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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Mar 20. 2016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삼라만상

생각이 안나서 미치는 것과, 생각이 나서 미치는 것. 도무지 내가 이어폰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안 남과 동시에, 물을 보자니 정말 어릴 적에 물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한 바가지 물을 먹어버리면서 물이 무섭게 되버린 그 기억.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컨트롤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것


일을 할 때에 To Do를 철저하게 적는 편이다. 사실 이렇게 해도 놓치는 부분이 많다. 일을 더 세분화해서 조목조목 적어야 한다라든가, 조직 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면 이런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하는 발상은 사실 나에겐 넘나 의미없는 이야기로 들린다. 기억이라는 건 그렇게 무언가를 정리한다고 나오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건 그냥 내 의식 안에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기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두뇌이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해마학습법의 그 '해마'가 바로 이 두뇌에서 기억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해마를 얼마나 잘 구슬리느냐에 따라 기억의 능력이나 강도 여부가 결정되는 듯 하다.


그러한 기능이 저하되면 이내 어떤 질병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슬픈 얘기다. 기억을 못한다고, 병이라니. 그리고 사람들은 유독 기억을 하지 못하는 현상에 엄청난 두려움과 긴장을 한다. 그 질병의 대표적인 예가 아마 알츠하이머나 치매류가 될 것이다. 기억이 안 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상실감 내지는 박탈감의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


이거 내가 알았던 건데, 이거 평소에 내가 하던 것들인데, 갑자기 그 단어와 그 행동과 그 패턴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 한창 가도를 달리던 나의 능력과 자존감은 아주 급격하게 추락하게 된다. 많은 경우 이는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하기도 하고, 남들이 눈치챌까봐 방어기제를 한껏 발휘하여 정신을 차려봐야, 이미 몸은 고장이 났다.


기억이 사라지는 동안, 나라는 존재도 어디론가 사라지는 듯한 기분. 나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하나의 생명체인데, 나라는 인간을 통시적으로 길게 늘어놓았을때, 저 후방에 있는 부분은 이제 어딘가로 자꾸만 날아가버리는 기분이지 않을까.




잊지 못하는, 잊고 싶은 것

역설적이게도 기억을 굳이 하고 싶지 않는 것들은 잊어보려 해도 더 크게 밀려온다. 애석하게도 이 기억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난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있지만 굳이 여기서 쓰고 싶진 않다. 혹여나 '트라우마'라고 그 현상을 덮어씌우며, 우리가 앞으로 무언가를 할 때에 방어막으로 쓰려 든다면, 이 기억은 그냥 나를 어떤 유리천장에 부딪혀 그 이상의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


아마 이렇게 기억이 나는 것을, 기억이 안 나게끔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서두에도 언급한 바처럼, 기억이라는 것은 통제변인에 속하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쁜 생각이 난다고 그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는 충고는 사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 친한 한의사 선배는, 이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 나의 땀 발생 원인에 대해 액션 가이드라인을 주었다. 요지는 땀이 난다면 땀을 더 낸다고 마음이라도 진심으로 먹고 땀을 열심히 내라는 것이다. 땀을 낸다는 행위를 금기삼고 부정하려 든다면 의식과 몸의 변화의 부조화로 더욱 그 간극이 벌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기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역작용을 이용하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나면 그런 생각을 그냥 하고, 그 기분에 차라리 몰입하고 표현할 때 좀 더 해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족사든 개인사든 우리에겐 저마다의 나쁜 기억들이 있고 지우고 싶을 테다. 내 경험 상, 지우려 하면 할 수록 더 생각이 난다. 그건 내가 지운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는데. 생각날 땐 생각하면서, 그리울 땐 그리워하면서, 불러보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도 보는 것이, 그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니라면, 생각날 땐 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물론 힘에 부치고 슬프겠지만.


순간순간 찍었던 사진은 이렇게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잊지 않고 싶은 것들을 간직하려 찍었던 사진들은 간혹 그 화살의 촉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선, 이젠 잊고 싶을 때 마치 마음 속에 낙장불입처럼. 찢는다고 태운다고 하는 행위는 그렇게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은 마치 마음 한 켠에 낙인을 찍는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사실 무척 담담하게 써내려가려 했지만, 누군가가 미친듯이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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