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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도 DJ가 필요했나요

<Without you> - Avicii

by 히피 지망생

매년 12월 31일 11시 55분. 매해 마지막 5분을 기고 치르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가장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2023년 마지막 날엔 Daft punk의 <Contact>를 들었다. 매해 마지막 순간에 딱히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면,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송'으로 이 노래만 한 게 없다. 고 있으면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쏘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무중력 상태로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 노래를 듣고 우주여행을 떠올린 게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유튜브에서 'Contact'를 검색하면 <Contact> 비공식 뮤직비디오가 여럿 뜨는데, 대부분이 우주여행 컨셉이다.


올해도 별 이변 없이 <Contact>로 마무리 해야겠다 했을 때, 넷플릭스의 새로 올라온 콘텐츠 목록에서 <내 이름은 팀>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넷플릭스 인물 다큐는 무조건 봐야지. 그런데, 팀(Tim)? 팀이 누구지? 썸네일 사진을 보고 누군지 알아채는 데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비치(Avicii). , 아비치의 본명이 팀 베릴링이었구나. 팬이라는 사람이 그동안 본명도 모르고 있었다니... 미안해요, 아비치. 아니, 팀 베릴링(Tim Bergling). 이렇게 2024년의 마지막을 함께 보낼 아티스트가 결정되었다.

2024년 마지막 날, 다큐 공개한 넷플릭스 칭찬해


아비치와 나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초, 나는 만 30세의 나이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 막차를 타고 호주 시드니에 막 도착한 터였다. 영어 공부와 오지 잡(호주인들과 함께 일하는 직업) 두 마리 토끼를겠다던 계획은 도착하자마자 영어라는 장벽 앞에 가로막혔고, 나는 영어가 필요 없는 청소 일로 생계를 이어가 됐다. '한국에 돌아가면 평생 선생님만 하다 은퇴하게 될 테니 여기서는 한국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해보자'는 심산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결정이 운명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으니, 지금 보면 그건 이세돌과 알파고의 네 번째 대국에서 나온 78수 못지않은 신의 한 수, 아니 운명의 한 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2025년에 명예퇴직을 하게 될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만.)


그때 사무실 카펫 청소를 하다가 만난 청년이 있다. DJ 지망생 J.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비슷한 우리는 늘 비슷한 쪽을 바라봤고, 금세 친해졌다. J에게는 다른 유학생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J는 분명 달랐다. 일단, J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학생으로 꾸미지 않았다. 당시는 EDM(Electronic Dance Music)이 세계 음악 시장의 주류로 급부상하던 때였고, 그는 EDM을 공부하기 위해 호주에 왔다고 했다. 호주가 EDM 강국도 아닌데 왜 굳이 호주까지?J는 EDM을 제대로 배우려면 미국에 있는 어느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려면 큰돈이 필요기에 '돈을 벌러' 호주에 왔다고 했다.


돈 벌러 왔어요. 참 간결한 목표. '꿈 찾아왔어요'라고 포장할 만도 한데 그러지 않 솔직함이 나는 좋았다. 그동안 어학원서 방황하던 대한민국 청춘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던가.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유학생은 몇 안 됐다. 나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할 것 같은데, 다들 돈 걱정을 안 하는 걸 보니 대부분 집이 부유해보였다.(당시 환율로 학원비는 석 달에 5백만 원이 넘었다.)


한국인이 절반이던 그 어학원에서는 굳이 영어를 쓸 필요가 없었고, 당연히 영어도 늘지 않았다. 그중 몇몇은 아예 기초가 안되어 있어서 기초반부터 시작했는데, 기초반은 말 그대로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수준의 영어를 가르쳤다.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럴 거면 굳이 왜 여기까지 와서? 한국에서 편하게 YBM 어학원 다니면 되지 않나? (3개월 어학연수 경험자 입장에서 어학연수 팁을 드리자면, 영어를 배우고 싶다면 한국인이 없는 도시로 가야 한다. 외롭고 힘들겠지만 그래야 영어가 는다.)


호주는 밤이 되면 대부분의 술집이 문을 닫는다. 회식 문화도 없고, 회식도 1차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라고 했다. 유일하게 새벽 6시까지 문을 여는 술집이 있었는데, 그 가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새벽이 되면 대한민국 유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저 청년들의 부모는 자녀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어학원에서 잠깐 알고 지낸 Y도 그런 경우였다. Y는 아버지가 대기업에 다니며 꼬박꼬박 보내준 돈으로 술을 마셨다. 당시 시드니의 물가는 소주 한 병에 만 오천 원, 노래방 한 번 가면 시간당 3-4만원. 일주일에 한두 번만 술을 마셔도 돈은 금세 떨어졌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Y는 집에 전화를 했다. 전화 한 통화면 Y의 통장에 돈이 꽂혔다. Y는 부모님이 따박따박 보내준 돈으로 어학원에서는 초등학교 수준의 기초 영어를 배우고, 밤에는 술을 마셨다.


그런 애들만 보다가 꿈 찾아 호주까지 다는 J를 만났으니 J가 얼마나 예뻐 보였겠는가 J는 알면 알수록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력도 화려했다. 손재주가 좋아서 한국에서는 미술 학원 강사로 일했다고 했다. 기타도 잘 쳤다. 무엇보다 독특한 이력은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세계챔피언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3명이 팀을 이루어 한국 대표로 나간 대회에서 우승하는 바람에 상금 몇 천만 원을 받았고, 그 돈으로 세계 여행을 다니다가 흘러 흘러 시드니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설마 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더니 뉴스 기사에 J의 사진이 올라와있었다.


처음엔 호주 농장에 갔다가 여건이 안 맞아 잠시 시드니로 와 있고, 몇 달 후엔 다시 농장으로 갈 거라고 했다. 마음이 잘 맞았던 우리는 청소 일도 같이 했다. 청소업체 사장님도 좋은 사람을 만나 우리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카펫 청소를 했다. 사장님은 일만 열심히 하면 일하면서 음악 듣는 건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음악 얘기를 나눴다. 한 번은 J가 듣고 있는 음악이 궁금해서 물어봤다.

"지금 무슨 음악 들어?"

"한 번 들어보실래요?"


빰빰빠바 바바바- 빠바바 빠바바-

오오- 썸타임-


"이거 누구 노래야?"

"아비치라는 DJ 노래예요."


솔직히 듣는 순간 귀를 휘감는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독특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때 내가 들었던 노래의 제목은 <levels>였다.) 아- 이런 음악이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듣는다는 EDM이구나. 굳이 찾아 듣진 않았다. 그땐 한창 힙합에 빠져있을 때였으니까.


다음 해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우연히 Armin Van burren의 <Intense>라는 곡을 듣고 EDM이라는 세계에 빨려 들어간다. 여기서 Armin Van burren 얘기를 안할 수 없다. 나에게 EDM이라는 세계에 입문하게 만든 네덜란드 DJ. Armin van burren 게 깊게 빠지게 된 공연 영상이 하나 있는데,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 네덜란드 국왕 즉위식 영상이다. 공연은 강변에서 열렸다. 무려 DJ와 오케스트라의 합동 공연이었다. 공연 도중 배를 타고 국왕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국왕과 악수 한 번 하고 시크하게 공연을 이어가는 세계 탑 DJ 클라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네덜란드 사람도 아닌데 왜 내 심장이 뜨거워지는지 모르겠다. 자유는 참 좋은 거다.


국왕 즉위식에 DJ가 공연을 하는 나라라니. 참 부럽다.


EDM은 신세계였다. 힙합을 끝으로 더 이상 음악에서 새로운 장르는 나올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반전은 생각 못했다. 그렇게 향후 몇 년간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무한 공급해 줄 보물상자를 열어젖혔다. 락 음악에 빠지면 펑크, 하드록, 헤비메탈 등으로 취향의 반경을 넓혀가게 되는 것처럼, EDM도 다양한 장르를 찾아 듣게 됐다. 트랜스, 하우스, 덥스텝 등 EDM이라는 줄기에서 가지치기를 해나간 하위 장르들을 정말이지 질리도록 들었다.


EDM 특성상 음악의 구조가 엇비슷하고, 자기 복제도 심하다 보니 계속 듣다 보면 그게 그거 같고, 모든 음악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시점이 온다. 질리도록 듣다 보면 실제로 질려버리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렇게 EDM과는 서서히 멀어져 왔으나, 지금도 유일하게 즐겨 듣는 DJ가 있으니, 이름이 바로 아비치(Avicii) 되시겠다. (아비치는 나의 청취 기록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아티스트' 10위 안에 랭크된 유일한 EDM 아티스트이다.)


아비치(Avicii)에게는 다른 DJ와는 다른 뭔가가 있다. EDM은 컴퓨터로 만든 음악이기에 기계가 주는 차가운 느낌을 피할 수 없는데, 아비치의 음악에는 EDM이라는 이름으로 가둘 수 없는 따뜻하고 깊은 뭔가가 있다. EDM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면, 아비치는 에스프레소 더블샷이고, 다른 DJ가 몬드리안(차가운 추상)이라면, 아비치는 칸딘스키(뜨거운 추상)다.

몬드리안(차가운 추상)
칸딘스키(뜨거운 추상)


아비치는 포크, 컨츄리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음악 위에 덧 입힐 줄 알았고, 감성이 음악에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게 할 줄 알았다. 그는 0과 1로만 이뤄진 컴퓨터라는 몸체 위에 따뜻한 인간의 피를 수혈했고, 로 그것이 아비치의 음악 정체성을 만들었다. 다른 DJ들이 어떻게 하면 보다 자극적으로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까를 연구할 때, 그는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멜로디를 창조했다. 그것도 그만의 철학적인 메시지를 넣어서. 결과적으로 그것이 다른 DJ와 그 사이에 선을 그어줬다.


그것은 분명 재능의 영역이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카니예 웨스트가 샘플링 천재라면, 아비치는 멜로디 천재다. 한 번만 들어도 바로 따라 흥얼거리게 되는 멜로디를 참 쉽게도 만들어낸다. 다큐를 보면 그가 멜로디를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 작업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그 장면을 보며 언젠가 그의 노래에 달린 댓글이 떠올랐다.

"이런 음악은 도대체 뇌의 어느 부분에서 뽑아내는 건가요?"

세계적인 작곡가인 나일 로저스도 아비치의 멜로디 창작 능력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살면서 만난 작곡자 중에 멜로디를 가장 자연스럽게 만들었어요."


아비치는 노래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가수를 찾는 능력도 탁월했다. , 이 노래는 누가 부른 건지? 하고 찾아보면 이름이 생소한 보컬인 경우가 많았데 다 듣고나면 '이 노래는 누가 불러도 이 보컬처럼 부를 수 없겠다' 하는 생각에 닿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Addicted to you>는 '오드라 메이'라는 보컬이 불렀는데, 나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 노래는 아델을 데리고 와도 이런 느낌 낼 수 없다고. 아비치는 어디서 이런 가수들을 찾아내는 걸까?


다큐를 보면 '댄 티민스키'라는 미국의 컨트리가수 인터뷰가 나오는데, 여기서 아비치가 가수를 어떻게 섭외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인터뷰에서 댄은 말한다.


"비서 셸리한테 연락이 왔어요.

'혹시 EDM 곡에 관심 있어요? 아비치라는 아티스트와 하는 거요.'

전 EDM이 뭔지도 몰랐고, 첫 반응은 이랬어요.

'고맙지만 사양할게'

비서는 공식적으로 거절하기 전에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더군요. 저는 딸에게 연락했어요.

'아비치라는 사람 들어봤어?'

바로 답장이 왔더군요.

'스웨덴 DJ인데 굉장해요. 저도 좋아해요. 천재예요.'

왜 묻냐길래 말했죠.

'나랑 곡 작업을 하길 원하나 봐'

곧장 답장이 왔는데 한 단어였어요.

'헛소리'.(딸은 농담인 줄 알았음)"


결국, 댄은 아비치의 노래 <Hey, brother>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그 결과는 댄의 인터뷰로 확인할 수 있다.

"제가 참여한 곡 중 가장 대작이에요. 16개국에서 동시에 1위를 했으니까요. 한 번은 아들 학교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누가 이러더군요.

'안녕하세요? 티민스키 씨'

한 아이가 'Hey- brother' 하더니 세 명이 노래를 시작했어요. 1초도 안 돼서 점심 먹던 모든 사람이 운동장에서 이 노래를 떼창 하는 광경이 연출됐어요."


아비치는 팝과 EDM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제 아비치가 EDM의 경계를 넘어 음악계에 큰 역사적 발자취를 만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렇게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가 2016년, 공연은 그만하고 프로듀싱에만 전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공연 한 번에 직장인 5년 치 연봉을 버는 그가 공연을 그만하겠다니, 아니 왜? 도대체 왜? 하루아침에도 수많은 별들이 명멸하는 EDM 씬에서 DJ가 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건, 잊힐 각오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걸까?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그의 건강이 안 좋아 보이긴 했다. (실제로 그는 췌장염을 앓고 있었다) 살이 빠지는 게 우려스러울 정도였고, 탈모도 진행되고 있었다. 인터넷에선 그를 조롱하는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평생 벌 돈을 20대에 다 벌어놓은 그에 대한 질투였을 수도 있고, 그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 섞인 투정일 수도 있다. 다만 그의 달라져가는 외모를 비하하는 댓글들이 뼈아팠다. 그래도 아비치는 꿋꿋했다. 한 번은 SNS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머리를 시원하게 드러내고는 "그래, 나 탈모다. 어쩔래?"식의 글을 올린 걸 보고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요, 아비치. 당신을 조롱하는 팬 같지 않은 팬들도 많지만, 저처럼 당신을 응원하는 팬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아요. 이렇게 마음 단단히 먹고 꾸준히 음악 해줘요.

그리고 몇 달 후, 인터넷에서 상상치 못했던 뉴스를 접하고 말았다.


[오피셜] 스웨덴 DJ 아비치, 오만에서 사망


뉴스를 듣고 한동안 멍해있었던 것 같다. 공식적인 사인은 안 나왔지만, 사망 발표 성명서의 뉘앙스("He wanted to find peace")로 보아 건강 문제로 사망한 것 같아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예상 가능한 사인은 하나뿐인데...


왜? 도대체 왜?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삶 아닌가? 하고 싶은 음악 마음껏 하면서 전 세계 투어를 돌고, 눈만 뜨면 전 세계의 유명 아티스트로부터 콜라보 요청이 아지는 삶. 통장엔 평생 써도 다 못쓸 만큼의 돈이 쌓여가고, LA엔 창문 밖으로 바다가 펼쳐지는 멋진 별장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뭐가 부족해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내 이름은 팀>이 그 비밀을 밝혀주지 않을까? 술 없이는 못 볼 것 같아서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갔다. 맥주를 사들고 <True> 앨범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와 다큐멘터리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다른 다큐멘터리는 1.5배속으로 보지만, 이 다큐만큼은 1배속으로 볼 수밖에 . 다큐멘터리에는 제목처럼 아비치, 아니 팀 베릴링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그제야 비밀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었다. 아아, 그래서 공연 은퇴를 결정했고, 그래서 건강이 나빠졌던 거구나. 그래서 그런 가사가 나왔던 거구나.


여담이지만, 다큐를 보며 커트코베인이 자주 떠올랐다. 둘은 참 많이 닮았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했고, 둘 다 너무 큰 성공을 너무 빠른 시간에 이룬 나머지 무대 뒤에서 공허함을 느꼈다. 커트코베인의 유서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나는 읽을 때나 쓸 때도 음악을 들을 때나 곡을 만들 때 너무나 오랫동안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사실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무대 뒤에 있을 때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함성이 들려와도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프레디 머큐리라면 그러지 않았겠지. 그는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할 줄 알았다. 난 정말 그런 것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쁜 죄악은 내가 100% 즐거운 것처럼 꾸미고 가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아비치도 이와 비슷한 심정을 토로했다.

"제 것이 아닌 행복에 대한 생각을 뒤쫓고 있었어요. 가면 쓴 인간이 되는 게 싫었어요. 아비치가 됐다가 팀이 되는 게 싫었어요. 무대에 올라 그걸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너무 혼란스러웠고 여전히 이해가 안 됐어요. 음악 만드는 것도 재미없었죠. 너무 과했거든요. 해결 방법도 모르겠어요."


그에겐 휴식이 절실했으나 쉬지 못했고, 결국 사랑하던 음악에 싫증을 느끼고 만다. 아비치는 그의 이름처럼 지옥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아비치'라는 예명은 불교의 '아비지옥'에서 유래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어보지 않은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상실감과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커트는 헤로인에, 아비치는 알코올과 진통제에 손을 댔다. 둘 다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었고, 이 또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음악계의 판도를 바꿔놓았지만, 본의 아니게 자신이 만든 감당 못할 세계에 갇혀버린 두 아티스트는 결국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아비치는 생전에 작업하던 앨범을 두고 '열반(Nirvana)을 향한 열정'에 관한 앨범이라고 표현했다. 커트 코베인이 속한 밴드 이름 Nirvana이다.)


아비치는 세상을 떠나기 전, <Without you>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노래 가사라는 게 참 신기하다. 그땐 그저 예쁘게만 들리는 흔한 사랑 노래였는데, 막상 아비치가 떠나고 나니 그가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나 없어서 잘 살아가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어쩌면 그는 이 노래를 만들 때 이미 세상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나오는 <Without you> 가사를 아비치가 팬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라 생각하고 읽어보자. 처음엔 당신(팬) 없이도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다짐처럼 들리던 이 노래가 이젠 나(아비치 본인) 없이도 잘 살아가라는 메시지로 들리는 건 나뿐인가.




You said that we would always be
넌 말했지. 우린 항상 함께 할 거라고

Without you I feel lost at sea
너 없으면 난 바다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야

Through the darkness you'd hide with me
어둠 속에서 나와 함께 숨어

Like the wind we'd be wild and free
우린 바람처럼 거칠고 자유로울 거야


You Said you'd follow me anywhere

넌 어디든 날 따라오곤 했지

But your eyes tell me you won't be there

하지만 네 눈은 네가 거기 없다고 말해


I got to learn how to love without you

너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

I got to carry my cross without you
너 없이 내 십자가를 져야 해

Stuck in the riddle and I'm just about to
수수께끼에 갇혀있지만, 난 이제

Figure it out without you

너 없이 헤쳐나갈 거야

And I'm done sitting home without you
너 없이 집에 있는 것도 그만할래

Fuck, I'm going out without you
젠장, 너 없이 밖으로 나갈 거야


I'm going to tear this city down without you
너 없이 이 도시를 부숴버릴 거야

I'm going Bonnie and Clyde without you
너 없이도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살 거야



아비치 노래 중엔 가사가 좋은 노래가 참 많다. 나의 인생 가사 중 하나인 <The nights>를 빼놓을 수 없다.


One day, my father, he told me

"Son, don't let it slip away"

어느 날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아들아, 이 순간을 흘려보내지 마라"

He took me in his arms, I heard him say

When you get older, You wild life will live for younger days

Think of me if ever you're afraid.

아버지는 나를 품에 안고 말씀하셨지.

"나이가 들면 너의 심장은 젊은 날을 떠올리며 살게 될 거야.

두려울 땐 나를 떠올려라."


He said, One day youll leave this world behind,

So live a life you will remember.

그리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언젠가 너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거야.

그러니 훗날 추억할 만한 삶을 살아라"

My father told me when I was just a child.

These are the nights that never die.

내가 어렸을 때, 그는 말씀하셨어.

지금 이 순간들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밤이라고.




<TIM>이라는 이름의 유작 앨범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사를 남겼다.


When the record's on the final song

And the parties will be long, long gone

All the pretenders and the hangers on

Can go find themselves another one

앨범의 마지막 곡 녹음과 파티가 끝나고 한참 후,

진행자와 구경꾼들은 또 다른 걸 찾으러 가면 돼.

- Avicii, <Ain't a Thing> 중


이 가사는 또 왜 이렇게 슬프냐. 넷플릭스가 왜 이 다큐멘터리를 2024년 마지막 날 공개했는지 속뜻을 가늠해본다. 지난 한 해를 추억하듯 그럴 추억하자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한 해를 보내듯 이젠 그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주자는 뜻일까?


나는 그를 떠나보낼 수 없다. 아비치의 노래 가사처럼, 파티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보다 나은 DJ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천국에도 DJ가 필요해서 하늘이 당신을 일찍 데려갔다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환갑이 돼도 당신의 노래를 들을 것이고, 환갑의 나이에도 당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당신을 기억할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모든 짐 내려놓고 편히 쉬기를.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 마음속 넘버 1 DJ.

아비치(팀 베릴링).


Rest in peace.

Thank you, Avicii(1989-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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