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0 에 저장된 글

종현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by once a week

2017년 12월 30일에 썼던 글. 차마 올리지 못하고 저장만 해두었었다. 나중에 마음이 힘들지 않을 때 글을 다시 정리해서 써야지 했었는데.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살아지고 있더라. 한 글자도 수정하지 못한채 그냥 올려본다. 그 때 그 마음 가장 솔직했던 마음 그대로.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




종현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기자인 친구에게서 조금 더 일찍 소식을 듣고선 계속 기사를 새로고침했다. 아직 기사에서는 의식불명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마음 한 쪽에서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었던 것 같다. 밤새 기사를 새로고침하고나서 그 사실을 기사로 접하고 나선 아무 생각이 없었다. 종현의 앨범을 들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가사를 곱씹어 들을수록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샤이니를, 종현을, 좋아했던 모두들처럼 죄책감과 부채의식이 들었다.


노래를 듣고 무대를 보며 위로를 받았었으니까 말이다. 신나고 청량한 그 노래들에 힘이 났던 적이 있었고, 따뜻하고 맑은 노래들에 위안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콘서트를 따라가고 모든 앨범을 사는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 샤이니를 좋아했다. 그리고 종현은 샤이니라는 그룹의 정체성을 더욱 건강하고 멋있게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왜 샤이니를 좋아하냐고 누군가가 물을 때면 자신있게 이야기했던 대답들에는 대부분 종현이라는 사람의 건강한 생각과 음악적 재능이 담겨져있었다.


종현은 멋진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아이돌을 폄하했지만 그는 그런 한계를 스스로 뛰어 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 잘하는 것을 모두에게 인정받을만큼 노력하는 것으로 보여줬다. 그가 만들었던 곡들, 앨범들, 무대들. 그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나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그의 건강하고 따뜻한 마음도 좋았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그의 라디오에서의 한 마디, 트위터에서의 글들, 노래의 가사로 전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멋있어서 좋아했지만 나중에는 이런 아이돌 가수는 절대 다시 나올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들만큼, 그냥 그라서 좋았다.


일상은 그래도 계속되었다. 회사에 출근을 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책을 읽었고 음악을 들었다. 그래도 종현을 생각하지 않은 날들은 없었다. 마침 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은 후였다.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연 자살은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인가란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의 공개된 유서를 읽었고, 그것은 파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에 대한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유서에서의 말처럼 나는 그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의 선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그의 답을 찾은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가 가는 길이 부디 외롭지 않기를, 떠나간 그 곳에서는 슬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회식이 끝났던 어느 날 그의 빈소에 갔다. 저녁 8시까지가 조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지 않으면 영영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결국 나를 위해 간 것이었다. 내 마음의 저 부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말이다. 닫힌 문밖에서 기도를 하고 있을 때, 관계자분의 배려로 짧게 조문을 할 수 있었다. 자랑스러웠던 내가 좋아한 가수이지만, 그곳에 잠들어있는 종현은 나보다도 어리지만 더 많은 짐을 지고 있던 청년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말들을 해주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그냥 눈을 감은채 멍하니 있다가 나왔다. 아무말도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빈소를 갔다온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내가 미안했다.





자우림의 콘서트를 갔다. 20주년이었고, 정말 20년동안 좋아했던 밴드였다. 단 한곡도 빼놓지 않고 모든 곡들의 가사를 따라부를만큼 좋아했던 자우림. 그녀가 한참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방금 마음이 되게 찡했어요. 사실 우린 모르는 사이잖아요."

팬들은 왜 우리가 모르는 사이냐며, 우리는 당신을 안다고 소리질렀다. 김윤아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솔직히 우리가 서로의 삶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방금 이 노래 (17171771) 를 부르면서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온거죠' 이 부분에서 너무 마음이 찡했어요. 우리는 모르는 사이지만, 이 부분을 부르는데 여러분과 눈을 하나하나 맞추다보니 정말 우리는 서로 만나기 위해 여기 까지 왔다는 생각에요. 우린 어느 부분에서는 분명 연결되어있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팬들은 가수를 통해 구체적인 위로를 받는다. 그들의 노랫말에 공감하며 내 삶 속 어느 상황과 빗대어 받아들인다. 그래서 슬플 때나 기쁠 때 노래를 듣는 것이다. 가수는 어떨까. 수많은 팬들의 말들 속에서 자신의 삶 속 어느 상황과 빗대어 위로받을 수 있을까. 물론 어떤 동기부여와 힘은 되겠지만, 인기가 있다가도 없고, 나를 좋아하다가도 다른 가수를 좋아하는 익명의 사람들 속에서 구체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종현에 대한 부채의식은 아마도 거기에서 온 것일 것이다. 나는 그를 통해 위로를 받았지만, 나는 그래주지 못했다는 사실.


그래서 자꾸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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