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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Apr 01. 2020

2020년의 기록

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

얼마만의 글쓰기인가.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2019년 4월이 마지막 글이었구나. 누군가가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여전히 가장 먼저 나오는 <피프티피플>이 마지막 글이었구나. 사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책 읽기도 저 즈음부터 멈추었다. 지난 6월 직장을 옮긴 후 한 2개월 간은 정신이 없었고, 그 이후에 모든 것들을 멈추기에 이직은 좋은 핑계가 되었다. 책 읽기도, 글쓰기도, 독서모임도, 운동도 그 시점부터 다 멈추었다. 회사와 집과 연애만으로도 빠듯한 날들이었다.


그리고 2020년 새해, 빠듯했던 날들에서 저 세가지가 한번에 뭉개지며 빠듯한 날들에 구멍이 숭숭 났다. 연애는 끝이 났고,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로 집과 회사가 뒤섞였다. 광고업의 특성상 경기가 안좋아지자 일도 확 줄었고, 전사 재택근무로 인해 일 자체의 집중도도 떨어졌다. 시간이 난 김에 노트북을 고치고 (글을 못쓴 또 다른 핑계는 노트북이 고장난 것 이었다... 3개월 넘게.. 고치지 않고선...) 오랜만에 책을 사서 읽고, 이렇게 오랜만에 글도 쓴다. 이 책은 지금 읽는 책은 아니고 2020년 1월 다시금 책을 읽어야겠다 다짐하며 집 앞 도서관에서 가볍게 빌린 책이었다.




겨울 밤 귤까먹으며 읽었다


일단 읽기 쉬워보였다. 운동을 오래 쉬다 다시 시작 할때 스트레칭 부터 슬슬 해주어야 몸이 놀라지 않듯, 책 읽기도 그럴 것 같았다. 부담없이 누워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골랐다. 그리고 저자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여자였다. 그리고 여전히 일을 하면서 책을 썼다. 뭔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되 내가 마음 속으로만 곱게 접어놓은 책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실천한 사람이라니. 비슷하면서도 앞서가는 사람의 글이라 읽고싶었다.


모든 요일을 기록할 수는 없다


책은 따뜻하고 낭만적이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엄마와의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남편과의 일상, 좋은 선배가 있는 회사, 낯선 여행지에서의 깨달음까지. 하지만 이 이야기가 그녀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책의 제목은 <모든 요일의 기록>이지만, 모든 요일을 기록할 수는 없으므로. 모든 일을 기록할 수는 없기에, 그 중에 일부를 건져올려 기록한다. 그녀도 이러한 '기록'이라는 본질적 한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는 많은 것들 가운데 기껏해야 몇 개만 쓸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손가락 사이로 후두둑 떨어져나갈 것이다. 나는 내가 쓴 것을 읽고, 그때의 경험을 음미하고,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 세세한 감정 같은 것들을 잊어버릴 것이다. 내가 쓴 몇 문장만 경험했다고 믿으며,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그것이 쓴다는 것의 어쩔 수 없는 맹점이다. - <쓰다 : 언어의 기록> 중에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휘발되기 마련이므로 기록된 것들만이 전부인 것처럼 남는다. 나 역시 가끔 브런치에 내가 남긴 여행기를 보면 너무 예쁘게만 느껴진다. 사실 그때의 나는 한없이 찌질하고, 못됐고, 우울했고, 답답했는데. 글 속의 나는 그 안에서 깨닫고 나아가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래서 그렇게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속이는 글쓰기라니.


그럼에도 기록을 멈출 수 없는 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많은 기억들 중 아주 조금밖에 건져내지 못할지라도 그 마저도 기록하지 않는다면 전부가 후두둑 지나가버리는 날이 될테니.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은 지난 10개월이 나에게는 정말 후두둑 지나가 버린 날이듯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땠더라. 바빴고, 힘들었고, 열심히는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그런 시간.. 그 속에서 아무것도 나아가지 못했고 긍정적이지는 더욱 못했다. 허우적 거렸을 뿐. 그래서 내가 나를 속일지라도 기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기록 그 자체가 나를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니까.  


아무도 못 보는 곳에도 쓰고, 모두가 보는 곳에도 쓴다. 쓰고야 이해한다. 방금 흘린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방금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왜 분노했는지, 왜 힘들었는지, 왜 그때 그 사람은 그랬는지, 왜 그때 나는 그랬는지. 쓰고 나서야 희뿌연 사태는 또렷해진다. 그제야 그 모든 것들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 <찍다 : 눈의 기록> 중에서


차곡차곡한 일상


이 책은 차곡차곡 기록한 일상에서 건져올린 글이다. 비록 모든 요일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지나가는 순간들을 붙잡아둔 이야기다. 어떤 요일은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서 만난 아주 평범한 하루를, 또 어떤 요일은 특별한 여행지에서 겪은 마법같은 하루를. 두 귀로, 두 눈으로, 때론 온 몸으로, 그리고 언어로. 스쳐지나가는 많은 날들 속에서 소중했던 순간들 중 몇 가지를 기록한다. 책은 그렇게 기록한 4개의 챕터 <듣다, 찍다, 배우다, 쓰다>로 구성되어있다.


공감되는 구절도 있었다. 책을 읽을  좋았던 페이지를 포스트잇으로 붙여놓고 나중에 정리하려고  페이지 열면 도통 내가 무슨 구절이 좋아서 포스트잇을 붙였는지 모를 때가 있다. 저자도 그럴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과 책의 관계에도 때와 환경과 감정의 궁합이 맞는 순간이 있다. 책장 앞에 서서 어떤 책을 손 가는 대로 펼친다. 내 글씨를 발견한다. 내가 해둔 체크표도 발견한다. 왜 그곳에 그런 메모를 해놓은 건지, 그 구절의 어떤 부분이 좋았길래 체크를 해놓은 건지 쉽사리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거기에서 발견한다. 그때의 내가 궁금해서 다시 그 책을 읽는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책을 발견한다. 그리고 새로운 부분에 새로운 감정으로 줄을 긋는다. 그렇게 영원히 새로운 책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 <듣다 : 감정의 기록> 중에서


또 어느 여행지를 가든 꼭 그 지역의 서점에 들러서 필름 카메라로 담고야 마는 나 때문에 같이 여행간 친구들이 치를 떨었을 때도 있다. 특히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나라에 가서 빙글빙글 돌아다닐 때.. (미안해 K) 저자는 유난히 벽 사진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면 필름 카메라로 벽을 담는다고 한다.

남들은 그런 사소한 취향 따위,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의 이 취향이 도시의 속살로 직행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취향은 능력이다. 좋아하는 것이 뚜렷하다는 사실이 때론 다른 여행을 선물한다. 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사는 동네를 사랑하게 된 것도 낡은 벽들과 오래된 골목들 덕분이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낸 색감과 질감을 좋아한다. 그걸 찾기 위해 기꺼이 헤맨다. 헤맬 때마다 보석이 내 손 위로 후두둑 떨어진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차올라 목 끝까지 간지럽힌다. 그렇게 행복한 감정으로 길을 걷노라면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낡은 벽을 좋아하는 내가 좋다. 그런 나라서 언제, 어느 도시에서라도 나는 쉽게 행복하다. - <찍다 : 눈의 기록> 중에서


다만 달랐던 것은,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그냥 난 그런 사람이야 하고 넘어간 것과 달리 저자는 그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그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건져냈다는 거다. 무슨 페이지가 좋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 책을 다시 읽으며 영원히 새로운 책을 발견해나간다거나, 벽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한 자신을 바라보며 언제 어느 도시에서라서도 쉽게 행복한 자신을 발견한다거나, 하는 것들.



그래서 다시 기록한다


그래서 다시 기록해보려 한다. 흘러가버리는 하루 속에서도 조금씩을 남겨놓으려고 한다. 어떤 요일을 기록하면서 나만의 의미를 건져내고 싶다. 차곡차곡 일상을 쌓아 구멍 숭숭나버린 지금을 메우고, 다시 앞으로 나갈 힘을 얻고 나아갈  있도록.

나란히 앉아서 그 사람과 마시는 맥주에 행복을 느끼고, 그 사람의 눈빛 속에서 다시 나를 찾아, 다시 일상을 꾸려 나갈 힘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꿈꾸는 그곳은 이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곳에서도, 그때,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매일 먹는 바케트가 지겨울 테고, 대화할 상대가 없는 일상의 외로움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땐 그것이 또,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화시켜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것이 내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듣다 : 감정의 기록> 중에서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 조금이나마 행복한 순간들로 채워질 수 있도록.

강백호에게 농구를 잘할 수 밖에 없었던 기본기가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 인생을 잘 살수밖에 없는 기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기본기를 키우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고, 뭔가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렇게 비옥하게 가꿔진 토양이 있어야 회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고, 새로운 카피도 쓰고, 새로운 뭔가도 시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 <배우다> 중에서


그래서 또 무너질 때는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일어날 객관적 사태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늑 것은 단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의 주관적 태도일 뿐입니다. 나는 다만 내가 어쩔 수 엇는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의 주관적 태도를 고상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김상봉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중"

비극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그들 모두의 태도는 같았다. 결코 운명 앞에서 구차하지 않았다. 낙담하거나 체념하지도 않았다. 끝까지 의연했다. 바뀔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아무것도 없었다. 운명이라 그러지 않는다. 그들은 비극적인 운명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운명 앞에서 얼마나 고귀하게 사는가, 그리고 얼마나 용감하게 죽느냐, 라는 태도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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