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그때 그 노래가 들렸다> 출간

by 히피 지망생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저도 여기까지 오게 될 줄 올랐습니다. 2017년, 우연히 목격한 교통사고 사망 현장. 불과 10초 전까지만 해도 저와 같은 세상에서 숨 쉬던 한 남자가 생의 경계를 넘어간 현장을 보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이 시작이었습니다.


생과 사의 경계라는 게 참 얇구나. 나도 저분처럼 되지 않으리란 법 있나? 저기 저분도 자기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리란 걸 알지 못했을 텐데. 나도 저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두 딸에게 나는 어떤 아빠,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기록을 남겨야겠다.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남겨야겠다. 그렇게 나온 책이 세상에 50권밖에 없는 희귀템 <날마다 소풍>입니다.



출간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셀프출판으로 출간했습니다. 제작비 총 8만 원. 셀프출판 사이트에서 결재한 표지 디자인 값이었죠. 적은 판매부수(50부)에도 20여만 원의 수익을 냈습니다. (셀프출판은 인세가 높습니다. 35%) 이 수익금은 책 표지에 약속한 대로 구호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할 만도 한데, 저는 지금도 이 책만 떠올리면 자다가 이불킥도 모자라 백덤블링 두 번 하고 잡니다. 책의 만듦새가 너무 어설펐거든요. 직장 생활에 쫓기는 와중에 출간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일도 책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은 여기에 신경 못 쓰겠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출간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출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출간하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는 오탈자와 비문의 향연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뒤늦게 현실을 자각했습니다. 급기야 책을 사주신 분들께 사과 편지를 쓰기에 이르렀죠. 출판사를 통해 출간하는 이유를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편집자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이기했습니다.


책 판매 수익금을 모두 기부했다지만, 첫 책을 사주신 50명의 독자분들께 진 마음의 빚이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지? 4년간 와심상담한 끝에 드디어 출판사의 계약을 따내 저의 (공식적) 첫 책 <별일 없이 살아도 별 볼일은 많아요>를 출간했습니다. 책을 출간하자마자 제가 한 일은, 비운의 졸작 <날마다 소풍>을 구매해주신 제 첫 독자분들께 이 책을 선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부족한 책을 사주신 덕분에 이렇게 그럴듯한 책을 내게 되었다고. 그때 제 꿈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뒤늦게 마음의 빚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20년간 몸담은 직장을 떠나며 저와 함께한 선생님들께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 쓰는 심정으로 쓴 책이 <어서와 IB는 처음이지?> 였고요.


마음속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셀프출판으로 낸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첫 책 <별일 없이 살아도 별 볼일은 많아요>은 처음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설익음이 있었고, 두 번째 책 <어서와 IB는 처음이지?>는 시간이 부족해서 끝맺음이 덜 된 듯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독자들은 이걸 귀신 같이 알아채더군요.




올해 초 명예퇴직을 했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넉넉한 시간과 마음의 품이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내일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창작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창작과 불면의 밤이 드디어 결실을 맺어 운 좋게 세 번째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도움을 준 노래와 가사들을 담았습니다. '사연이 담긴 인생 노래 플레이리스트'랄까요. 사연이 담긴 노래들은 절대 기억에서 잊히지 않죠. 기억중추에 들러붙어 영원히 잊히지 않을 노래,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추억이 자동 소환되는 노래와 가사 38곡을 정성스레 담았습니다.


1. 스스로 만족하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책

vs

2.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지라도 스스로 만족하는 책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2번을 고릅니다. 이번 책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지라도 스스로 만족하는 책'의 절반은 이미 달성했습니다. 단 한 줌의 후회가 남지 않은 책은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하얗게 불태웠고, 제 모든 걸 쏟았습니다. 이 책이 현시점에서 제가 낼 수 있는 아웃풋의 최대치입니다. (책이 별로라면 그게 제 한계입니다^^;;; )


이번 책을 쓰는 데 체력과 감정 여분을 소진해 버려 이제 더는 글을 못 쓰겠다 싶기도 한대요. 제 아둔한 머리가 망각이라는 선물을 던져주면 또 언제 새로 시작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됐구나 생각해 주세요. 부디 그런 날이 또 오기를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 독자님들께만 공개하는 출간 tmi(소곤소곤)]


1. 책 출간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제목 짓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최종 결정과정에서 잘린 제목 후보군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있었답니다.


<내 장례식엔 이 노래를 틀어줘요>

<그럴 때 난 이 노래를 삼켜요>

<소중한 당신께 이 노래를 처방해 드립니다>

<노래가 사연을 만났을 때>

<이 노래 같이 들을래?>

<같이 듣는 마음>

<가사가 자꾸 목에 걸려서>


2. 다음은 부제 후보군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노래를 이불처럼 덮었다>

<볼륨은 줄이고 가사를 읽는 시간>

<사연이 묻어나는 인생 노래 플레이리스트>

<나만의 음악 취향을 갖고 싶은 어른을 위한 에세이>

<삶에 지친 당신을 위한 노래 처방전>


3. 싣고 싶었지만 싣지 못한 노래들도 많습니다. 특히 김광석, 서태지, 이승환, 신해철, 검정치마, 브로콜리너마저, Simon&Garfunkel, Queen, Cigarett after sex, Sam smith의 노래를 테마곡으로 싣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후속 편 <그때 그 노래가 들렸고, 나는 ...> 시리즈를 내고 싶습니다. <그때 그 노래가 들렸고, 나는 울었다>, <그때 그 노래가 들렸고, 나는 웃었다>, <그때 그 노래가 들렸고, 나는 춤췄다>...

, 아닙니다. 제가 잠시 기억을 잃었나 봅니다. 책을 쓰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더는 못 씁니다. 이 시리즈는 꿈속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4. 퇴고는 스무 번 이상 봤습니다. 첫 책과 두 번째 책은 열 번 정도 봤던 것 같습니다. 다섯 번만 봐도 토 나올 것 같아서 열 번 정도 보고 마무리했는데 이번엔 시간도 많겠다, 욕심을습니다. 신기한 건 그렇게 보고 또 봤는데도 고치고 싶은 부분이 생긴다는 겁니다. 지금 마음에 드는 문장들도 몇 년이 지나고 보면 또 고치고픈 충동이 들겠지요. 한마디로 퇴고는 끝이 없습니다. 이젠 놓아주려 합니다. 얘들아, 잘가.

+

제가 그렇게 보고 또 봐도 잡아내진 못한 실수를 AI같이 잡아내시는 편집자님, 존경합니다.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가 아니네요.


5. 개인적으로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내밀한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그렇게 그 이야기를 내 마음속에서 흘려보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제 비로소, 끝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에서 끝내 씻겨내려가지 않은 감정과 기억을 흘려보내기 위해 글을 쓰는구나, 한마디로 살기 위해 글을 쓰는구나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이미 끝난 이야기여서 흘려보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6. 예약판매가 시작됐습니다. 바로 오늘.

(기습 홍보 무엇)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1143305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286375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978407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