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자리들

by 온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

잠시 몸을 내려둘 자리들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떡볶이집 앞,

문 닫힌 문구점의 유리창,

놀이터 그네,

편의점 불빛이 닿는 골목 끝.


사람들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었지만

내게는

짧게라도 숨을 붙잡아둘 수 있는

작은 방들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 방들조차

나를 품어주지 못했다.


집 안에서 갑작스레 터졌던 말다툼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윙윙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소리가 난 것도,

그렇다고 조용한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감정이

아무 예고 없이 나를 향해

휙 날아오는 순간의 그 저릿함 -

설명도, 맥락도 없이

'터졌다'는 사실만 남는

어색하고도 서늘한 공기.


나는 제대로 듣지도 못한 채

표정만 먼저 굳어져 있었다.

무슨 말이 맞는지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그 자리에서 가볍게 비켜서서

숨을 고르는 짧은 틈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날은

그 짧은 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집을 나서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

발끝을 조금 떼어 보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집 안의 공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야

조용히 알게 되었다.


내가 찾고 있던 건

잠시 기대어 쉴 벤치가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날카롭게 변하지 않고,

말끝이 끝까지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그 한 줄의 목소리였다는 걸.


편의점 불빛 아래

혼자 서 있었던 그 순간,

그 진실이

아주 천천히

내 안으로 내려앉았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그 작은 자리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남겨두었던

가장 마지막 보금자리였고,


어쩌면

'집'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장 먼저 가르쳐 준

작은 단서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