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열 <지능의 탄생>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인공지능'이라는 기술 용어. 인공지능은 어떨 때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 처럼, 때론 인간의 지능을 대체해 인간의 노동력을 앗아갈 것 처럼 묘사된다. 그리고 영화나 소설 속 상상세계에서는 인공지능이 단순히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예 자신을 만들어낸 인간에 대항(ex. <공각기동대>) 하거나, 최근에는 딱딱해보이는 이 기술이 감성의 외피를 쓰며 인간과 사랑 (ex. <HER>) 을 하는 등 인간에 종속된 존재가 아닌 대등한 존재로 묘사가 되기도 한다. '인공'은 만들어낸 것이란 뜻을 잘 알겠다. 그렇다면 대체 '지능'은 무엇이길래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이렇게 깊숙이 들어오게 된 걸까.
2018년 독서모임 첫 책은 지능에 대한 입문서, <지능의 탄생> 이었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우선 이 책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대전제로 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본질은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모든 순간에 유전자가 결정을 내릴 수는 없으니 이러한 의사결정 기능의 일부를 뇌라는 대리인에게 맡긴다. 그리고 뇌는 유전자가 더 나은 생존을 할 수 있도록 발달하며, 그 발달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지능'이다.
즉, 지능은 생명체의 유전자 생존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공지능 역시도 더 나은 생존을 고민하고 최적화된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지능과 같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두 가지의 큰 차이점을 제시한다. 첫째로는 인공지능에게는 '자아'가 없다는 것. 인공지능은 인간의 필요로 인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본인의 생존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보다 똑똑한, 최적화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알고리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진정한 지능이라고 여기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그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제시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번영과 복지를 위해 복무하고 있다. 같은 문제라도 그 문제가 자기 자신의 것인 경우와 다른 주체로부터 위임받은 것인 경우에 해결 방법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의사결정을 내릴 때 선택가능한 해결법의 효용값은 문제풀이의 주체가 인간(생명체)일 때와 인공지능일 때 달라진다. 지능은 그것의 주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두번째는 사회성의 발달이다.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은 사회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교육과 학습을 통해 타인의 생각이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고, 사회적 관계 안에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 사회적 맥락은 수많은 네트워크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파악할 수 있고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두가지 점에서 인간과 인공 지능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사고가 인간의 정신적인 삶 중에서도 핵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취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자극을 찾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모방하는 것이고, 영화나 연속극을 방청하는 것도 가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하는 일이다. 물론 지루함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사회적 활동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은 단순히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만을 비교하는 책은 아니다. 지능이 발달하게 된 과정을 유전자의 진화 과정과 뇌의 진화과정으로 나누어 다양한 층위로 제시한다. 아주 단순한 유전 구조인 예쁜꼬마선충부터 가장 복잡한 인간, 그리고 인간을 흉내낸 인공지능까지를 다룬다. 지능에 대한 발달 과정 역시도 경제학, 심리학, 교육학, 뇌과학 등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비유와 실험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굉장히 넓다보니, 떠오르는 생각들도 다양했고 독서모임에서도 굉장히 여러가지의 층위에서 이야기가 논의됐다. 특히 독서 모임에서는 단순히 유전자(주체)-뇌(대리인)을 넘어, 아예 우리의 사회 자체를 주체-대리인으로 나누어 사회적인 지능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확장시켰다.
다만 그렇게 책 리뷰를 적으려고 하면.. 그냥 책의 내용을 요약해버리는 것에 불과할 것 같아서, 위에서 이야기한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주요한 차이를 바탕으로 좀 더 논의를 한정시켜서 글을 써봤다. 아래는 이 책을 처음 읽고 쓴 리뷰다.
두명의 젊고 건강한 여자가 있다. 둘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있다. 둘은 시원한 바다에 들어가도 차가움을 느낄 수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도 없다. 그들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둘은 가상 세계와는 달리 늙고 병들었다. 최첨단 과학기술 시스템을 이용해 하루에 몇 시간씩만 가상세계에서 젊은 모습으로 만나는 것이 허락된다. 그래서 둘은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 현실에서 죽기로 한다. 그리고 영원히 가상세계에 남기로 한다. 실존하는 몸은 없어지지만, 뇌의 신경데이터만 남아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로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고도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그린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다.
유전자의 대리인인 뇌는 유전자를 죽이는 결정을 내렸다. 그것 역시도 유전자가 선택한 생존의 방법인 것일까, 아니면 뇌가 유전자의 통제를 벗어난 결정을 내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유전자의 미래 생존을 위한 의사결정 속도보다 기술 발달의 속도가 더 빨랐던 것일까.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지능의 탄생>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에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뇌는 유전자의 대리인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단지 드라마 속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유전자의 생존에 반하는 선택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나.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을 가르는 차이 때문일 것이다. 책에서 말했듯 인간지능은 주체성을 띠며, 사회적으로 발달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생존을 위하여 일부 기능을 뇌에게 위임했다. 그리고 더 나은 생존을 고민하기 위해서 지능이 탄생했다. 여기서 ‘더 나은 생존’은 단순히 살아 숨쉬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의 목적에 가까울 것이다. 내 삶의 목적을 찾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하는 일. 그것이 지능의 역할이다. <블랙미러>의 두 여자가 내린 결정 역시 유전자 자신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더 나은 생존, 더 나은 삶의 방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정의 주체가 유전자이든, 뇌이든 말이다.
(논외지만, 주인공이 이성이 아니라 동성인 것도 어쩌면 유전자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진화론에 위배되는 설정을 보여주기위함이 아니었을까)
나아가 인간은 자신의 생존 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존도 고려하는 존재다. 인간은 기계와 달리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하며, 그 관계를 고려한 사회적 판단을 내린다. 매순간 자신만을 위한 최적화된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이유다. 의사결정이 늘 어려운 것 역시 우리는 자신 이외에 가족, 연인, 친구, 국가, 환경 등을 고려하여 선택을 내리는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숨쉬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만으로는 생존이라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설령 가상세계에 영영 갇혀버리는 것이라 하더라도 뇌는 그런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질문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의 생존은 어떠한가. 나는 더 나은 생존을 하고 있는가.
나는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사회적으로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역설적이게도 기술 발달과 함께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적인 지능을 갖추기에 점점 더 어려워진다. 유전자의 대리인인 내 뇌를 또 다른 대리인에게 위임하는 것이 많아진다. 무언가를 기억하고 대신 계산해주는 단순한 기능은 이미 넘겨졌다. 이젠 좋아하는 것을 찾는 즐거움도 알고리즘에 의존한다. 주체성을 고민하는 것도, 타인을 고려하는 것도 다른 효율적인 지능에게 넘겨질지 모를 일이다. 대리인에 불과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이야기는 영화로, 소설로 수없이 접해왔다. 이것은 비단 기술의 발달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무엇이 인간과 인공을 구분짓는 것인지, 기술이면 무조건 발전시켜야한다는 우리에게도 스스로 물어봐야하지 않을까.
위의 독후감과는 별개로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인간의 지능' 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은 뇌의 어느 부분의 어느 기능에서 오는 것인지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우리는 감정을 직관적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직관적인 것도 뇌의 기능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예를 들면 어떤 사건이 발생한 후 안도하거나, 후회하는 감정들은 왜 생기는 것인지, 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상상할 때 과거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하는지, 우울증은 왜 생기는 것인지에 대한 것 등 감정들이 뇌의 기능으로 설명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만약 뇌의 어떤 기능이 손상되었다면, 어떤 감정을 못느끼겠구나 -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인간이 끊임없이 후회와 안도를 되풀이하는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어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유식한 강화 학습을 잠시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그 결과 필연적으로 후회와 안도의 감정도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회상과 미래에 대한 상상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그와 비슷한 과거의 기억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의 과거사에 관한 기억을 형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해마에 손상을 입은 H.M. 같은 환자들은 보통 사람에 비해서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저하되어 있다.
너무 많은 시뮬레이션을 함으로써 제때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다. 지나친 심적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특히 부정적인 사건과 관련된 상상을 지나치게 하는 경우를 반추(RUMINATION)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울증의 경우에 두드러지는 증상이다.
사실 책 자체로는 설명의 범위가 굉장히 넓고, 앞 부분은 거의 유전자과 뇌에 관한 과학서적이라서.. 크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다만 나처럼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전반적인 지식을 파악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 같고, 읽은 후 각자 자신이 관심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심층적인 책을 골라서 읽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