거 같다고 인정했어."

"진짜?? 엄마가 자기 잘못이라고 인정했다고?"

"어!! 엄마도 자기 때문에 네가 안 오는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대."

"헐... 천지가 개벽하겠는데?"

"그러니까 지아야! 우리 얼굴 좀 보고 살자! 나도 내 동생 얼굴 보면서 살고 싶다."

"어우~~~ 닭살!! 왜 자꾸 안 하던 소리를 하고 그래?"

"아빠 돌아가시고 느낀 게 많아 나도."

"그래? 그래서, 동생들 두들겨 팬 것도 많이 반성했어?"

"그럼, 그동안 못되게 굴어서 진짜 미안해! 용서해 줄래? 오빠가 잘못했다. 지아야!"

"뭐지? 이 익숙지 않은 그림은? 왜 이렇게 불편하지?"

어린 시절 오빠의 폭력에 시달린 세월만 최소 십 년은 넘는다. 자기 딴엔 대단한 용기라 말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겨우 그깟 말 한마디로 탕감해 줄 죄는 아니다. 엄마 또한 마찬가지다. 사과를 한 것도 아니고, 겨우 자기 잘못을 인정한 것뿐이다. 정말 사과를 할 것인지도 두고 봐야 알 일이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온몸 구석구석이 근질거렸다. 단단한 돌덩이가 겨우 몇 마디 말에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흐물거리는 것 같았다. 어이없고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이렇게 풀릴 감정은 아닌데 말이다.

"이번 연휴 때는 집으로 올 거지?"

"글쎄...... 생각 좀 해 볼게."




늦은 아침.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눈 부시다. 공방 고양이들은 아침이면 마당으로 나가 자유를 즐긴다. 귀티와 꼬맹이는 공방 앞 주차된 차 위에서 뒹굴거리는 중이다. 하지 말라는 짓은 꼭 둘이 세트로 한다. 뒹군 흔적과 발자국이 차 위에 그대로 남았다. 괜히 차주에게 미안해진다. 사이좋게 놀다가도 잡기 놀이를 시작하면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가 없다. 점점 치열해져 결국 하악질로 끝이 난다. 마틸다는 뭐가 그리 좋은지 언니 오빠 구경에 바쁘다.


처음 목공방을 시작할 때 목수가 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목공 작가였다. 하지만 목공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문받은 물건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돈을 벌어야 공방도 유지할 수 있고, 고양이도 먹여 살릴 수 있다. 공방을 개업한 지 벌써 9년 차다. 대단한 매출은 아니라도 공방을 유지하고, 고양이들 밥 먹일 정도는 번다. 오븐렉이 유행할 때는 주문이 쇄도해 짭짤한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디저트 유행 시즌이 지나자, 오븐렉 주문도 뜸해졌다.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조각을 해 오고 있었다. 키우는 아이들을 캐릭터로 디자인해 조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고양이 목공 작가'라 부르기 시작했다. 반려동물 조각을 의뢰하기도 했다. 주문 제작 목조각은 두 가지 단점이 있다. 제작 기간이 길다는 것과, 시간과 노력에 비해 단가가 싸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 주문 들어온 가구를 먼저 만들고 여유가 생길 때 조각을 한다. 주문이 많으면 목조각은 계속 뒤로 밀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기만의 특별한 작품을 얻기 위해 기꺼이 기다려 준다.

목공 작가라 불리는 것도 아직은 부끄럽다. 뭐든 경지에 올라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 꾸준하고 지속적인 활동으로 나를 알려야 한다.


요즘은 주문도 다양하게 들어온다. 캣타워, 스윙도어, 오븐렉, 테이블, 수납장, 길고양이 급식소, 올리브나무 도마, 입간판, 반려동물 유품함, 주방용품, 장신구 소품까지... 그리고, 드라마 소품 제작 의뢰도 들어왔다. 어느 드라마 미술팀에서 연락이 왔다. 열두 살 아이가 깎은 투박하고, 거칠고, 오래된 느낌의 세 잎 클로버 펜던트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제작팀은 드라마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기밀 유지 계약서까지 써 달라 했다. 납품 이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내가 만든 목조각 펜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제야 드라마 이름을 알게 되었다.


조각은 무르고, 가볍고, 자유자재로 모양낼 수 있는 마티카 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깎는 방법이나 노하우는 없다. 그저 감각으로 깎을 뿐이다. 그러니 수강생에게 가르치기도 어렵다. 완전히 매끄러운 것보다는 약간의 투박함과 나무의 질감을 살려야 멋스럽다. 물감으로 생명력을 더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완성된다.


나무는 아무리 만져도 질리지 않는다. 다양한 창작이 가능한 재료다. 목공을 하면 잡념도 사라진다. 나무는 재료 그 자체만으로도 편안함을 준다.


누군가 물었다. '언제까지 목공방을 할 생각이냐고, 그리고, 언제까지 길고양이를 돌 볼 생각이냐고.'

나는 언제까지 목공을 할 수 있을까? 길고양이와의 인연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알 수 없다. 그래도, 대답해 보자면 '공방 문을 열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녀석이 있을 때까지?'


남편은 목공방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는다. 처음 대출받아 시작할 때는 얼마 못 가 접을까 걱정했다지만 이제는 초보 목공 작가를 응원하는 든든한 1호 팬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벌어, 어떻게 공방을 유지하냐며 걱정인데, 걱정할 필요 없다. 망하지 않고 이렇게 보란 듯이 9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아빠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에게 물었다.

"있잖아. 우리는 자식이 없으니까 한 명이 먼저 죽으면, 남은 한 명은 불쌍해질 것 같지 않아?"

"그래? 그럼, 둘이 동시에 죽을 까? 한날한시에 죽는 거 어때?"

"아니야! 내가 먼저 죽을래. 자기는 내 장례식 깔끔하게 치르고 와!"

"그럼 나는?"

"그러니까 너는 불쌍해진다는 거지."

"치! 그러면, 기왕 먼저 갈 거. 재혼이라도 허락해 주고 가!"

"안 되겠다. 내 장례식은 포기할게. 너는 지금 죽자!"

"크크크... 싫은데!!"




폴은 다낭성 신부전 투병 중이다. 요도 폐색 수술도 받았다. 편식쟁이 마이콜은 뇌전증을 앓고 있다. 뇌전증 부작용으로 물건과 간식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발작을 일으키면 눈물을 참아가며 지켜봐야 한다. 잘못해도 예전처럼 혼낼 수도 없다. 녀석들이 중병에 걸리면 마음도 아프지만 가계 사정도 어려워진다. 집이나 공방이나 식구들이 많으니, 하루도 조용할 날 없고, 심심할 틈도 없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관심 없던 내게 공방을 차린 후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그들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나를 찾는 것이다.


하얀 눈 소복이 쌓이던 겨울날. 아침부터 빗자루 들고나와 눈싸움만 실컷 하던 일곱 살, 여섯 살 남매에게 핫초코를 타 주었다. 남매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방을 찾아왔다.

열아홉 살 많은 윗집 도배 사장과 커피 수다로 아침을 시작했고, 일흔셋의 보수주의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다.

오랜 친구들이 찾아오는 사랑방이 되기도 하고, 폐품을 맡기고 가는 여든 살 할머니에게 길고양이 먹일 캔과 사료를 나누어 주고 떡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장애가 있는 가족들을 만나 편견을 지우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과 동네 동지들도 여럿 알게 되었다. 공방 마스코트 귀티와 꼬맹이를 만나고, 길고양이들과의 인연도 이어지고 있다.

꼭 좋은 인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책임한 놈, 미친놈, 이상한 놈들도 있다. 오지랖으로 고양이를 구조해 놓고 책임감 없이 떠넘기는 놈, 죽은 새끼 고양이를 버리고 가는 놈, 키우기 힘들다며 공방 앞에 반려동물을 유기하고 가는 놈도 있었다. SNS에는 선한 후원자들도 있지만, 가끔 고양이를 혐오하며 구조 영상에 댓글 테러를 다는 미친놈도 있다.


아! 학교 끝나면 찾아와 가방 던져두고, 과자 먹고, 수다 떨고, 고양이와 놀다가는 초등학생도 있고, 간식 들고 찾아와 귀티와 꼬맹이를 안아주는 이웃도 있다.


그들은 대부분 고양이를 통해 목공방에 발을 들였다. 고양이는 그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큐피드가 되었다.

사회성 부족하고 사람 만날 일 없던 내가 고양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간다.


사람들은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아직도 단방에 알아보지 못한다. 못 벌고 많이 쓰는 목공방을 걱정하기도 한다. 곧 망할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망하지 않는다. 제 일은 제쳐두고 맨날 고양이만 따라다니느라 바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이상한 목공방이라고 부른다.


나의 목표는 돈이 아니다. 돈은 수단일 뿐 적당히 벌고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나의 목표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대단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인생을 불사르지 않기로 했다. 물론,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고, 내가 없는 세상은 내 것도 아니다.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다. 별스럽지 않고 어제와 같은 지루한 날의 연속일 수도 있다. 세상살이는 힘들고, 사람과의 관계는 어렵다. 그러나, 힘들다고 삶이 행복하지 않다 말하지는 말자. 대단치 않은 날이 반복되고, 어리석은 선택에 후회하더라도 괜찮다.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다. 나는 나의 선택을 존중하며 살 것이다. 그렇게 살기로 했다.

게으르고 행복한 사람으로, 이웃과 소통하며 고양이를 돌보는 이상한 목공방 사장으로, 고양이 목공 작가로 살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멋지게 조각해 보려 한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장기하 - 별일 없이 산다)

https://www.youtube.com/watch?v=CMnCQS2AW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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