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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E열 Jun 12. 2020

어머니와 관객의 처절한 몸부림

영화 <마더>

어머니와 관객의 처절한 몸부림

<마더>, 봉준호 감독, 2019.



한 아줌마가 외딴 밭에서 춤을 춘다. 웃음을 지었다가도 울상을 짓는다. 그렇게 한참을 복잡한 표정으로 춤을 추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의 감정은 폭발하지도, 넘치지도 않았지만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 보인다. 관객은 영문 모를 춤과 함께 이상하게도 강렬한 오프닝을 마주한다.





먼저 수많은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어머니’는 보통 자식에게 헌신적이었다. 모성애는 숭고하며 아름다웠다. 계모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많은 ‘어머니’는 희생하는 위치에 서서 감동을 주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끔찍하게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봉준호의 작품이 그렇듯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긴다.


<마더>는 초반부터 스릴러 요소와 추리 요소, 드라마 요소를 모두 갖추고 시작한다. 살인 용의자 아들의 대답은 오락가락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무고를 위해 행동을 시작한다. 어머니는 수시로 아들에게 한약을 먹이지만 그와 동시에 아들은 소변을 본다. 어머니의 충고도, 노력도, 사랑도 아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봉준호 감독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행동이 끔찍한 결과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며 충격을 주고, 이어 머릿속을 뒤흔든다.





관객은 자신의 어머니를 투영한다. 희생으로 인해 모두가 악으로 치닫는 지점에서 보편적 가치인 모성애와 살인이라는 악행이 충돌한다. 관객은 어머니를 이해한다. 끔찍한 악행, 또 그 악행에 공감한 관객은 불쾌감과 죄책감을 맛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력한 용의자가 새로 생겨 아들이 풀려나게 된다. 영화는 관객을 지독하게 괴롭힌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을 감옥에 보냈다는 죄책감과 불쾌감은 관객과 어머니 모두의 몫이다. 


미안한 감정이 큰 관객은 같이 눈물을 흘린다. 진실을 은폐했다는 사실이 불쾌한 관객은 어머니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석방된 아들은 두부를 먹지만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죄를 뒤집어쓴 사람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사과이다.



어머니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은 바로 아들이다. 수시로 말을 바꾸거나 방금 저지른 행동을 부정해버리는 행동은 아들이 어떤 캐릭터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기억하지만 아들은 대부분 잊어버린다. 아들은 행동을 저질렀을 당시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별개의 인물로 바라본다. 그 효과는 도덕적 판단과 책임에 대한 회피이다. 그는 사건과 거리를 둔 피의자이다.


이와 다르게 다섯 살 적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어머니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자기 나름대로 시체를 옥상에 올린 이유를 말할 땐 정말 추측을 한 것인지, 혹은 추측의 양식을 빌려 자신을 변호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런 걸 흘리고 다니면 어떡해."라는 아들의 대사는 다섯 살 적 기억과 더불어 어머니와 관객을 심리적으로 무너뜨린다. 아들이 매번 어머니에게 적대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포심이 더 솟아날 뿐이다.




유일한 목격자인 고물상을 살해하는 장면은 오프닝과 이어진다. 고물상을 살해한 어머니는 방화를 저지른 후 밭 한가운데에서 두 손을 내려본다. 그리고 엔딩 씬에서, 어머니는 허벅지에 침을 놓은 후 다시 춤을 춘다.


순식간에 도덕적 판단에서 벗어나는 아들과 달리 어머니는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다. 두 번째 춤은 안 좋은 것들을 잊게 해주는 침과 함께한다. 첫 춤 때는 돌이킬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옳은 선택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사실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기억을 지우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




<살인의 추억>처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도, <기생충>처럼 간접적으로 비판하지도 않지만 <마더>를 본 관객의 마음은 두 작품보다 훨씬 울렁거린다. 아무래도 가족 같은 소재와 개인의 도덕적 판단 등의 주제가 시너지를 일으킨 듯하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본 후 불편함, 불쾌감을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명작,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작으로 남았다. <마더>는 관객에게 특히 공격적이면서 혼란스러운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감정을 노려 영화를 찍었다. 다시 볼 때마다 바뀌는 감정은 그가 제대로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봉준호와 김혜자의 노력은 삶의 불확실성과 두 가치의 부조화, 그로 인한 복잡한 감정들을 완벽하게 스크린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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