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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May 01. 2017

따뜻한 마음을 차가운 머리로 행하는 법

피터싱어 <효율적 이타주의자>

(인도 봉사활동을 갔을 때 위생 교육을 하던 사진이다. 칫솔을 후원받아서 갔는데, 이를 처음 닦아보는 아이들도 있어서 양치하고 이에서 피가 나는 걸 보고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효용성을 높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기부를 하고 있거나 기부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것. 둘째, 이 책을 완독해야하는 이유 혹은 의지가 있을 것. 셋째,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을 것. 그만큼 그냥 끌려서 책을 집어들어서는 저자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고 책을 다 읽지 않고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상하다거나, 별로라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책을 고르면, 저 책에 대한 기회비용이 생기는거니까, 책 읽을 시간도 많지 않은데 가장 남는게 많은 책을 읽어야하지 않겠는가. (뭔가 이 책의 저자의 관점처럼 말하고 있는 것 같다....ㅋㅋ) 나의 경우엔 다행히도(?) 저 세가지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서 이 책을 주위 몇몇에게 추천(!)까지 했는데, 이 책으로 독서모임에서 토론을 하고 나선 함부로 추천했다간 욕을 먹을 수도 있겠다 싶어 조용히 그 분들에게 추천을 거두었다.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우선 기부에 대한 어떤 동기가 없이 이 책을 먼저 접하면 거부감부터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부. 남을 돕는다는 건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 이렇게 많으니까 누구를 돕는 것이 전 세계의 효용을 높일 수 있다는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구체적인 슬픔이나 고통을 마주하고 나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부터 행해지는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그런 따뜻한 마음도 차갑게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그렇기에 아직 기부를 해야할 마음의 동기가 없는 상태에서 접하면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기부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학시절 인도에 봉사활동을 다녀오고 나서다. 물론 봉사활동에서 마주했던 구체적인 풍경들도 영향이 컸지만, 봉사활동 시작 전/후에 "왜 기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국제워크캠프의 강의들이 마음에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짐했었다. 돈을 벌면 꼭 기부를 시작하자고. 그로부터 1-2년 후 취업을 한 동시에 1:1 아동후원을 시작했다. 그렇게 5-6년이 흘렀고, 이젠 관성적으로 아니 내 관성도 아닌 그냥 자동이체로 매달 돈이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기부하라"는 이 책의 내용을 접했을 때 와닿을 수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내용에 공감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가 말하는 "전 세계적 관점"에서 시작한 주장은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보다 너무 먼-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라 건너뛰어 버리고 싶었다. 토론에서는 그래서 이 책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많이 이뤄졌다. 마치 기부를 해야한다고 포교활동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거부감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책의 저자가 실제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가 아니라 학자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나의 관점과 전제를 가지고 연구를 하고 글을 쓰다보니, 현실가능성 보단 학술 연구로서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참고할만 것들이 많다. 그리고 한편으론 아직 "누군가에게 돈을 쥐어주면 그들은 그 돈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자력으로 못살아가!" 라는 주장이 많은 한국에선 이런 논의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했다. 아래는 책을 읽고 처음 쓴 리뷰다.


오랜만에 인도 봉사활동 당시 사진을 찾아봤다. 아이들과 손으로 함께 밥을 먹고,
학교 안에서 뛰어 놀았다.




1. 누구나 눈 앞에 있는 구체적 슬픔에 먼저 공감한다.  
최근 시리아의 폭탄 테러 현장에서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는 대신 아이들을 구하러 현장에 뛰어든 것이 화제가 됐다. 만약 효율적 이타주의자였다면, 그 현장의 처절함을 사진으로 담아냈을 때 시리아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가치 판단을 하기에 앞서, 눈 앞에 닥친 상황에 더 감정적인 이입을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인도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1:1 아동후원을 하고있는데, 사실 이 역시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보단, 인도 빈민가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맨발, 눈망울, 빈민가의 풍경과 같은 구체적 모습에 반응한 내 감정에 대한 결과였다. 이 책의 견해가 흥미로우면서도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던 이유다.  

2. 투자하듯 기부할 것.
그럼에도 이 말엔 너무나 수긍이 됐는데, 바로 투자하듯 기부하라는 것이다. 이 견해에서 공감이 되는 부분은 기부의 비용효율성을 따지는 방법론보단, 기부를 할 때에도 그 행위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라는 전체적인 맥락의 차원에서다. 처음 기부를 시작했을 땐, 아이가 살고 있는 나라는 어떤지, 그 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인지, 기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부를 한다는 행위만 남게됐다. '난 그래도 기부 하고 있다'는 어떤 성취감 때문에 마치 '내 할일은 다 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한 철학자는 그래서 사람들의 기부 행위를 이렇게 비판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박애심을 발휘하며 눈에 띄는 사회의 상처 자리를 계획적으로 봉합하려는 행정적 자선 행위를 벌인다. 기부금조차도 분배, 적절한 균형을 통해 남을 굴복시키는 행위와 결부된다." 는 것이다. 결국 기부는 세계적 빈곤과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보단 오히려 그 문제를 봉합해버린다는 지적이다. 물론 나의 의도는 그러지 않았지만, 오히려 기부를 함으로써 책임감을 회피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또한 내 재테크만큼 기부로 쓰이는 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면, 나의 의도를 좀 더 잘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반성도 됐다.

3. 효율+비효율 이타주의자  
최대선의 실현을 위해선 효율과 비효율적 이타주의 방식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기부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감정적인 호소를 통해 비효율적이더라도 이 이슈 자체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미 기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부를 했다는 행위로 끝나버리지 않도록, 좀 더 효율적으로 기부금이 쓰일 수 있도록 돕는 정보들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어느 분야에 기부할지는 개개인의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른 것이므로 모든 걸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4. 기부 & 행복감 상호 강화 관계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기부 & 행복감의 상호 강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약 돈을 행복의 주된 요소로 생각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돈을 벌어서 아무리 물건을 많이 사도 계속 결핍되는 '쾌락의 쳇바퀴'이기 때문이다. 반면 남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그 자체로 내가 행복해지고, 행복해지면 또 남을 위해 돈을 쓰기에 기부와 행복감은 선순환 구조이며, 이로써 우리는 지속가능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결국 효율적이든 비효율적이든 남을 도움으로써 나 역시 도움을 받게된다는 이타주의적 관점이 최대 선의 실현을 위한 가장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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