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
집 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조용함은 늘
가장 먼저 내 쪽으로 온다.
먼저 와서
내 마음을 정리해 달라고 한다.
나는 싱크대 앞에 선다.
수전 아래로 손을 넣었다 빼본다.
미지근한 물이 흐르는데도
손끝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식탁 쪽을 돌아보지 않으려다가,
결국 한 번 본다.
컵이 그대로 있다.
그대로 있는 것들이
오늘은 유난히 크게 보인다.
나는 그 컵을 보다가,
문득 사랑을 생각했다.
사랑이 무엇인가.
나는 사랑을 감도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사랑은 그릇 같다.
담기지 않으면 흘러내린다.
소리 없이.
엄마와 나는 얕았다.
사랑이 없었던 게 아니라,
사람이 담길 구멍이 없었다.
냉장고 모터가 낮게 운다.
그 소리가 가슴 가까이에 닿는다.
나는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복잡함을 조금 내려놓았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서
집이 자꾸 비었다.