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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대의 업적

<Make you feel my love> - Adele

by 히피 지망생

첫째 딸 단비는 가끔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뜬금없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다. 단비의 질문은 늘 나를 깊은 생각에 빠뜨린다.


"아빠! 아빠는 인생 최대의 업적이 뭐예요?"

"업적? 대답이 참 어렵네. 아빠가 아직 '업적'을 남길만한 삶을 살지 못해서..."

"그렇게 대단한 업적이 아니어도 돼요. 그냥 태어나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거."

이렇게 말하면서도 단비는 뭔가 대단한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다. 단비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니 대답이 떠올랐다.

"아빠의 가장 큰 업적은... 단비에게 세상을 살 기회를 준 거?"

단비가 씨익 웃었다.

"진짜 그게 아빠의 가장 큰 업적이에요?"

응, 이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인생 최대의 업적은 따로 있다.


겉으로 보면 평탄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인생을 살았다. 인생을 4 쿼터로 나눈다면 1 쿼터에 모든 고통이 몰빵 된 삶이었다. 어느 만큼의 고통이었는지는 설명해도 의미가 없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니까. 다만, 내가 그때 느꼈던 고통을 집약한 표현이 하나 있다.

'60억 분의 1'.


'60억 분의 1'은 내가 지옥 같은 고통에서 해방된 후 썼던 글의 제목이다. 나는 그때, 내가 60억 분의 1,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을 통틀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세계 인구가 대략 60억 명이었다.) 전혀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내가 겪은 가혹한 운명이 왜 수많은 사람 중 나 찾아왔는지, 왜 어리고 여렸던 그때 찾아왔는지, 내 운명에게 자주 묻는다. 운명은 니체의 말을 빌려 나직이 대답할 뿐이다.

"날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날 강하게 만들 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매일을 천국에서 보낸다. 그때 지옥을 버텨준, 그때의 나 덕분에. 이것은 날 지옥의 늪에서 건져준 사람의 말과도 일치했다. 그는 말했다. 어린 나이에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시련을 겪었다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웃으며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의 말이 맞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이것이 내 인생 첫 번째 업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그 간극은 너무 멀어서 나는 나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린 시절,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비교 대상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천부적인 운동 신경을 타고났다. 운동 신경을 어느 만큼 타고났냐면, 제주도에 처음 체력장이 생겼을 때 제주도 전체를 통틀어 특급이 2명 나왔는데, 그중 한 명이 아버지라고 전해 들었다. 어떤 운동이든 석 달만 하면 그 종목을 5년 이상 운동한 사람을 이겨버리는 사기캐. 그런 사람이 나의 아버지였다. 그 시절의 '라떼는 말이야' 시리즈는 아버지가 직접 얘기 안 해도 주위에서 말해줬다. 너네 아빠가 얼마나 운동을 잘했는지.


나는 운동을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무거운 몸으로 태어나서 그런지 몸이 둔했다. (태어날 때 '4.2kg'으로 태어났다.) 나는 그게 늘 스트레스였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뒤에서 2등을 한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 베개는 늘 눈물로 젖었다. 운동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보는 아버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그에 비해 난 너무 초라했다. 나는 한없이 작아져 갔다. 안타깝게도, 아버지에게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 특유의 거만한 화법이 있었다.

'넌 어찌 잘하는 게 없냐?'

이 한마디는 가뜩이나 열등감에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나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칭찬 한마디가 그리도 어려웠나요. 지금도 묻고 싶다.


그나마 들었던 칭찬 하나는 학교에서 선행상 같은 걸 받아올 때 들었던 '다른 건 몰라도 빛이는 참 착해' 따위의 칭찬 아닌 칭찬이었는데, 열등감이 심했던 나는 하필 '다른 건 몰라도'에 꽂혔다. 그렇게 나는 도대체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열폭 덩어리가 되어갔다.


내가 일어난 일의 원인을 알고 싶어 수백 권의 책을 읽은 끝에 '뇌의 결함과 환경적 요인이 맞물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라고 잠정적 결론을 내리게 된 건 최근이다. 다시 한번 어느 범죄심리학자가 했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유전이 총알을 장전하고, 환경이 방아쇠를 당긴다."


초등학교 5학년, 부모님을 기다리던 어두운 방 안에서 지옥이 시작됐다. 이후 대략 5년간 지속된, 내 인생에서 삭제되어 버린 시간. 내 인생에서 그 5년을 제외한 기간 동안 겪은 모든 고통을 다 합쳐도 그때의 만 분의 1도 안될 거라 확신하는, 지옥의 터널 구간. 나는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날 위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였다. 늘 밤늦게 들어오셨다. 살가운 집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방금 현관문 닫히는 소리 들렸잖아요? 집에 가족이 들어왔는데 오빠네 가족은 왜 서로 인사를 안 해요?"


나는 모든 가족이 다 그런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2대의 TV가 패착이었다. 안방과 거실에 TV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각자 방에서 TV를 봤기 때문에 가족 간에 대화란 게 거의 없었다. 이 모습이 싫어서 나는 결혼하고 TV를 사지 않았다. 지금 우리 집엔 TV가 없고, 우리 가족은 어느 가족보다 대화를 많이 한다.)


나이 마흔이 넘어 소름 끼치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못 들어보고 컸구나. 그렇게 힘들었을 때도 날 안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구나.


보통 어릴 땐 부모 중 한명이라도 사랑한다는 말 해주지 않나? 한마디로, '애정 표현 없는 집'에서 나는 자랐다. 이켜보면 아버지도 노력을 안 하신 건 아니었다. 평소 애정 표현 한 번 안 하다가 내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술 기운을 빌려 나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굳이 자고 있는 날 깨워 내 볼에 당신의 볼을 비비며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고'를 반복했다. 그로서는 맨 정신에 할 수 없는 애정 표현을 그런 식으로라도 했던 건데, 나는 그게 또 그렇게 싫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수염의 까끌함과 술 냄새, 자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와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아들'을 상징하는 웃픈 장면이었다. 결국 나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현실앞에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고 보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 성장과정을 보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성장 과정도 추측해 보게 되는데,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부모님이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애정 표현도 받아본 사람이 하는 것이다. 부모님도 그런 애정 표현이 없는 가정 환경에서 자랐으니 나에게 사랑을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어찌보면 부모님은 최선을 다한 것일수도 있다.


이젠 더 이상 그때 날 한번 안아주는 게 뭐 그리 어려웠냐고 묻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는 해줄 수 있지 않았냐고 부모님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 상처와 결핍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다. 내 아이만큼은 애정 표현을 듬뿍 해주는 가정에서 자라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알고, 이를 대물림하지 않는 방법을 알기 위해 나는 뇌과학, 심리학, 신경학 등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신경 가소성, 후성유전학 등의 개념은 나에게 이어져 온 절망의 고리(여러 세대에 걸친 대물림, transgenerational inheritance)를 나의 대(代)에서 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누군가 끊어야 한다면 내가 끊어야 한다. 내 아이들이 나처럼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안다는 건 변화의 출발점이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씩 아이들을 꼭 안아준다. 안아주고 나서 눈을 한 번 마주치고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사랑해." 이 모든 건 내가 성장 과정에서 느꼈던 결핍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젠 내가 두 아이의 귀에 입을 갖다 대려고만 해도 아이들이 먼저 말한다.

"사랑해."

아이들은 '아빠, 또?사랑한다는 말 지겨워요. 다른 말은 없어요?" 하는 표정이지만, 나는 이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걸 알아챈다. 아이들은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동안의 나의 노력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그땐 단비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단비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했던 질문 기억나? 아빠 인생 최대의 업적이 뭐냐고 물어봤던 거.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단비, 다온이가 '이런 게 사랑이구나' 느끼면서 클 수 있도록 아빠는 최선을 다했어. 있는 걸 부풀리는 건 쉬워도 없는 걸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아. 아빠가 지금도 어디 가서 애정 표현 전혀 못하잖아? 그래서 맨날 표현 좀 하라고 엄마한테 구박당하지ㅋㅋ 그럼 너네도 우리한테만 표현하지 말고 엄마한테도 표현 좀 하라고 말하는데, 아빠는 그게 본능적으로 안 돼. 엄마한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온몸에 닭살이 돋아버린달까?그래도 지금은 정말 많이 나아진 거야. 너네가 보기에도 아빠가 엄마 사랑한다는 건 굳이 말 안해도 알지 않니?하하. 사실 이 노래(Make you feel my love)도 엄마한테 먼저 보내줬단다.


그런데 이 세상 단 두 사람. 단비, 다온이한테는 아빠가 가진 모든 사랑. 진짜 있는 사랑, 없는 사랑 다 쥐어짜서 표현했다는 거 이젠 알겠니? 래서 아빠 인생 최대의 업적이 냐는 질문에도 이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컸지만, 단비와 다온이에게 어둠을 물려주지 앓기 위해 아빠는 최선을 다했고, 아빠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줬다고 자부할 수 있어. 단비, 다온이가 아빠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아빠는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어. 그게 아빠 인생의 최대 업적이야."


얼마 전, 단비의 일기장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이렇게 행복하고 사랑 가득한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해 준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했다."

내 인생 최대의 업적을 이미 달성한 기분이었다.



When the rain Is blowing in your face

비가 당신의 얼굴 앞에 쏟아져 내릴 때

And the whole world Is on your case

세상 모든 일이 당신의 일처럼 느껴질 때
I could offer you A warm embrace

전 당신을 꼭 안아줄 수 있어요
To make you feel my love

당신이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When the evening shadows And the stars appear

저녁이 찾아와 밤이 깊어지고 별들이 찾아올 때
And there is no one there To dry your tears

당신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I could hold you For a million years

당신과 함께라면 수백 년도 함께할 수 있어요
To make you feel my love

당신의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I know you Haven't made Your mind up yet

당신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걸 알아요
But I would neve Do you wrong

하지만 난 당신이 잘못되도록 놔두지 않을 거예요
I've known it From the moment That we met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나는 알고 있었어요
No doubt in my mind Where you belong

내 마음속 당신의 자리를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죠


I'd go hungry I'd go black and blue

배고프고 어둡고 우울해질 수도 있어요
I'd go crawling No there's nothing That I wouldn't do

거리를 기어 다녀야 할 수도 있지만 제가 못할 일은 없어요

To make you feel my love

당신의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The storms are raging On the rolling sea

험한 파도 위에 폭풍이 몰아칠 때
And on the highway of regret

후회가 몰려들 때
Though winds of change Are throwing wild and free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들이닥칠 때
You ain't seen nothing Like me yet

당신은 아직 나와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을 거예요


I could make you happy Make your dreams come true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고 꿈을 이뤄줄 수 있어요
Nothing that I wouldn't do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어요
Go to the ends Of the Earth for you

지구 끝까지라도 당신을 위해 갈 수 있어요
To make you feel my love

당신이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 Adele의 <Make you feel my love> 중

(원곡은 Bob dylon의 <Make you feel m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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