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 끈다.'
김연수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은 이 한 문장안에 담겨있다. 김연수의 마음을 잡아 끈 사이에 있고, 쉽게 바뀌어버리고, 덧 없이 사라져버린 것들, 특히 청춘에 관한 단상들이다. 김연수의 책은 이 번이 두번째인데 처음 읽었던 책은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라는 한 줄의 문장에 이끌려서 읽게된 책.
시작은 흥미로웠다. 글을 쓰는 카밀라는 자신의 책 중 한 부분에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 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경)' 을 넣어둔다. 바로 그 곳은 카밀라가 입양되기 전의 고향, 한국. 그리고 그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카밀라의 뿌리 찾기는 결국 카밀라 엄마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실 진한 멜로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저 첫문장은, 엄마가 카밀라에게 하는 말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흥미진진하게 시작한 소설은 솔직히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중간에 화자의 시점이 카밀라에서 엄마로 바뀌는 지점은 문체 자체에서 오는 파격과 화자 전환으로 인해 흥미롭기는 했지만 사실 그 뿐이었다. 그렇게 마지막은 기운이 쭉- 빠지게 책을 덮어버렸지만 그래도 김연수의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문장들이 이끄는 독특한 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청춘의문장들>. 이 책을 읽게됐다. 소설이 아닌 수필. 소설에서는 다소 부자연스럽고 맹맹-한 느낌이 들었다면 수필에서는 확실히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써서 인지 그런 맹맹함들이 아주아주 매력적이었다. 특히 그 특유의 느낌이 있는 문장들은 김연수 냄새! 가 물씬 났다. 그리고 뭔가 김연수라는 이름과 그의 문장들은 굉장히 잘 어울린다.... 'ㅁ'
큰 얘기에만 관심을 두던 20대가 지나고 나니 삶의 한쪽 귀퉁이에 남은 주름이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주름이나 흔적처럼 살아가다가 사라진다.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니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목이 메는 구차한 짓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목이 메고 마음이 애잔해지는 것은 모두 늦여름 골목길에 떨어진 매미의 죽은 몸처럼 자연스럽게 생기는 여분의 것에 불과한 데, 지난 몇 년간 나는 거기에 너무 마음을 쏟았다.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 끈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이 책 한권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는 기본적으로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그냥 보내지 못하고 목이 메는,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만큼 굉장히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감정을 쏟고, 그래서 이렇게 알싸한 느낌의 문장이 나오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평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듣던 친형이 어느 날 미국으로 훌쩍 미국을 떠나버리고, 그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던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큰형이 혼자서 열심히 들여다보던 영어회화책을 생각한다. ‘서쳐 필링 커밍 오버 미’나 ‘에빌바디 쿵푸 파이팅’ 따위로 시작하는 노래를 들으며 머나먼 나라를 꿈꾸던,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선소에 취직해야만 했던 한 청년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 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자신의 딸 열무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달리던 여름을 이렇게 묘사한다던지,
조금 달려보니 소리를 지르고 연신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로 와 부딪히는 바람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내친 김에 멀리까지,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논둑길까지 달렸다. 정말 아름다운 여름이었다. 햇살을 받은 이파리들은 초록색 그늘을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웠고 바람에 따라 그 그늘이 조금씩 자리를 바꿨다. 금방이라도 초록색 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나무 그늘 아래를 달리면서 나는 “열무와 나의 두 번째 여름이다” 라고 혼자 말해봤다.
그와 친구가 좁디 좁은 단칸방에 살던 시절, 소주를 먹고 취해서 난동(?)을 부리던 친구와의 일화를 이렇게 멋지게 기록한다던지,
“우리 좀 잡아가요, 아저씨. 우리 도박했어요, 우리 좀 잡아가요.” 느닷없는 말이었다. 나는 얼른 뛰어나가 경찰들에게 떠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친구는 계속 소리쳤다. 경찰들은 내게 주의를 주더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얼른 사라졌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가 나도 잡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겨울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해 겨울, 우리는 겨울이라는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겨울, 나는 간절히 봄을 기다렸건만 자신이 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은 깨닫지 못했다.
한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줄도 모르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빨리 정릉 그 산꼭대기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원했다.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임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하는 것들. 이런 알싸한 느낌때문인지 이 책은 김광석의 노래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 평소 김광석 노래를 즐겨 듣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김광석 노래가 듣고 싶었고 노래를 작게 틀어놓고 책을 읽었다. 그러다 책 중간에 보니 김연수가 김광석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를 묘사한 부분이 나오는데, 왜 그런지 알 것만 같았다.
굉장히 완벽한 이야기 꾼은 아닐지언정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작가 김연수.
그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처럼 작은 것에도 슬퍼하기를, 목이 메이기를.
<파도가 너의 일이라면> 중에서
앤이 죽고 난 뒤, 나를 위로한 건 해가 완전히 저문 뒤에도 여전히 푸른빛이 남아있는 서쪽 하늘, 쇼핑몰에서 나이 많은 여자들을 스칠 때면 이따금 풍기던 재스민 향기, 해마다 7월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앤의 생일인 24일, 신발 가게에서 유독 눈이 가던 치수 6.5,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누를 수 있는 앤의 휴대폰 번호 열자리 같은 것들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 늘 거기 남아 있는 것들, 어쩌면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여전히 지구에 남아있을 그런 것들에 나는 위안을 얻었다.
내가 멀리 서서 자신을 바라볼 때부터 그는 나를 알아봤다고 했다. 레드우드 앞에서 처음 만난 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린 어제 본 사람들처럼 안개를 먹고 잘나다는 그 나무 얘기를 나눴다. 레드우드에 대해서 말하고 난 뒤에도 우리는 뭔가 계속 말하고 싶었다. 이런 기분이 사랑의 시작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누군가의 악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렇게 천천히 숨을 쉬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두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점들이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네 인생은 몇번이고 달라지리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기다림이 하나의 계절이 되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결정적이다.
거실을 지나 이층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도 잘 참았는데, 그 말을 할 때부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건 7월의 오후, 친구들과 농구하고 난 뒤에 흘리는 땀 같은 것이어서 그저 그치기를 기다릴 뿐,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 그 눈물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사랑만 있을 뿐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하나도 없었지. 태양만 있고 햇살은 없는 것처럼. 온기가 없는 불꽃처럼. 결국 엄마는 대학을 중퇴하고 이 집에서 나를 낳았지.
<청춘의 문장들> 중에서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 몸으로 어둠을 지나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쉬움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던 세월의 속도다.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키친 테이블 노블. 식탁에 앉아서 쓰는 소설이라는 뜻인데,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니라 일반인의 처지에서 쓴 소설이 크게 인정받았을 때 붙이는 이름인듯 하다.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이, 그리고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애잔한 까닭은 첫사랑을 닮았기 때문이다. 흑인 가수 빌리 홀리데이는 <Come Rain or Come Shine>에서 “예전에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을 사랑할 테야”라고 노래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누구보다도 빌리 자신이 잘 알고있으니 그토록 구슬프게 노래하는 게 아니겠는가?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이 애잔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