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Are you a Hipster?
<힙스터 핸드북>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힙스터에 대한 이야기로 먼저 시작해본다.
먼저 좋아하는 장소. 대림미술관은 몇 번 가본 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라이언 맥긴리를 알게 된 건 좋았다만. 그 외에 나머지 장소들은 가보지않아서 인지 딱히 호불호가 없다. 좋아하는 것들. 몇 개는 아예 생소한 것들도 있고, 또 몇개는 굉장히 좋아하는 것들도 있었다. 진보성향, 샤이니, f(x), (NCT는 별로다), 스터디, 제주도, 치앙마이, 책, 퀴어영화(퀴어영화라고 다 좋은건 아니고, 좋아하는 영화 중 퀴어영화가 있다). 체크리스트에서는.... 신도시 정도만 있다. 독립을 꿈꿨을 때 살고 싶었던 동네는 합정/상수였고, 그 이유는 단연코 술집과 독립서점때문이었다. 만약 독립에 성공했다면, 체크리스트에 해당되는 것들이 더 많았겠다.
'아날로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힙스터'로 시작을 한 것은, 책 <아날로그의 반격>을 읽으며 과연 아날로그가 정말 반격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냥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진정으로 아날로그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을 통해 그런 문화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좀 더 독특해보이고 남들과는 다른 것을 보여주기 위한 힙스터들의 소비주의에 따른 트렌드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우선 책에서는 이것을 분명한 아날로그의 반격으로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와닿았던 근거는 두 가지다.
1.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디지털은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90년대 중반~2010년에 태어났고, 전세계 인구의 약 27%를 차지하며,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 터치 기반의 인터페이스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일명 Z세대(Generation Z)다. 그들에게 디지털은 원래부터 있던 것,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디지털은 더 이상 신기하지도 새롭지도 않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음원이 아닌 LP가,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닌 필름카메라가, 웹에 떠다니는 다양한 정보가 아닌 킨포크 같은 잡지가 더 새롭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즉, 사회가 디지털을 향해 치달아갈수록 새롭게 태어난 세대들은 아날로그적 경험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날로그 세대에 태어나서 일을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디지털 세상이 혁신이고 혁명이다. 그들에게 디지털은 현존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구원의 솔루션이다. "페친님들~" 하면서 글을 올리는 회사의 40대 이상 차장님들을 나는 적어도 5명은 알고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날로그는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새로운 Z세대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반격이라고 볼 수 있겠다.
X세대는 발전은 디지털에서 일어난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10대, 20대는 그들이 태어났을 때 인터넷은 이미 존재했고 세상은 이미 디지털화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디지털은 도달해야 할 목표도, 반짝이는 물건도 아닌, 그냥 기본 값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신기하고 새로운 것은 오히려 아날로그였다.
2. 디지털은 무한하고, 아날로그는 유한하다.
당연한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이다. 디지털은 무한한 복제가 가능하다. 어떠한 정보도, 노래도, 사진도 모두 공유된다.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반면 아날로그는 다르다. 내 손 안에 넣는 것이며, 복제가 되지 않으므로 희소성이 있다. 즉 디지털에 비해 효용가치가 크다. 우리는 모두 남들과는 다른 존재이고 싶어 한다. 과거에는 디지털 세계의 접근권이 세대, 지역 등에 따라 차별적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인스타 계정 하나쯤 갖고 #먹스타그램 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보편적 시대다. 이제 디지털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고, 그것으로 쉽게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날로그 세계에서의 경험과 소유는 제한적이며 그래서 모두가 고유하다. 따라서 아날로그로적 경험에 대한 수요는 디지털 보편적 시대에서 인간의 속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아날로그는 이런 현상에 가능성 있는 해법을 내놓는다. 소셜네트워크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상의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실생활의 상호작용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들은 이용자들 사이에 진짜 소속감을 형성해서 장기적으로 경쟁사에 맞서는 고객 충성도를 형성할 수 있다.
책 사례 A. 옐프(레스토랑 리뷰 서비스)
충실하게 많은 리뷰를 올리는 옐프 이용자의 지위를 승격, 엘리트 배지를 줌. 엘리트 배지가 달릴 경우 몇몇 도시에서 열리는 이벤트와 파티에 참석할 자격을 줌. 옐프 엘리트 대원을 위한 이벤트는 철저하게 온라인상에서만 참여가 이루어지는 다른 소셜 네트워크들의 이벤트와는 달리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함
책 사례B. 비핸스(웹디자인 공유 플랫폼)
포르폴리오가 선발되면 실물 토큰을 받음. “이 토큰은 상징적 물건이 되었습니다. 실물 제품에는 희소성이 있어요. 반면에 디지털 제품은 전혀 무가치하지요. 우리가 우수 회원들에게 보상해주는 경우에는 반드시 실체가 있는 물건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날로그는 일시적 유행이라기 보단 시대의 변화와 함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는 것이 일면 타당할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힙스터가 유행을 좇는 사람들이라면, 아날로그를 진정으로 지향하는 사람들과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 위에 제시된 장소들을 좋아하고, 힙스터 체크리스트에 체크도 여러 개 되면 힙스터인가. 그러면 그들은 일시적인 유행을 좇는 사람들인가. 저 장소들을 좋아하고, 체크리스트에 체크가 되었고 동시에 아날로그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일수도 있지 않을까. 애초에 힙스터와 진짜 아날로거를 구분짓는 이유는 무엇인가. 힙스터조차(?) 힙스터로 불리기를 싫어한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마지막 이유인 3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아날로그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LP판, 필름카메라, 몰스킨, 보드게임 등)와 인터뷰를 통해 아날로그 반격의 현상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의 액기스만 뽑아낸다면!! 바로 아날로그의 본질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 지향형 소비주의 - 힙스터들 - 과는 다른 가치관말이다.
3. 아날로그, 인간의 조건
<아날로그의 반격>은 아날로그 현상의 다양한 사례를 모아놓은 책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사례의 나열은 아니다. 해당 케이스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스토리를 꼼꼼한 취재와 인터뷰, 작가의 인사이트로 꼭꼭 채워놓는다. 또한 저자는 아날로그가 반격을 시작했다는 정보전달을 넘어, 아날로그는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주장한다. 나 역시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다양한 사례 속에서 내가 건져낸 키워드는 세 가지 였다. '손에 잡힐 것' , '우연성', '진짜 관계' 이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손에 잡히는 것들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는 경험은 디지털 파일로 듣는 것에 비해 효율적이지 않다. 더 번거롭기만하고 음향적으로 더 뛰어나지도 않다. 하지만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는 하드 드라이브의 음악을 꺼내 듣는 것보다 더 큰 참여감을 주고, 궁극적으로 더 큰 만족감을 준다. 레코드판이 꽂힌 서가에서 앨범을 골라 디자인을 꼼꼼히 들여다보던가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 행위, 그리고 레도드판의 표면을 긁는 듯한 음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 동안의 침묵. 우리가 가진 물리적인 감각을 더 많이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레코드판이 주는 경험에는 계량화할 수 없는 풍성함이 있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경험이다.
책에서는 LP의 사례를 들었지만, 누구에게나 '손으로 잡히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 행위의 결과만 놓고보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성과 가성비가 떨어지지만 행위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 예를 들면 차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것, 커피를 곱게 갈아 내려 마시는 것, 책에서 좋았던 구절을 손글씨로 적어두는 것, 주말에 텃밭을 가꾸는 것 등.
나의 경우엔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기가 있다. 필름 사진찍기는 우선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까지 든다. 매번 필름을 사야하고,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확인을 할 수도 없으며, 다 찍으면 필름 롤을 모아서 충무로까지 가서 인화를 맡긴다. 디지털 카메라에 비하면 효율성과 가성비는 엄청나게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손으로 필름을 끼고, 감도를 맞추고, 치크락 소리와 함께 필름을 감고 찰칵-하는 셔터 소리와 함께 사진을 찍는 '손으로 잡히는' 감각들이 있다. 한때 유행했던 구닥앱처럼 필름 한 롤을 다 찍고 인화가 되기까지 정말 기다려야한다. 하지만 그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은 또 어떠한지. 필름 사진만의 느낌도 물론 좋지만, 그 과정 속의 즐거움 또한 필름 사진의 매력이겠다.
모든 것이 디지털과 가상현실로 대체될 수는 없다. 우리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추구한다. 꼭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아날로그적인 경험들은 효율적인 디지털로는 대체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 더 싸고 빠르게 구매할 수 있지만, 서점을 구경하며 책을 사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오늘날의 리테일은 둘러보기 위한 외출입니다. 리테일은 상품의 구매장소라기 보다는 공간에 대한 느낌과 경험이죠. 독립서점이 이런 변화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전자상거래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풍부한 웹 브라우징 경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구멍가게조차 어떤 웹사이트보다도 풍부한 브라우징 경험을 선사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의자들과 구석직 공간들, 공들인 진열장과 엄선한 북 센션들, 멋진 선반과 잘 조절된 조명, 서점의 개성을 이루는 장난기 섞인 인테리어 등으로 상품을 홍보한다.
그리고 우연한 것들
디지털은 모든 것을 '예측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너 롱패딩을 검색했으니, 이 광고를 보면 롱패딩을 사게 될거야' 라며 광고를 붙이는 것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영화를 볼지, 그리고 나아가 어떤 사람을 만날지까지. 알고리즘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알고리즘을 통해 걸러진 보기 안에서 답을 정하게 된다. 하지만 아날로그 세계에서는 우연한 기회에 접하는 것들이 많다. 책에서는 아마존의 추천리스트와 독립서점의 핸드셀링을 예시로 들었는데 굉장히 와닿았다.
모두 알다시피 아마존은 알고리즘을 통해 독자가 전에 읽었던 책들, 혹은 다른 독자가 샀던 책들에 근거에서 비슷한 책들을 추천한다. (물론 아마존 뿐만 아니라 유튜브, 넷플릭스 등 모든 콘텐츠 관련 서비스는 마찬가지다.) 반면 서점 업계에는 핸드셀링(Hand-selling)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서점 직원이 손님이 읽고 싶을 만한 책을 찾아 손님에게 건네주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손님의 바디랭귀지를 읽고, 직접 시선을 맞추고, 취향을 묻고, 손님이 좋아할만한 책을 권하는 가장 기초적인 대인관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셀링 방식이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추천을 해주기 때문에 우연성의 기회가 더 많다.
디지털 기술이 빠르고 편리한 선택을 돕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예측가능한 범위내에서만 살아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 역시 우연히 들었던 어떤 음악이, 나와 굉장히 다른 사람에게서 추천받았던 어떤 영화가, 내 취향이 아니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어떤 문화가, 어느 날 훅 하고 들어올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새로운 영감을 주고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늘 알고리즘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내 취향과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뻔한가.
마지막은 관계
아마도 이것이 가장 본질일 것이다. 디지털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진짜 전화를 해서 위로를 받고, 살을 부대끼고, 술잔을 부딪치는 것의 충족감 이상을 주기는 어렵다. 물론 그런 오프라인의(아날로그의) 관계가 있다하더라도 문득문득 외로운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아날로그 관계는 진짜다. 나를 꾸미기보다 드러내고, 의견이 다르면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서로의 표정과 숨겨진 비언어적인 행동들을 읽는다. 이런 진짜 관계를 맺는 일은 온라인에서 하트를 하나 받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때론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이유를 행복하기 위해서이고, 그 행복을 주는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사람과의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아날로그적인 관계, 때론 상처를 주고 받더라도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상처를 극복하고 서로 성장하고 돈독해질 수 있는 아날로그적 관계를 포기할 수는 없다.
잘 골라낸 일상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흔한 (온라인) 사회 관계망과 그런 이미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죠.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100만 명이라고 해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는 하나도 없어요. 일상의 서글픈 현실에 비하면 인스타그램은 너무 완벽하지 않나요? 일단 그런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소셜 미디어와 안전한 관계에 더욱더 의지하게 되죠. 즉각적인 만족감을 찾기 위해 다시 소셜 미디어로 돌아가서 계속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는 겁니다. 누구나 그렇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순환 고리에 빠져서 거기에서 관계를 발견하려고 애쓴 경험이 있을 거예요.
아날로그적 삶의 회복
이 책을 읽고 정한 2018년 올해의 화두가 바로 '아날로그적 삶의 회복'이다. 좀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차근차근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보고 싶다. 이 책도, 나 역시도 디지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을 잃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즐거운 것들을 찾고, 우연을 허용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보기. 그래서 이 책에서 얻었던 이야기들을 <이론편>으로 정리했다면, 다음번에는 <실제편>으로 적어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몇분에 한번씩 모바일 기기를 확인하고 몇시간씩 스크린을 들여다보면서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아날로그는 우리를 그 모든 것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한 시간 동안 혹은 오후 내내 레코드판을 돌리거나 일요판 신문을 읽게 해준다. 그렇게 아날로그는 우리에게 존재감에 대한 확신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