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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Nov 09. 2016

내 안의 인혜를 위한 변명 혹은 위로

한강 <채식주의자>


영혜보다도 인혜에게 마음이 더 쓰였다. 남편과 여동생의 성관계를 담은 (남편의 말에 따르자면) 비디오 아트를 보고나서도, 고작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식탁에 얼굴을 묻고 그 둘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던, 인혜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이 책에 대해선 글을 쓰기는 힘들겠구나' 싶을만큼 어려운 책이었지만 글을 쓰기로 한 이유다. 


총 3편의 단편 소설이 엮어진 장편 소설이다. 영혜가 어느 날 육식을 거부하기로 한 사건을 영혜의 남편 <채식주의자>, 영혜의 형부 <몽고반점>, 영혜의 언니 <나무 불꽃> 3명의 시선으로 나누어 그려낸다.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가 어느 날 꿈에서 본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보고선 돌연 육식을 거부하게된 이야기를 그린다. 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말라가고 또 그만큼 말이 없어진 영혜를 붙잡고선 입을 벌려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한다. 2부 <몽고반점> 에서는 비디오 아트를 만드는 영혜의 형부가 어느 날 부인 인혜로부터 '영혜에게는 아직 몽고반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선, 그 몽고반점을 가지고 비디오 아트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혜의 온 몸에 몽고반점을 중심으로 꽃을 그리고 자신의 몸에까지 꽃을 그려, 큰 꽃 두개가 결합하는, 즉 두 사람의 성관계 장면을 찍는 것이다. 영혜는 이 사건을 통해 육식을 거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가 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인간, 고깃덩어리라는 사실을 거부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3부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 인혜가 자신의 여동생과 남편이 성관계를 갖게된 것을 알게된 후 남편과는 이혼을 하고, 여동생은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이후 영혜는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나무가 되겠다고, 아예 섭식 자체를 끊는다. 그리고 인혜는 이런 동생을 매주 찾아간다. 


소수에게 행해지는 다수의 폭력. 채식주의를 선언한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며 이혼한 남편, 입에 억지로 고기를 집어넣는 아버지, 그녀를 이해하는 듯했으나 자신의 작품에 혹은 욕망에 이용한 형부, 이를 곁에서 지켜보기만한 인혜. 이 어려운 소설이 말하려고 하는 바는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혜보다도 인혜에게 마음이 쓰인 건, 인혜의 모습이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과 가깝기 때문이다. 소수에 대해 '지켜보기만 할 뿐'인 사람. 


고기를 집어넣는 아버지를 막거나 영혜와 성관계를 한 남편을 비난하지 못한 채, 지켜보기만 한 사람. 식탁에 자신의 얼굴을 묻는 것 만으로 상황을 피해버리려는 사람. 너무나 보통의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 인혜는 어느샌가 이 소용돌이 한 가운데로 들어온다. 


그리고 인혜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르게 그 속에서 '살아나간다'. 


껍데기만 남았던 관계인 남편과의 이혼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어 견디어냈고, 돌이킬 수 없는 여동생과 남편의 성관계 이후에는 이혼을 결심한다. 그럼에도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일상을 이어나간다. 또한 가족들이 영혜를 결국 외면하자, 영혜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보살피는 것도 오롯이 인혜의 몫이다. 


인혜에게 자꾸만 안쓰러운 마음이 든 이유다. 영혜는 자신이 만든 세상 속으로 들어가버렸고, 자신이 되고싶은 나무가 되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말을 하지 않고, 형부와의 성관계를 하고, 나아가 '왜 죽으면 안되는거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인혜는 영혜가 벗어나버린 세상속에서 삶을 지속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책임져야 할 아이와, 책임져야 할 동생이 있는. 죽고싶어도 죽지 못하는, 목을 맬 나무를 찾아나섰지만 자신의 무게를 견디어 줄 나무를 찾지 못해 목을 맬 수 조차 없었던. 


어려운 책이었다. 특히나 충격적인 이미지들의 연속이 책을 읽기 힘들게 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와, 꽃이 온몸에 그려진 형부와 처제의 성관계, 손에서 부터 뿌리가 나오고 다리에서 잎이 나오는 나무가 되기 위해 뼈 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악다구니를 쓰며 물구나무를 서는 영혜와 같은 이미지들이 긴장감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그려져있어 어려우면서도 불편한 지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바로 이 어렵고 불편한 느낌들이 오히려 이 책을 독특한 책으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인혜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글 하나 쯤은 있었으면 해서.. 꾸역꾸역 결국엔 써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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