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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Nov 11. 2016

최고의 로맨스 소설

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 뭐 인증샷 찍느라 찍어놓은 이 사진 밖에 없당) 


평소 함께 책 이야기를 많이 하던 오빠에게 추천받은 어떤 책을 읽고선 '이 책은 묘사가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들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답은 '그럴 거면 소설을 왜 읽어'였다. 그럼에도 소설은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 <체실비치에서>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묘사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주인공의 심리를 정말 그 사람이 된 것처럼 하나하나 풀어놓는데, 특히 여자 주인공 플로렌스의 심리 묘사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도 플로렌스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이를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랐던 부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정리가 된 것이다. 


책은 1960년대, 갓 결혼한 남자와 여자의 첫날밤을 다룬 내용이다. 책의 첫 문장은 '그들은 젊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둘 다 첫날밤인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로 시작한다.  이 책은 성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동시에, 이제 막 일부에서 섹스를 유희로 보는 시각이 아주 조금씩 생겨나던, 전반적으로 아직까지 보수적인, 60년대의 첫날밤 이야기다. 특히나 자기방어적이고 자존심이 센 남자와 성에 대해 보수적이나 자유의지를 중요시하는 여자의 첫날 밤. 첫날 밤을 치루기(?) 전 저녁식사와 키스, 이어지는 스킨십, 실패, 싸움까지 단 몇시간의 이야기를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이 둘의 입장을 모두 이해시킬 수 있도록 차분히 그려준다.


남자(에드워드)는 자기방어적이고 자존심이 세다. 그 성격은 어머니의 정신적 질환을 '다루는 방식'에서 비롯됐다.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가족들은 그것을 어머니 스스로가 알 수 없도록 - 일종의 보호장치로서 - 연기를 하며 살았다. 어머니가 가끔 이상해도 가족들은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이다. 사실 그 보호 장치로 보호를 받은 건 어머니 뿐만 아니라, 에드워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엄마는 조금 다를 뿐, 병이 아니야.' 라며. 그리고 그 보호장치가 풀리는 순간, 즉 '엄마는 정신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에드워드의 자존심은 와르르 무너지고 자기방어적인 성격은 견고해진다.


그들에겐 어머니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침묵 속에서. 그랬기 때문에, 열네살 때 아버지와 단둘이 정원에 있던 에드워드가 처음으로 어머니의 뇌가 손상됐다는 얘길 들은 그 몇분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그것은 모욕적인 용어였고 배신으로 초대하는 불경스러운 말이었다. 뇌 손상. 어머니의 머리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 만약 다른 누군가가 어머니를 두고 그런 말을 했더라면 에드워드는 달려들어 한방 날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략)
에드워드는 평생 동안의 순응력을 발휘해 충격에서 인지의 상태로 조용히 바뀌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그는 늘 알고 있었다. 그가 순진한 상태로 버텨올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병을 지칭하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 병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전혀 없었지만 동시에 어머니는 다르다고 늘 인정해왔었다. 이제 그 모순이 이처럼 간단한 이름 짓기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언어의 힘으로 해소된 것이다. 뇌 손상. 이 말은 애틋한 마음을 없애버렸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공적인 기준으로 냉정하게 어머니를 평가하게 했다. 갑자기 어떤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자신과 어머니 사이 뿐만 아니라 그 자신과 주위 풍경 사이에도. 그는 자기라는 존재를 느꼈다. 그리고 전에는 한 번도 주목받지 않고 매장돼있던 그 존재의 핵이,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빨갛게 달아오른 뾰족한 끝이 돌연 날카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플로렌스는 60년대 부잣집의 딸이다. 넉넉하고도 전통을 중시하는 집안. 하고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며 누리고 자랐기에 자신에 대한 자유의지가 강했고, 동시에 전통을 중시하는 집안의 분위기 탓에 성적인 면에 있어서는 매우 보수적으로 자랐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모든 면에서 아주 꼭 맞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반대로 다른 것도 아닌, 평범한 커플이다. 에드워드가 락을, 플로렌스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일부 다른 것도 있었고, 또 공통점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은 서로를 굉장히 사랑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문장들.


그녀는 순순히 인정하면서 자신이 참을 수 없는 건 드럼이라고 말했다. 곡이 너무 간단하고 또 대부분 단순한 사분의 사박자인데, 왜 이 무지막지한 쿵, 탕 쨍그랑 하는 소리로 박자를 맞춰야 하는가. 이미 리듬 기타뿐 아니라 가끔 피아노 연주도 있는데, 도대체 드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연주자들이 박자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메트로놈을 쓰면 되지 않는가. 에니스머 사중주단에 드러머를 영입하면 어찌 될 것인가.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녀가 서양 문명을 통틀어 가장 솔직한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하잖아."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 


그녀는 스토너 밸리로 직행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좁은 농장 길을 따라 고즈넉한 빅스 바텀을 접어들었고, 그러자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폐허가 된 세인트 제임스 교회가 나왔고 그곳을 지나 나무가 울창한 언덕을 올랐다고 했다. 그랬더니 메이든스그로브 초원이 나왔고 그곳에서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또 너도밤나무 숲을 통과해 피실 뱅크로 갔더니 그곳엔 벽돌과 부싯돌로 지어진 작은 교회와 교회마당이 너무도 아름다운 자태로 언덕 비탈에 매달려 있었다고.그녀가 자신이 지나온 장소들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 그는 훤히 다 아는 곳들이었다 - 그는 그곳을 걷는 그녀를 상상했다. 혼자서 몇 시간 동안 그를 향해 걷고 있는 모습을. 그게 다 그를 만나기 위한 것이라니, 정말 굉장한 선물 아닌가. 그리고 이토록 행복한, 혹은 이토록 예쁜 그녀의 모습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사랑했던 둘은, 그토록 원하던 결혼식 날, 첫날밤도 보내지 못하고 헤어진다. 책의 구성은 현재 스킨십을 시도하는 장면과 과거에 그들이 각자 겪었던, 혹은 같이 겪었던 일들을 묘사하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스킨십을 실패하고, 갈등이 생기는 장면과 과거에 그들이 가졌던 생각들, 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들을 풀어놓으며, 현재에 그 둘의 심리를 마치 내가 겪는 것인양,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이 부분은, 바로 맨 앞에서 말했던 그 심리 묘사다.


그것은 그녀의 입속으로 깊이 밀고 들어오는 혀, 치마나 블라우스 속으로 한껏 뻗치는 손, 그의 사타구니로 그녀를 잡아당기는 손, 그녀를 외면하고 침묵으로 빠져들 때의 그 특유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녀가 뭔가 더 주리라는 은근한 기대였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모든 것의 속도를 늦춘 원흉이었다. 그 어떤 새로운 경계를 넘어도 언제나 또 다른 경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허락할 때마다 매번 더 많은 것이 요구됐기 때문에 판을 깨는 사람은 바로 그녀가 되었던 것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언제나 비난의 그림자, 불쑥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산봉우리처럼 감출 수 없는 욕구불만의 그림자, 두 사람 모두 그녀 탓으로 돌렸던 영원한 슬픔의 정서가 드리워져 있었다. 
(중략) 
그녀에겐 이미 앞이 훤히 보였다. 이렇게 입씨름을 하다가 완전히든 반쯤이든 서로 화해를 하고, 그녀는 그의 회유에 마지못해 방으로 되돌아가고, 그러고 나면 또다시 그녀에게 '기대'라는 짐이 지워질 터였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실패할터녔다.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결혼한 지 여덟 시간밖에 안됐는데 그녀에겐 매 시간이 무거운 형벌이었고, 이런 생각들을 그에게 설명할 방법을 몰라 더욱더 견디기 힘들었다. 


(성에 대해) 보수적으로 자랐고, 경험이 없었으며, 그럼에도 사랑하는 마음은 있고, 그렇기에 노력을 해보긴 하는데, 노력을 하면 끝이 아니라 다음의 노력이 또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그녀는 숨막혀 하고, 남자는 자신을 거절하는 그녀에게 실망한다. 결국, 어머니에게 '뇌손상'이라는 이름짓기로 자존심이 세고 자기방어적이 된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에게 '불감증' 이라는 이름짓기를 해버리고. 보수적이나 자유의지가 강한 플로렌스는 '난 너에게 만족을 줄 수 없으니, 너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져도 괜찮다'고 말해버린다. 서로가 서로의 아픈 곳을 찌르고 상처를 남긴 채, 그렇게 헤어진다. 아주 다르지도 않았고,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학 때, '성녀 콤플렉스'라는 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공감이 됐었다. 잘못된 시대 분위기와 성교육으로 인해 성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불결한 것이라고 까지 생각하게 되면서 생기는 콤플렉스. 여자를 '성녀'와 '창녀' 두 가지로만 나누어서, 자신을 '성녀'라는 틀에 가두고 마는 콤플렉스. 그리하여, 남자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차라리 '창녀'와 관계를 맺고 자신과는 정신적인 사랑만 해도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사실 겪지 않으면 풀어내기 어려운 감정인데, (특히나 작가가 남자임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플로렌스의 심리를 묘사한 것에 놀라웠고 또 깊이 공감이 됐다. 


그리고 나아가선 연인 관계에서 생기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모든 문제들에도 확장될 수 있는, 그런 마음들까지. 서로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에 꼭 맞을 수 없지만, 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기에 품어줄 수 도 없고, 가끔 보는 친구도 아니기에 그러려니 넘어가줄 수도 없는. 그렇기에 노력을 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연인관계. 그리하여 아무리 사랑했지만, 작은 것 하나가 결국 치명적인 것이 되어 헤어지게 될 수 밖에 없음을. 


이러한 묘사만으로도 너무나 좋았던 책이지만, 그것을 넘어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것은 바로 관계가 깨져버린 후, 이어지는 플로렌스의 독백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구절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적어두고 싶고,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그녀는 갑자기 그들의 문제가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너무 예의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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