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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Jul 17. 2024

[채식 일기] 07. 두유로 변경한 차이티라테

 누구나 본인이 가진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바로 지금이다. 읽을 책을 챙겨서 집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는 희한하게 책이 잘 읽힌다. 그게 어디라도 말이다. 따뜻한 색감의 조명과 잔잔한 음악은 어느 매장을 가던 나에게 책을 읽으라며 속삭인다. 오늘은 작정하고 소확행을 하러 나왔다. 


 원래는 첫 끼니는 아점으로 해결하지만 오늘은 소확행 일정을 위해 마늘이를 등교시키고 바로 아침을 챙겨 먹었다. 야무지게 채식 한 끼 인증까지 마치고 설거지와 집 청소를 마무리한 뒤 서둘러 나왔다. 요즘 스타벅스 매장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집 근처에도 스타벅스 매장 찾기가 어렵지 않아졌다. 그중에 가장 최신에 생긴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의 가장 큰 단점은 주차비다. 여긴 대중교통으로 오기 어렵고 차를 끌고 와야 하는데 기본 30분 무료에 만원 이상 구매해야 한 시간의 무료주차가 가능하다. 내가 주문한 차이티라떼는 만 원이 되질 않는다. 한 시간 무료를 위해 한 잔을 더 마시거나 간식을 구매해야 한다. 난 한 시간만 앉아있지 않을 거라 어차피 주차비를 내야 하지만 그래도 생돈 나가는 것보단 뭐라도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계산적 사고가 시작된다. 

 출발 전에 아이스를 먹을 것인가부터 고민했다. 그렇다면 빨대를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날씨는 흐리고 덥지 않다. 그러면 따뜻한 라테를 먹어야겠지. 그럼 두유로 변경할 수 있는 음료가 뭐일까? 그건 바로 차이티라테! 도착 전 메뉴 결정을 마쳐놓았으니 주문은 일사천리다. 

 "따뜻한 차이티라테 그란데 사이즈로 두유 변경해서 한 잔이요." 

 한 번에 주문이 가능하도록 완벽한 문장으로 주문을 마친다. 그런데 맨 앞의 "따뜻한"을 못 들으셨는지 내 음료가 아이스로 나왔다. 따뜻한 음료를 주문했다고 말하자 거침없이 갓 나온 아이스 음료를 쏟아버리신다. 내 몸이 에어컨 바람과 아이스 음료에 꽁꽁 얼더라도 그냥 먹었어야 했다. 후회가 밀려온다. 어차피 따뜻하게 주문해도 금방 식을 텐데... 다시 음료를 만드는 동안 나는 불필요한 후회를 계속했다. 따뜻한 라테를 챙겨 자리를 잡는다. 고개를 들면 큰 창이 보이는 안락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책을 펼쳤다.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비건한 미식가]. 7월 바로 대출한 에세이다. 초식 마녀는 유명한 비건 요리 유튜버이다. 나는 이분의 레시피대로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비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분이다. 그런 분의 에세이 안 읽지 않을 수 없으니 바로 읽어보았다.

 글을 쓰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내 바로 앞에 자리 잡으신 여성 3분이 빵을 드신다. 나는 분명 밥을 든든히 먹고 나왔는데 왜 먹고 싶어질까. 이건 습관적인 걸까 아님 내 호르몬의 영향일까. 촴나

 최근에 공격적으로 비건 지향의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들을 그런 내용으로 고르게 된다. 보통의 채식 관련 서적에는 동물권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잔인하게 도축되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알면 불편한 이야기들. 나는 기후 문제 때문에 탄소 배출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으로 채식을 시작했기 때문에 동물권 이야기를 잘 몰랐었다. 솔직히 알고 싶지 않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난 이미 비건 지향의 삶을 시작했으니 굳이 몰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채식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비의도적으로 알게 된다. 그들의 비참한 삶을.

 나의 소확행을 위해 계획적인 시간 배분 끝에 비로소 이곳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만드는 글들을 읽게 되니 마음이 답답해져서 책을 덮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 진짜 모르고 싶다. 바다의 쓰레기로 인해 고통받는 바다생물들의 삶도 감자보다 짧은 생을 사는 불쌍한 닭도 말이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을 다듬어보자. 모르고 살면 더 나으려나. 한 지역에만 무섭게 비가 쏟아져내려 사상자가 발생해도 '희한하게 저기만 비가 많이 오네.' 생각하고 넘어가고 끝없는 폭염에 열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도 '안타깝다' 생각만 들고 미래에 사과, 딸기, 커피 등을 먹을 수 없을 거라는 기사를 봐도 '지금 많이 먹어둬야겠다'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가슴이 답답해져도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고 싶다. 그러려면 현실을 알아야 한다. 아냐. 알고 싶지 않아. 으아아아아

 진정해... 진정하고 생각해 보자. 나의 소확행을 망칠 수는 없어. 이 책에는 초식마녀님의 간편한 채식 조리법과 귀여운 그림들이 담겨있다. 그런 마음 답답해지는 이야기는 가볍게 넘겨보자. 어차피 알고 있는 것들이잖아? 캄다운하고 다시 읽어보자고. 그럼 공감 가는 내용들이 눈에 들어올 거야. 예를 들면 채식 위주의 식생활로 간편해진 조리에 관한 이야기들 말이다. 고기, 야채로 구분 지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도마, 기름에 미끄럽지 않은 칼, 비린내를 잡기 위해 넣어야 하는 조미료들 같은 것들. 실제로 나도 요리가 즐거워졌다. 예전에 수육을 하기 위해 덩어리 고기를 자른 적이 있다. 익지 않은 덩어리 고기를 자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롱사태 부위였는데 내가 동물의 근육을 자르고 있다는 느낌을 생생히 받을 수가 있었고 굉장히 역했다. 그 후로 덩어리 고기에 눈길도 주고 싶지 않아졌다. 

 엉덩이를 붙인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추가로 주문해야 한다. 라테는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 라테는 아무리 두유라도 입이 텁텁해진다. 그럼 아이스 자몽블랙티를 먹을까. 하지만 빨대를 챙기지 않았다. 빵을 사서 집에 가서 먹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소확행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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