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e a week Aug 31. 2018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쉬운 대상

지그문트 바우만 <모두스 비벤디>

지난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 <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리뷰를 뒤늦게 올려본다. 굉장히 얇은 분량에 속도감 있는 전개로 숙숙- 읽히는데, 제시하는 문제들은 전혀 가볍지 않다. 읽을수록 이렇게 꼬일대로 꼬여버린 지금 이 시대의 사회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 있을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는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꼬여있는 이 실타래가 이런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서술하는 지적만으로도 읽을 의미가 충분하다. 특히 '난민' 이슈는 유동하는 세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데 국내에서는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어보면 꼭 좋겠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지역구에 살고있던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면 수십명의 인사를 받았다. 잘 부탁드린다고, 꼭 뽑아달라고. 특히 얼굴이 조막만한 전 아나운서의 인사를 연이어 며칠 받았을 땐 신기하기도 했지만, 마치 내가 갑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출근길 발걸음만 재촉했었다. 투표를 하던 날에는 나의 주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꼼꼼히 정책집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주권을 행사했음을 증명하는 인증샷도 남겼다. 내가 이 나라의 주체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다음 날. 조용한 출근길과 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나의 하루는 내가 객체임을 아주 빠르게 깨닫게 했다.


한 정치학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민주주의의 탈민주화>라고 표현했다. 대다수 국가에서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그 본질은 민주주의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투표는 했지만 내 목소리가 실제 반영되는 것과는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 경향으로는 자본이 정치를 압도하고, 마케팅 전략이 선거를 지배하며, 효율성의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평등의 민주주의 합리성에 우선하고, 세계화가 국가 주권을 약화시키는 현상들을 들었다. 한마디로 돈이면 다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1인 1표제가 아니라, 1달러 1표제인 것이다.


책에서 지적했듯이 유동적인 열린 사회에서는 돈도 전 세계로 유동적으로 흐른다. 기존의 국가의 틀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난다. 돈은 한국에서 벌지만, 사회적 책임은 다하지 않는 국제적 기업에게 어떻게 세금을 물릴 것인지, 공장을 철수해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된 사람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국내 법으로는 아직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신규 업종에 대하여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등. 그동안 국가의 역할을 벗어난 문제가 산재해있고 돈은 더 돈이 많은 곳으로 흐르고 노동은 유연화된다. 이를 위해 복지제도는 꼭 필요하지만 세금은 그 돈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이기에 쉽게 정책이 수립되기 어렵다. 당장 자국민조차 먹여 살리기 어려운 와중에 등장한 난민은 당연히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쉬운 대상이다.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쉬운 대상


보이지 않던 문제에서 내 눈앞에 보이는 문제의 대상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혐오하고 내몰아낸다. 책의 서술 중 [전지구적으로 오염된 문제는 유해폐기물 야적장이나 집 없는 난민같이 우리 집 근처의 손닿는 곳, 우리 뒷마당 부근에 할당될 때 정치문제가 된다]는 지적이 가장 섬뜩했다. 솔직히 제주도에 난민이 오기 전까지, 전 세계의 전쟁과 난민에 대해 우린 얼마나 알았던가.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전반적으로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 나한테 손해만 안끼치면 된다는 태도. 나와 상관없으면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가 나에게 조금만이라도 손해를 입히면 상대를 증오하고 폭발해버리는 태도.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쉽게 혐오하고 벽을 쌓고 비난하는 태도.


단순히 그 태도가 바뀌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고, 이는 국내외적으로 엮여있으며, 세계적인 사냥꾼들을 처벌하기 위한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을 때까지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 (소확행에만 몰두했던 나를 조금이나마 반성하며....)




위의 독후감 서론의 '민주주의의 탈민주화' 부분은 경향신문의 김호기 칼럼을 참조했다. <상>편에서 읽고 참조했는데, 나중에 지나서 <중>편을 보니 김호기 교수도 바우만의 유동하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김호기 교수의 칼럼도 너무 좋아서 아래 링크로 공유해본다. 


[김호기 칼럼 - 금융위기 이후 10년 <상>]포퓰리즘의 시대

[김호기 칼럼 - 금융위기 이후 10년 <중>]정체성 정치의 도전

[김호기 칼럼 - 금융위기 이후 10년 <하>]불평등을 해소할 ‘대압착 정책’

매거진의 이전글 탈출을 꿈꾸는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