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는 인싸지망생으로, 20대는 인싸로 살았고, 30대부터는 '자발적 아싸'로 살고 있다. 20대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니가 아싸라고? 아싸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님?' 하며 코웃음 치겠지만, 실제로 나는 글쓰기 덕분에 진짜 나의 실체를 깨닫고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 다음부터는 각종 모임에 나가지 않고 있다.감당할 수 없는 인간관계는 부담스러워서 전화번호부는 업데이트 안 한 지 오래다.(지금 내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번호는 20개가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으니 따로 저장할 필요 없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알아서 전화 오더라.)
그러나 차마 탈퇴할 수 없는 모임이 하나 있었으니, 내가 처음 근무했던 학교의 남교사 모임 '공공의 정'이 그것이다. 내가 군대 간 사이에 만들어진 모임이라 나는 제대하자마자 이 모임에 자동가입되었다. 이름의 유래를 듣자 하니, 어느 날 술 먹고 싸우던 A가 B에게 "너는 진짜 공공의 적이다."라고 말했는데, B가 "공공의 적은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공공의 적은 어감이 안 좋으니 웬만하면 '공공의 정'으로 정정해 주십시오"라고 맞받아치는 바람에 모임 이름이 공공의 정으로 정해졌다나 뭐라나. 워낙 오래되고 끈끈한 모임이다 보니 한 번 모였다 하면 2차, 3차는 기본이고, 잠깐 이성의 끈을 놓쳤다 싶으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다가 점점 기억이 희미해지고, 결국 필름이 끊기게 되는 그런 모임인데, 그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분명 서귀포에서 1차를 시작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눈 앞에 보이는 건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피커 2대.
"여긴 어디죠?"
"제주시청 대학로. 지난 번에 다음 모임 막차 장소로 추천했던 그 술집"
"아, 거기요?"
술 깨려 냉수 한잔 들이켰더니 나를 어두운 지하 세계로 인도하신 J 형님께서 말씀하시길,
"너 음악 좋아한댔지? 사장님한테 인사해라. 내 친구야. 어릴 때부터 음악 좋아하더니 결국 이런 술집까지 차리더라. 니 앞에 스피커, 저거 얼마짜린 줄 아냐? 하나에 2천만 원이래. 지금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로 선곡 하나 해봐라. 2천만 원짜리 스피커로 들으면 뭐가 다른지 비교해보게."
딱 이런 모양의 스피커였는데 정말 컸다.
와... 말로만 듣던 오디오 덕후? 20만 원짜리 헤드폰 하나 사는 데도 벌벌 떨던 나로서는 사장님의 2천만 원짜리 스피커만큼이나 음악을 좋아해서 술집까지 차리게 됐다는 사장님의 덕업일치 서사가 더 깊이 와닿았고, 비록 경제 여건상 좋은 장비는 갖추고 있지 못하나 음악애호가로서 좋은 음악은 꽤 안다고 자부해 왔기에 어떤 음악을 선곡할지 골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어떤 노래를 선곡해야 음악 좀 안다고 소문 날라나?
Radiohead의 <No surprises>? 아니야. 너무 우울해. 볼륨 이빠이 올리고 메탈리카나 판테라로 조져 버려? 아니야. 손님이 우리밖에 없긴 하지만 여기서 빡센 메탈 틀면 옆 가게에서 항의 들어올지도 몰라. 그냥 만능 치트키 비틀즈로 갈까? <Hey jude>나 <let it be>처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알만한 노래로 선곡하고 떼창? 아니면 난이도 좀 높여서 <across the universe>? 이 노래 틀면 술도 알딸딸하게 취했겠다 우주 무중력 바이브 나오겠군.
"야! 선곡하는 데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선곡 기다리다가 술 다 깨겠다."
"형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미안합니데이(day). 10초만 시간을 주세요. 기막힌 선곡으로 귀르가즘을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10초 후)
사장님, 결정했습니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틀어주십시오. 왠지 모르게 이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갑분'그것이 알고싶다')나는 왜 거기서 '행복의 나라로'를 틀어달라고 했을까? 여전히 미스터리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내가 아니다. 미스터리가 서 말이라도 풀어야 보배다. 방구석 사설탐정 출동이다!
J 형님은 5-6년 전 암에 걸려서 이젠 술을 못 드시는데, 그땐 분명 술을 마셨다. 제주 시청까지 간 걸 보면 내가 제주시에 근무하던 시절과 맞물린다. 그렇다면 시기는 대략 7-9년 전으로 추측된다. 그때 내가 포크 음악을 즐겨 들었었나? 김광석은 그때도 많이 들었을 거고, 간간이 송창식, 트윈폴리오, 임지훈의 노래를 듣긴 했는데, 아무리 기억의 카세트테이프를 리와인드시키고 테이프를 돌려 B면을 틀어봐도 한대수의 음악을 따로 찾아 듣진 않았던 것 같다. 한대수의 노래 중 아는 노래라고 해봐야 <행복의 나라로>, <물 좀 주소>, <바람과 나> 정도? 그런데 왜 하필 그때 <행복의 나라로>를 선곡했냐 이 말이지.
잠깐, 그러고 보니 설마... 그때가 8년 전 겨울은 아니었을까? 분명 겨울이었고, 날씨도 추웠다. 탄핵 정국으로 나라가 한창 어지러웠던 그때, 이 어지러운 난리 부르스가 끝나고 행복의 나라에 닿길 바라며 그 노래를 선곡했던 건 아니었을까? 2천만 원짜리 스피커 청음이고 나발이고, 나는 단지 희망과 위로의 한마디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나라 꼴이 이게 뭐냐며, 우리나라가 이거밖에 안 되냐며 다들 축 쳐져 있을 때, 행복의 나라로 가자며 건네는 누군가의 다정한 손짓, 그게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오늘처럼 시린 겨울마다 다시 찾고 싶던 그 가게는 이젠 갈 수 없다. 인상 좋은 오디오 덕후 사장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게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그날 2천만 원짜리 스피커에서 들려오던 한대수의 걸걸한 목소리와 노래가 끝나고 짙게 드리웠던 긴 침묵의 여운을 어찌 잊으리오. 2절 마지막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가사를 따라 부르며, 나는 조금 울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이 노래가 자꾸 듣고 싶어지는 건, 그로부터 8년이 지났건만 행복의 나라는 더 멀어진 것 같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1절의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라는 가사가 2절에서는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로 끝나는 가사를 나는 참 좋아한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 결국 해는 떠오를 것이기에.
<행복의 나라로> 가사처럼, 그렇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도 출' 것이다.
그때 나지막이 이 노래가사를 되뇌고 싶다. 그땐 1절의 마지막 가사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는 작게, 2절의 마지막 가사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는 목청껏 크게 따라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