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떨어진 자리

by 온다


식탁 한쪽.


컵이 차갑다.

컵 표면의 물기가

손바닥으로 옮겨온다.


엄마는

행주를 쥐었다 놓는다.


탁.

탁.


엄마가 내 얼굴을 훑고

말을 떨어뜨린다.


"너는 참... 복에 겨운 년이야."


그 말이 떨어진 자리에서

나는

앉아 있는 자리가

갑자기 좁아진다.


숨이

목에서 턱 걸린다.


"엄마, 나도 힘들어."


나는 아주 작게 말한다.

작게 말하면

덜 부서질 줄 알았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는다.


내 힘듦을

그 자리에서 접는다.


물컵을 더 꼭 쥔다.

차가움이 차디차게 선명해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로

누군가 앞에 앉아 있는 때를 떠올렸다.


잘하지 않아도,

눈치 보지 않아도,

괜히 웃지 않아도 되는 얼굴.


조금 부족해도,

조금 어색해도,

그대로 있어도 괜찮은 상태.


누군가 앞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되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런 얼굴을

집 안에서는

오래 가져본 적이 없었다.




손끝이 이유 없이 차가워지는 밤이 있다.

컵을 쥔 채로 한참을 서 있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내가 여기 있는 게

잠깐 낯설어진다.


나는 가끔

잔상을 놓지 못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어째서 이 땅에, 이 도시에,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어른이 되면 알 수 있을까.


그 물음이

나를 밀어내지 않는 시간.


그 물음들 위에

내 눈을 가리는 흐릿함을

걷어내고 싶었다.


침잠하는 생각들 속에서

그 희미함은 무력감을 주었고

동시에 맑음을 욕망하게 했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한 번 들어왔다.


커튼이

아주 조금 흔들리고,


그 사이로

거리의 불빛이

얇게 지나갔다.


나는 컵을 내려놓고


그 흔들림만

잠깐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