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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May 16. 2017

YOLO! But, Life Isn't Short!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삶에 대해 내가 알게 된 명제가 있다면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방향을 선택했어도 후회는 남고 설령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해도 역시, 후회는 남을 것이다. 내가 믿고 옳다고 생각했던 가치관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이 되었고,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은 '그럴 수도 있음'이 되었다. 여러 상황들을 겪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생각했던 것들은 시간이 더욱 지나서는 '어쩔 수 없음'으로 남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걸 체념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나의 생각을 수정해나가며 새로운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단 거다. 이 책 <태도의 관하여>는 저자가 살면서 느껴온 그러한 자기만의 태도,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다.


노트북 파우치를 배경으로 찍어보았다 (!) 인터스텔라다


여러 가지 태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완벽한 인간상을 빚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라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가고자 하는 개인적인 시도인 것 같다. 이것을 발판으로 삼아 각자가 뼈대를 만들어보고 거기에 살을 붙여나가면 좋을 것 같다. --- 300p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삶의 가치관이 있다면 바로 YOLO! 가 아닐까 싶다.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해야한다는 가치관과 대비하여, 지금 현재에 충실할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는 삶은 한 번 뿐이므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단 것이다. 공감한다. 나 역시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어떻게하면 좀 더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BLIS! (내 맘대로 줄여봤다)
 But, Life Isn't Short, 삶은 그렇게 짧지 않다.


YOLO의 정확한 어원은 모르겠지만 이것이 무작정 미래는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저질러버려!는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을 하는 것이다. 지금 회사를 때려쳐버리면 물론 당장이야 행복하겠지만 그 행복이 오래토록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삶은 정말로 한번 뿐이기에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삶의 태도로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 다섯가지를 이야기한다. 주체적으로 살 것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성실해야한다고 말한다. 좀 더 관대해져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직하고, 공정한 것은 지켜야한다고 말한다. 책의 뒷부분 <저자X정신과 전문의 대담>에서는 이를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은 다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둘은 인생을 굉장히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모든 걸 체념해버리거나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사실 이와는 반대로 삶을 굉장히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편인데, 그 안에서도 현실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YOLO! But Life isn't Short 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냉정하되 희망을 잃지 말 것, 낙관적이되 현실감각을 잃지 말 것!


<삶에서 균형이 중요하다는 부분 발췌>

나른하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항간에서는 예찬하지만, 그것이 가치 있으려면 어디까지나 자기 규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겸손한 주제 파악이 인간의 미덕일 순 있지만 삶을 팽팽하게 지탱시켜주진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내가 나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는 기분은 내가 생생히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나가는 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고, 일관되게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거기에 우리는 마땅히 헌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저는 그것이 인생의 공허함을 최소화시킬 유일한 방법이라고 봐요. 그게 알맹이 없는 긍정이나 낙관이 아니구요, 비관 위에서 시작되는 그런 새로운 한 걸음이랄까. 이런 것이 보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나른하고 여유 있게 삶의 소소함을 즐기자’는 말이나 ‘성공을 향해 돌진하자’는 말, 저는 둘다 썩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가 취할 수 있는 부분의 여유는 취하되, 열심히 할 부분에선 이 악물고 열심히 해볼 필요는 분명 있어요. ‘심리적 안정’과 ‘성취’는 고루 조화를 이뤄야 하고, 그 밸런스는 자기가 잘 잡아가야겠지요.


또 한가지 요즘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연장선 상에서) 고리타분해보이는 가치관들도 굉장히  중요하단건데, 특히 '성실함'같은 것들이 그렇다. 마치 YOLO와 같은 말들의 범람으로 인해 '지금 현재를 사는 것'이 '당장 힘들고 즐겁지 않으면 때려쳐버리라'고 오독되는 것 같아서다. 현재를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오그라듦'이 그러하다.(책에는 없는 얘기지만) 진짜 지코 노래의 가사처럼 대체 오그라든다는 말은 누가 만든 것인가!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들조차 오그라들게 보일까봐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이 때론 아쉽기도하다. 누군가와의 진지한 이야기가 얼마나 좋은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 일인데...


<성실함에 대한 부분 발췌>

우리 대부분은 이 사회에 살면서 조직이라는 곳,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누군가의 밑이란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어쨌든 ‘미생’의 인생이랄까. 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예술과 관련된 것, 혼자할 수 있는 일은 자유롭다고 바라보죠. 저는 거기에 맹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조직 안에서도 최대한 자발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한 개인이 되어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저는 하면 된다, 라는 명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말은 적어도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발성이라는 측면의 첫 단추, 처음으로 껍데기를 깨고 걸어 나가는 것까지는 무조건 내가 해야되는 거죠. 어쨌든 껍데기를 깨는 거는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소득 양극화, 사상 최고 실업률, 막힌 계층 간 이동. 시대가 이렇다 보니 노력이나 성실함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이 촌스럽거나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열심히 해보자, 성실하자는 말을 쓰면 인간이 우스워지는 시대에도 난 적응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난 늘 자극받고 힘을 얻어왔으니까. 나도 더불어 힘을 내야지, 같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중략) 열심히 노력하는 일은 주저앉아 한숨만 쉬거나 세상을 원망하거나 나를 놔버리고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한 아무것도 시작될 수 없고, 내가 움직일 때 비로소 감이 떨어지는 기적이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다.


<자유롭게 선택하되, 신중할 것>

‘어떤 결정을 해도 애매할 때는, 직장이든 결혼이든 이혼이든 생각할 때는 당신이 룩셈부르크 같은 낯선 데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거기선 아무도 당신을 몰라요. 그럼 어떤 결정을 할래요?’ 이말은 뭐냐면, 우린 결국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산다는 뜻이에요. 근데 현실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요. 내 안에 자기 내면의 눈이 많은 거예요. 내 안의 눈이 너무 많으니 내 안의 눈을 이렇게 조금씩 감추면 되는데. 그게 아직까지는 힘드니까요, 당분간은 유치하지만 상상을 하는거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룩셈부르크 같은 저기 어디 먼 곳에 있다고 치자고.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거는 건강한 거다. 좋게 생각하면, 혼란에 빠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좋다. 첫 단추. 그 다음에 또 어떻게 바뀐다 한들 일단 가보자. 매번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약간 헷갈릴 때는 다시 룩셈부르크로 가서(웃음)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걸 보라는 거죠.


<특히 좋았던 부분>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자’ 같은 일차원적인 자기암시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낫다고 생각할 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자존감은 ‘나 자신을 아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나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좋은 점을 극대화하려는 선한 에너지가 앞으로 걸어간 만큼 나를 존중하도록 만들어준다. 다시 말해, 타고난 것이나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나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자존감을 만든다.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예전에 갖고 있던 생각들의 다른 측면도 바라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기존에 가졌던 생각들이 틀렸다 맞았다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구체적인 어떤 부분은 이런 다른 측면이 있었구나, 하고 겸손하게 깨달으면서 수정 보완 해나가는 거죠. 자기 내면이 단단해지려면 디테일에서도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문제를 다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자잘하게 썰어서 하나하나 곱씹어 볼 수 있는 어떤 치밀함, 집요함 그리고 신중함이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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