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리 Oct 18. 2021

한국의 패션디자이너, 내가 그들을 주목하는 이유

내게 패션은 전부다

당신에게 패션은 어떤 존재인가? 의식주는 생활의 필수 영역이지만, 사람마다 그에 매기는 경중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월급의 절반을 옷에 투자하고, 또 다른 사람은 먹는 즐거움으로 산다. 이 글을 쓰는 나는 10대 시절부터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늘, 가진 돈과 시간 대부분을 패션에 투자하던, 한마디로 패션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이다.


지하상가부터 백화점, 편집샵까지 쏘다니며 의류매장을 구경하고 패션잡지 읽는데 시간을 투자해왔다. 중학교 1학년 때 반에서 제일 먼저 라이더재킷을 사입을 정도로 스타일이 확고했고 용돈의 대부분을 옷 사입고 잡지 사는데 썼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패션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패션 관련 행사란 행사는 죄다 쫓아다니다 잡지에서나 보던 서울패션위크 쇼를 보러가게 됐다.


잡지로만 접하던 런웨이를 직접 봤을 때의 쾌감이란. 게다가 음악은 패션만큼 돈과 시간을 써온 분야이기도 했으니 음악과 패션이 함께 있는 패션쇼는 날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DDP라는 공간이 주는 힘도 있었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서울패션위크를 DDP에서 했었다보니, 첫 패션위크를 DDP에서 저접한 셈이다.


해마다, 어떻게 기회가 닿다 보니 10월에 열리는 이듬해의 SS시즌 쇼는 매 해 한 브랜드라도 꼭 볼 수 있었고 한번은 셀럽들만 앉는다는 프런트 로(패션쇼장의 맨 첫 줄)도 앉아 봤다. 어떤 시즌은 우연한 기회로 서울패션위크 쇼 헬퍼도 해보고, 17SS시즌즈음부터는 시즌마다 쇼장 밖 스트리트의 패션피플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을 했었다. 찍다 보니 다른 패션위크의 스트리트패션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막학기였던 18SS시즌은 밀라노에 가서 밀란패션위크의 스트리트패션을 사진으로 담아오기도 했다. 밀란에 다녀오고 나서 참석한 서울패션위크 18SS시즌, 그날의 마지막 쇼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패션위크에서 헬퍼도 해보고 촬영도 해보고 셀럽만 앉는다는 프런트로에도 앉아보았으니 이제 남은건 런웨이 마지막에 인사하러 등장하는건가. 어쩌면 서울패션위크에 서는 패션디자이너, 그게 우리, 패션전공자들의 미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졸업쇼를 막 끝내고, 졸업 후의 진로를 설정하던 학기였다보니 더더욱 그렇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막학기는 막막해서 막학기라고, 막막한 상황에서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에 졸업쇼 의상을 모두 손수 만들었다보니 더더욱 디자이너에 대한 흥미가 높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어릴때부터 항상 꿈은 컸다. 패션으로 진로를 정했을 때도 패션의 어느 영역에서든 업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히, 디자이너를 하더라도 서울패션위크에 서는 디자이너를 하고싶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서울패션위크 위에는 세계 4대패션위크가 있다.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패션위크.  4 패션위크에서 나오는 디자인들이 트렌드가 되고  트렌드를 반영한 옷들이 각지에서 나온다. 여기까지 올라가는걸 생각하지 못한 , 4대패션위크에 서는 브랜드  국제적으로 아주 유명하고, 명품으로 인식되는 브랜드들이 다수 있어서 자신감이 살짝 부족했다.  단계씩 생각하는  성격도 한몫했고. 일단 서울쇼에서 인정받아야 해외쇼로 진출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이렇게 패션디자이너로 진로 방향을 굳힌 나지만 정작 졸업 후 생계문제에 부딪히며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게 된다. 디자이너 취업에 한두번 낙방하면서, 디자이너 다음으로 원했던, 어쩌면 디자이너보다 더 간절했던 패션기자로 눈을 돌렸고 한 번에 합격했다. 사실 졸업쇼 이전까지는 패션기자를 간절히 꿈꿨었다보니 이걸 운명처럼 여겼다. 당시 내가 최종으로 가고 싶은 회사는 BoF, WWD였지만, 한국 매체 기자가 되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매체에서 실력을 길러서 저기로 옮기게 되면, 한국시장을 잘 아는 기자라는 타이틀로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한국의 안나윈투어를 꿈꾸게 됐다.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패션업계 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중에 패션 전공자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패션 대기업 소속 뿐 아니라 중소기업부터 스타트업, 그리고 자기 브랜드를 전개하는 디자이너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내가 흥미롭게 보고, 내 미래인 양 감정이입을 하게 된 곳은 역시 크고 작은 디자이너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들이었다. 막학기때 든 그 생각 때문이었다. 저게 내 미래, 혹은 내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그 막연한 생각.


한편으로, 바이어를 포함한 다양한 인물들이 내게 한결같이 묻는 질문이 있었다.

"기자님, 추천할만한 새로운 브랜드 있어요?"  

그것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다녔던 것도 있었다. 다행히 패션위크에 대한 내 순수한 관심과 열정을 회사에서 알아봐주고는 서울패션위크, 패션코드 등의 취재를 맡겨주신 덕에 감사히 취재를 다녔다. 서울패션위크의 트레이드페어인 제너레이션넥스트서울에도 취재하러 들어가면서, 정말 서울패션위크의 단면만 봐왔다는걸 깨닫기도 했다. 이들에겐 이게 생계였구나, 하는 생각.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웠다. 글로벌 무대에서 k뷰티, k팝(특히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뜨거운 동시에, 한참 전부터 글로벌 패션계에서 k패션모델들의 행보는 참 화려했는데 사람들은 한국 패션모델들의 글로벌 행보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나마도 방송의 힘으로 조금씩 알려지는 마당이다. '유퀴즈'로 알려진 최소라, '오징어게임'의 정호연 정도가 유명하지만 더 많은 모델들이 코리안 파워를 드러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히 K패션디자이너의 활약 역시 알지 못한다. '넥스트인패션'덕분에 민주킴이 유명해졌지만 그나마도 그 프로그램에 관심 없는 사람은 모를 정도.


솔직히, 아직 K패션은 글로벌무대에서 주목받는다는 말을 하기에 블랙핑크나 방탄소년단만큼 대중화되진 않은 영역이지만, 4대패션위크나 곳곳의 영역에서 코리안파워를 드러내는 한국 디자이너, 그리고 그들의 브랜드들이 분명 있다.


인간의 삶 그리고 문화의 가장 큰 축 중 하나인 패션, 특히 k패션은 아직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나는 취재하면서 늘 아쉬웠다. 이렇게 좋은 브랜드가 한국에 많은데, 소비층이 매우 극소수라는 점.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한국의 패션브랜드도 많은데 그들에 대해 전혀 대중들은 모른다는 점. 심지어는 업계 사람들조차도 잘 모른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정부에서는 그들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그들이 자생력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이 글을 시작했다.


현재의 나는 기자를 그만뒀지만, 그럼에도 내 한국 패션디자이너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알고있는 몇몇 사람들이 내게 권한다. 유튜브를 하면 어떨까요?해도 패션브랜드를 다뤄주길 원하고, 블로그를 하겠다 하더라도 한국패션과 디자이너브랜드에 대한 소개를 내가 해주길 원한다. 흘려듣다가 문득 생각난 매체는 책이었다. 한국의 패션디자이너들을 다루는 책을 낸다면, 이들이 좀 더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을까? 이런 책을 내겠다고 하니 주변의 반응도 뜨거웠다. 기다렸다고, 다뤄줬으면 하는 브랜드가 많다고, 혹은 자기 브랜드도 소개해달라는 디자이너들도 몇 있었다.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로 했다. 한국 패션디자이너를 다루는 책을 쓰자.


지금의 내게 사람들이 꿈을 물어보면 늘 이렇게 대답한다. 한때는 한국의 안나윈투어를 꿈꿨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국의 안나윈투어는 되지 못했지만, 이 꿈에 종지부를 찍고자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글을.

작가의 이전글 관점의 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